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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천단공원에서 만난 하나님

꽃보다 친구, 베이징 유랑기 4

by 이순열

하늘로 향하는 제단을 밟고 있었다. 천단공원이 ‘황제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이라는 설명은 그저 흘러가는 관광지의 수식어처럼 들렸다. 주건축물인 '기년전'은 원형의 남색 지붕이 3층으로 이루어진 목조 건축물로, 익숙한 중국 전통 건축물과는 확연히 다른 모양새로 낯섦과 흥미를 함께 안겨주었던, 20년전 가족들과 베이징으로 패키지 여행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날 나는, 감동이라는 감정을 제대로 떠올리지 못했었다. 기년전의 높이가 대리석 제단위로 부터 40여미터나 되지만 자금성의 위엄이나 유럽의 성당들이 주는 압도감에 비하면, '기년전'베이징 랜드마크들중 하나의 구조물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건축물 규모로 따진다면 자금성을 넘지 못할 것 같았고, 종교 건축물로 따지면 파리의 노트르담,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의 웅장함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이 생각이 너무 좁고 얕았음을, 나는 그때 알지 못했다.


이번 여행을 주관하고 베이징에 수차례 방문했던 친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천단공원에서 자금성보다도 더 큰 감동을 느꼈고, '기년전'은 자신이 본 그 어떤 건축물보다도 아름답고 완벽하다고 하기에 내 마음은 잔잔한 울림과 기대감이 커져갔다.


오랫동안 베이징에 주재하며 가이드를 자청하신 지인분 역시 베이징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는 장소가 천단공원 이라며, 천단공원 에 있는 여러 상징을 설명했다. 기년전의 세 겹 둥근 지붕은 하늘을 의미하며, 사방으로 뻗은 공원 부지는 땅의 사각형을 형상화한 것이라 했다.

'기년전' 내부를 들여보니 하늘 끝 까지 뻗어 있을것 같은 장대하고 아름다운 수를 놓은 기둥이 간물을 떠 받치고 있다.



구(九)는 중국에서 가장 완전한 숫자이기에, 제단 바닥과 계단은 9칸씩 나누어졌고, 천제(天祭)가 거행되는 환구단을 중심으로 정교하게 배열되었다 한다. 하늘과 연결되는 환구단의 중심에서 기도하는 여자 관광객의 모습이 성스럽게 느껴진다.



이윽고 나는 깨달았다. 이 원형 3층 목탑처럼 단순해 보이던 건축물 하나가 천 년 제국의 세계관, 우주관, 권력관을 오롯이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단지 높거나 화려해서가 아니라, 절제된 기하 속에 담긴 인간의 하늘에 대한 경외가 천단공원의 진정한 미학이었다는 것을.


천단공원은 자금성보다 수 배나 넓다. 수백년전에 심어진 향나무 숲이 사방으로 뻗어 있고, 그 안에서 베이징 시민들은 쉼을 얻는다. 6월 초의 이글거리는 햇살조차 그 숲의 그늘 아래에서는 잠시 멈춘 듯했다.


나는 문득 생각했다. 천자를 자칭한 황제는 왜 자신을 ‘하늘’이 아닌 ‘하늘의 아들’이라 불렀을까? 천하를 호령하던 황제도 하늘 앞에서는 고개를 숙였고, 그 겸손이 결국 천단을 세우게 했던 것은 아닐까. 절대 권력조차 무릎 꿇게 한 신비로운 힘, 그 하늘에 닿으려는 인간의 떨림, 그것이 이 공원의 본질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따금 유럽의 대성당을 떠올린다. 인간이 신 앞에서 겸손하게 몸을 낮추는 공간, 하늘과 인간이 만나는 건축. 불교 사원과는 또 다른, 동양적 신성의 공간이 천단공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단지 3층 청색 지붕의 목조 건축물로 기억되던 '기년전'이, 하늘을 향한 하나님과 대면하고 대화하는 공간으로 다가온다. 땅에서 하늘, 곧 하나님을 향한, 그것이 건축으로 승화된 순간이 바로 그곳, 천단공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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