일본의 천년 고도 교토의 유명 사찰인 청수사로 오르는 언덕길에 고즈넉한 분위기의 전통가옥들이 잘 보존된 거리가 있다면 우리에겐 품격까지 느껴지는 전주 한옥 마을의 고풍스런 거리가 있다.
개발 논리에 밀려 아파트 촌으로 변할뻔 한
전주 한옥 마을.
번화한 도시의 모습은 서울이나 도쿄나
뉴욕이나 런던이나 다를 바 없기에...
조선왕조의 시조 이성계의 뿌리이자 당시 서민들의 삶의 향기가 가득했던 전주 한옥 마을이 우리의 대표적인 관광 랜드마크로 부활한것이 감사하고 기쁘다.
아파트 공동주택의 획일화 된 길에 익숙한 탓인지 골목 골목 이어지는 미로 같은 길들이 이채롭고 정겹다.
'우리것이 좋은것이여' 라고 외치던 오래전 광고 카피처럼 한옥 특유의 지붕과 처마의 부드럽지만 아름다운 선과 선이 이어지는 닮은 듯 하지만 각각의 개성을 표출하는 한옥들을 감상하고 있으면 우리것에 대한 자긍심이 가슴 한켠으로 올라오고 있음이 느껴진다.
이채로움은 사람들을 끌어 들이고 길가의 평범한 한옥들은 세련된 한옥 카페로, 아기자기한 한옥 가게들로, 아름다운 한옥 화원으로 그리고 색다른 갤러리로 변신중이다. 그중에서도 많은 집들이 전주 한옥마을 숙소로 개조되어 여행자들의 안식처로 제공 되고 있는듯 하다.
일본의 고도 교토에서 기모노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던 일본 여인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부러워 했는데 전주 한옥 마을에서도 우리의 전통 한복을 입고 거리를 누비는 청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 참으로 뿌듯한 일이다.
상의원 간판을 내걸은 한복 대여점에서 집사람과 함께 멋드러진 한복으로 갈아입고 청춘들 처럼 전주 한옥 마을을 느긋하게 거닐고픈 충동이 밀려왔다.
전주 한옥 마을의 돌담길은 덕수궁 돌담길과는 다른 소박하지만 아기자기한 정취를 느끼게 한다.
사라질수도 있었던 소중한 보물들이 우리 주변에도 있다는 교훈을 얻는 전주 한옥마을이다.
한편으론 상업화가 심화되어 서울 강남 가로수길, 북촌거리, 해방촌처럼 개성있는 거리들이 대기업 프랜차이즈 간판으로 뒤덮혀 많은 우려가 있는데 전주 한옥마을도 그만의 색깔을 잃어버릴까 걱정도 따른다.
몇해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만난 토스카나의 언덕에 세워진 아름다운 저택 La villa Loca를 그토록 그리워 했건만 우리의 전주 한옥 마을 숙소로서 그에 못지않은 집을 만난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예향의 도시 전주에서 한옥을 체험하고픈 여행자를 위한 집, 가옥의 이름도 고풍스럽고 어감도 품위가 느껴지는 "혜윰", 우리의 오래전 언어로 생각이라는 뜻이라는데.
한옥 처마 아래 마루에 걸터 앉아 세상사 모든 번민을 내려놓고 잠시 무념무상에 잠겨 보고픈 충동이 느껴지는 집이다.
여름날 뜨거웠던 태양의 열기가 어둠속으로 사라지면 마당 잔디밭에 모기향을 피워놓고 대청마루에 걸터 앉아 냉장고에 얼려놓은 시원한 수박을 잘라 먹으며 더위를 즐겼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잠깐을 고민하다 혹한으로 대지가 얼어붙던 어느날 전주 한옥 마을로 떠났는데 흰눈이 소복히 쌓인 "혜윰"을 다시 조우하게 된것은 행운이었다.
여행의 가장 큰 가치를 다름을 경험하는것으로 두고 있기에 여름날 푸름속에서 만났던 전주 한옥마을 아름다운 집 "혜윰"을 겨울날 순백의 세상에서 다시 만나게 되니 그 감흥이 다르다.
우리의 것들이 사라지고 세상의 모든 집들이 사각형 건축물로 획일화를 향하고 있을때 늦으나마 고유의 것을 찾으려는 몇몇의 의식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의 한옥도 부활의 꽃을 피우고 있는것이 아닐까 ?
자연을 닮은 한옥을 직접 지으며 공간이 서서히 완성 되어가는 과정을 경험했을 주인장은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잠자리에 들어서며 풀을 먹인것 처럼 약간은 빳빳하면서도 바스락이 느껴지는 이불의 감촉이 너무도 좋다. 어린시절 아버지를 따라 친척 시골 집에 가게되면 귀한 손님 왔다면서 벽옷장에 고이 간직한 비단 이불을 내어 주었는데 그때 느꼈던 추억의 감촉이다.
민박보다는 호텔을 선호하는 이유중 하나가 침구류의 청결함과 방의 아늑함 이라면 "혜윰"은 그 못지 않을 듯 하다. 전통 한옥 집의 구조가 욕실과 방이 떨어져 있어 불편한게 단점이라면 혜윰은 내부 구조가 양식이라 숙소로서로의 기능에 불편함을 찾기가 어렵다.
비닐 장판 대신 한지로 정성스레 만든 방바닥에 누우니 바닥으로 전해오는 따뜻한 기운이 몸에 서서히 전해지며 오랜만에 기분좋은 졸음이 솔솔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