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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금성에서 로마를 보았다.

꽃보다 친구, 베이징 유랑기 3

by 이순열

반세기 전만 해도 굶주림의 그림자 아래 허덕이던 나라가, 이제는 세계를 양분하는 두 초강대국 중 하나로 우뚝 섰다. 그 이름, 중국. 서양의 시간은 기술로 흐르고, 동양의 시간은 기억으로 흐른다고 했다. 그 기억의 거대한 축적 위에, 오늘날의 중국은 근대화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베이징 북쪽 외곽, 한국 교민들이 많이 산다는 왕징에 위치한, 우리가 머물고 있는 Holiday Inn 호텔 창밖으로 짙푸른 숲이 바람에 일렁인다.



도시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숲이 병풍처럼 도로를 에워싼다. 무조건적인 개발만을 좇을 것 같았던 이 나라가, 수도의 중심부에 이토록 넓은 녹지를 남겨두었다는 사실이 마치 의도된 역설처럼 다가온다.


그러나 서울 인구의 두 배에 달하는 메가시티 답게, 도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차량 행렬로 숨이 막힐 듯하다. 차들은 거북이걸음으로 나아가다 멈추기를 반복하고, 정체가 풀릴 즈음엔 도로 양옆으로 마천루들이 끝도 없이 숲처럼 솟아 있다. 그중 몇몇은 고풍스러운 기와 지붕을 얹고 있어, 그것들이 아니었다면 이곳이 미국의 대도시 한복판이라 해도 믿었을 것이다.



도심으로 가까이 들어서자 TV 화면에서 익숙히 보던 중국 외교부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이어서 베이징 중앙역의 위용도 모습을 드러낸다. 잠시나마, 언젠가 기차에 몸을 싣고 이 낯선 대륙을 종횡무진 누빌 수 있으리란 꿈이 마음속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자금성으로 향하는 길은 그 자체로 과거를 향한 순례다. 수백 년 전 궁중의 행렬이 지나갔을 대리석 도로 위를, 이제는 관광객들이 촘촘히 메우고 있다.



양옆으로는 붉은 등롱이 드리워진 상점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개화기적 정취를 풍기는 전차가 어슬렁거린다. 오래된 기와 건물 아래 자리한 스타벅스의 간판이 묘한 이질감 속에서 여러시대가 혼재한 듯 보인다.



첫 번째 성문을 넘어서면, 이제는 박물관으로 탈바꿈한 황궁의 내부가 LED 패널로 방문객을 맞는다. 자금성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하는 이미지들이 펼쳐진다.



성 내부는 온통 붉은색으로 가득하다. 벽면과 천장, 기둥뿐만 아니라 황제의 옷, 도자기도 붉은색이다. 이 붉음은 단순한 채색이 아니다. 오랜 세월 동안 중국의 심장을 상징해 온 색, 곧 정체성과 권위의 색이다.



자금성(紫禁城)


1420년, 명나라 영락제가 천자의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완공한 이 궁전은, 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명과 청의 24명의 황제를 품었다. 그 이름처럼 ‘자색 금단의 도시’, 곧 하늘의 권위를 침범할 수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끝없는 인파에 밀려, 우리는 자금성의 서편 성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스무 해 전, 가족과 함께 패키지여행으로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만 해도 이토록 북적이진 않았다.


지금은 경제 성장과 함께 늘어난 자국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우리를 가이드 해주시는 지인분께서는 자금성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회사 직원 서른 명이 동시에 예약 버튼을 눌렀다고 했다. 황궁에 들어가기 위해 이토록 치열한 현대인의 열망이 몰려든다니, 과거의 황제들이 살아 있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래도 성을 방어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만든 해자 주변은 한가로와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성 안으로 들어서자, 전통 의상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들이 눈에 띈다. 화려한 한푸(漢服)의 소매가 햇빛을 머금고 나부끼는 모습은 마치 시간을 되감아 궁중의 정원을 거니는 귀비처럼 보인다.



사방 수 킬로미터, 겹겹이 둘러진 성곽, 수백 채의 전각들. 사신들이 이 웅대한 공간을 처음 마주했을 때, 말과 기운을 잃고 망연히 고개를 들었다는 기록이 허구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황제의 대전인 태화전(太和殿)에 이르자, 황량하게 펼쳐진 돌바닥의 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나무 한 그루 없다. 이는 단지 미적 선택이 아닌 정치적 설계였다. 자객이 숨어들 틈조차 주지 않겠다는 철저한 통치 철학이 깃들어 있다. 여름의 시작인 6월초 임에도 불구하고 태양은 무자비하게 내리쬐고, 발끝에 닿는 대리석은 불덩이처럼 뜨겁다. 찬란함의 이면에 서늘한 두려움이 스며있다.

성곽 위에 오르니, 황금빛 지붕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직선과 곡선, 단청과 기와, 인간의 손으로 빚어낸 구조물이 이렇게까지 장엄할 수 있다니. 이는 단지 건축이 아닌, 천자의 나라가 꿈꾸었던 우주의 모형이었다. 명나라 100만 인구 중 10만 명이 자금성 건설에 동원되었다는 기록은 이곳의 스케일을 가늠하게 한다.



자금성 동편의 문을 빠져나오자, 다시금 사람의 물결이 흐른다. 17억 인구를 가진 나라에서 이 정도 인파쯤은 일상이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금성은 단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유적지가 아니다. 동아시아의 질서를 주도하고 문화를 전파했던 정신적 수도이자, 한반도와 일본, 베트남까지 영향을 미쳤던 문명의 중추였다.



자금성은 단순한 황궁이 아니다. 유럽의 로마가 그리스 문명의 궤를 이어받아 서구의 문명을 탄생시킨 것처럼, 자금성은 동아시아 문명의 궤적을 품고 있다. 침묵 속에서도 말없이 응시하는 자금성. 그것은 과거를 묻고, 현재를 생각하게 하며, 미래를 꿈꾸게 한다. 세월의 황금빛 지붕 아래, 오늘도 그 거대한 제국의 자취가 묵묵히 살아 숨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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