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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섯씨 Sep 11. 2017

IPTV 디자인 리뉴얼 경험 기록 (1)

디자인 업무 하는 회사원 일기


0. 글쓰기 전에 나를 돌아보기

통신사 N년 차 디자이너. 야심 찬 디자인 전공 대학생일  대단해 보였지만, 실상은 거기서 '야심'은 빠지고 '불만'만 늘어난 디자인 업무를 하는 회사원이다. 그동안 동기들에게 당당하게 자랑하지 못했던 많은 작업물들과 그냥 무용지물들 사이에서 돌이켜 봤을 때, 이번 IPTV 리뉴얼 프로젝트는 보람을 느끼게 해 주고 많은 것을 가르쳐준 프로젝트였다. 무얼 배웠는지 잊지 않기 위해 브런치에 글로 복습을 해보려고 한다. TV UX를 오랫동안 공부한 전문가가 아니라 약 1년 반 업무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이기 때문에 틀리거나 모자란 부분이 있을 수 있고,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고 대략적 과정과 내 느낌을 위주로 적을 것이니 그냥 일기려니 생각해주셨으면 한다.




IPTV가 도대체 뭐...?



IPTV 담당자가 된 건 작년 4월쯤이다. 곧 UX 전면 리뉴얼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장 현 버전의 부분 부분 업데이트들과 새로운 셋톱 디바이스를 대응하며 동시에 도대체 TV가 뭔지 알아가는 데에만 오랜 기간이 소요되었다. 사실 당시 우리 집은 TV라고는 딱 공중파 6 채널만 보는, 누구보다도 소극적인 TV 이용행태를 보이는 가정이었다. 스마트 TV는커녕 케이블방송과도 어색한 사용자인 나에게 먼저 알아야 할 것은 'IPTV가 무엇'인지였다.




1. 'IPTV' 단어 뜻이라도 먼저 알기


IPTV(Internet Protocol TeleVision) 인터넷 프로토콜 기반의 텔레비전 약자라고 한다. (최초에 검색해본 후 완전히 잊고 있었다) 셋톱박스를 설치해 실시간 방송VOD, 스마트 인터넷 서비스를 TV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써보자면,


셋톱박스 : TV 밖에 설치하는 박스라고 Set-top box, 실무자들은 줄여서 STB라고 쓴다. 외장하드같이 생긴 작은 박스형 기기로, 텔레비전을 인터넷에 연결해서 스마트홈에 접속하게 해 준다고 생각하면 쉽다.

실시간 방송 : 실시간으로 방송되고 있는, 흔히 생각하는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TV 채널 방송이다.

VOD : Video on demand, 즉 내가 주문한 비디오이다. 내가 직접 골랐거나 결제한 비디오이기 때문에, 실시간이 아니라 일시정지, 뒤로 감기 등이 가능한 동영상을 생각하면 쉽다. 방송국 편성표와 상관없이 내가 보고 싶은 때에 볼 수 있다.


인터넷 서비스가 이용 가능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TV로 인터넷 브라우저에 접속하거나, 스마트폰에 앱을 깔듯이 TV용 앱들을 설치해 즐길 수도 있다. 이번 리뉴얼 프로젝트와 연관이 깊은 대표적인 TV 앱이  Youtube다. 여기서 통신사의 IPTV가 넥플릭스나 애플 TV와 같은 OTT(Over the Top) 서비스와 다른 점은 결국 'TV 실시간 방송 시청'을 기본으로 한다는 점이다. (이 게시글의 커버 이미지는 그냥 무료 이미지 중에서 찾은 Apple TV로, 내가 진행한 것과 무관하다)


기본적인 개념은 검색을 통해 알았고, 진짜 UX 디자이너로서 제대로 '이해' 하는 데에는 또 다른 시간들이 들었다. 프로젝트 초반에 제안받은 것은 매일 업무시간의 30분은 회사에서 TV를 써보는 것이었다. 굉장히 즐겁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실천에 옮기기는 어려웠다. 모두 업무 보는 사무실 중앙에서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자니 아무리 리모컨에 이어폰을 꽂고 있어도 마음이 불편해졌고, 금세 실무가 밀려들어 짬을 내지도 못했다. 좀 더 깊게 이해하게 된 건 NEXT 리뉴얼의 방향을 잡기 위해 Design Thinking을 진행하면서 였다.




2. Design Thinking Workshop

Photo by Patrick Perkins on Unsplash


UI, GUI, 제품 디자인, 고객 리서치, 개발자, 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참여했으며 개인 업무로 참여 인원이 계속해서 바뀌긴 했지만 일주일에 한 번 씩 다양한 UX 방법론으로 진행하였다. 아래 진행했던 워크숍 내용 중 일부를 적어보았다. 기존에 잘 알려진 UX 방법론들을 활용해 더 우리에게 맞게 바꿔 진행했다.



1차 : 나의 TV 경험 이야기

내 TV 경험 지도 그리기 (하루 24시간 스케줄표 혹은 일주일 표 등)

TV/리모컨 사용 환경 사진 찍어오고 이야기하기

이야기에서 아이디어나 재미있는 점(Insight) 도출하고 Affinity Diagram 만들어보기

나만의 리모컨 그려보기

내 TV 경험 지도 그리기
나만의 리모컨 그려보기



2차 : 사용자 목소리 듣기

작년도에 진행된 IPTV사용자 조사 데이터를 펼쳐놓고 포스트잇에 의미 있는 내용 적기

예를 들면 스크립트 중,


"생생정보통 가끔 본다. 어디서 하는지는 정확히 모르는데, 돌리다 보면 KBS인가? 항상 하고 있다. SBS에서도 비슷한 프로를 하는데, 71번부터는 예능 이런 거 많이 해서 번호 안 외우고 돌려서 본다."


라는 사용자 멘트를 보고, 하나의 포스트잇에 하나의 문장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적는다.


'채널보다 프로그램으로 기억한다'

'예능, 영화 등 콘텐츠 카테고리로 구분한다'

'대략적인 번호대를 외우고, 거기서부터 채널 업다운으로 탐색한다'


3차 : 각자의 IPTV 정의해보기

위의 과정에서 나온 insight들을 토대로 몇 가지 주제들을 정해서 그 주제의 가장 중요한 점, 해결해보고 싶은 것, 내가 생각하는 정의 세 가지의 빈칸을 포스트잇에 채워보았다. 그 외의 아이디어, 인사이트, 혹은 덧붙이고 싶은 디테일은 밑에 붙여서 공유하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시간 TV를 주제로 삼았을 때 보드 예시



4차 : 조별로 아이디어 표현해보기

조를 나눠서(가능한 다양한 분야가 섞이게끔) 워크숍 동안 도출된 아이디어들을 종합해 큰 종이를 주고 스토리보드로 구체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만화 그리듯이 칸칸이 그림을 그린 조도 있었고, 간단한 글과 설명으로 대체한 조도 있었다.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밝힐 수는 없지만 소소하지만 재미있는 아이디어부터 UX 맥락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는 아이디어까지 다양하게 도출되었다.


이후에는 아이디어들을 분석하고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어야 했는데, 일정 및 기타 이슈들로 워크숍은 여기까지밖에 진행되지 못하였다. 나도 당시 다른 모바일 앱 리뉴얼 프로젝트와 겹쳐서 매주 다음 워크숍을 진행하기에 바빴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IPTV의 이해를 돕고 이후 디자인을 진행할 때 생각의 방향판단의 기준을 잡을 수 있게 도와준 시간이었고, 워크숍에 참가하고 결과물을 공유한 실무자들끼리 Next의 청사진을 일치시킬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행했던 사람들 말고는 이런 과정이 있었는지조차 아무도 모를 것이고, 어쩌면 시간낭비로 여겨졌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보고서에 없으면 없었던 일이 되곤 하니까.)








3. IPTV의 UX


위처럼 워크숍과 디자인 실무를 진행하면서 느낀 IPTV의 UX가 다른 모바일 앱과 다른 포인트들이 있는데, 당연해 보이지만 업무 중에 끊임없이 생각하게 되었던 몇 가지를 적어보았다.


1) 오브젝트(TV 인터페이스)와 컨트롤러(리모컨)가 분리되어 있다.

손으로 직접 원하는 것을 터치하면 바로 그것이 변하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익혀온 Affordance에 비해 TV 리모컨 경험은 훨씬 어렵다. 내가 움직이고 싶은 건 멀리 있는 TV인데, 조작은 손에 들려있는 리모컨으로 해야 하니 뭐라도 입력하려면 시선을 계속 위아래로 왔다 갔다 움직여야 한다. 탐색도 보고 싶은 동영상이 나올 때까지 손가락으로 스크롤링해 넘겨버리면 되는 스마트폰에 비해, TV에서는 리모컨으로 Focus를 하나하나 움직여야 하니 훨씬 답답하다. (애플 TV나 삼성 스마트 TV와 같은 터치 리모컨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 방향키라면) 리모컨 자체도, 전원과 채널 Up/Down, 볼륨 Up/Down 외에 온갖 모르는 이름의 키들이 많고 왠지 선택지가 많으니 다루기 어렵게 느껴진다. 총체적 UX를 고려한  리모컨 키 선택과 배치, 디자인이 TV 이용 경험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나는 리모컨 디자인을 진행하지는 않았지만(딱 한 개 키의 그래픽에 참여했다), 인터페이스를 디자인할 때 끊임없이 리모컨으로 컨트롤할 때의 사용성을 떠올리며 점검하였다. 디자이너는 사용자가 화면의 인터페이스와 리모컨을 가능한 자연스럽게 매칭 시킬 수 있도록 고민해야 한다.


2) TV는 가구(Family) 단위이다.

1인 가구이거나 집에 개인 TV 여러 대를 두고 사용하지 않는 이상, 보통 TV는 집에 한 대이고 보는 사람은 여럿이다. 그중 누군가는 조금씩 소외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아빠가 바둑 방송을 보고 있을 때는 내가, 내가 쇼미 더 머니를 보고 있을 때는 엄마가 소외되고 있다. 아침 일찍 내가 어떤 팝업을 한 번 보고 '다음부터 보지 않기'를 해버리면, 이후에 쓰는 가족들은 다시 그 팝업을 보기 힘들 것이다. 사용자가 복수인 만큼 단순히 한 명을 타깃으로 순서대로 학습시키고 맞춤 서비스를 해주기는 어렵다. 넷플릭스처럼 User 계정을 등록하고 시청자가 바뀔 때마다 로그인해서 시청 이력에 맞게 추천해주지 않는 한 아빠의 바둑 방송 추천정보가 드라마 마니아 엄마에게는 불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TV를 다 함께 보는 경우가 많다. 리모컨을 눌러서 가족이 시청하고 있는 화면을 방해할 때의 미안함, 무언가를 선택할 때 다 같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 등등. (물론 모든 가족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사용자 연령층이 유아부터 노년층까지 다양하다는 것도 디자이너로서 고려해야 한다.


3) 사람들은 콘텐츠에 항상 집중하지 않는다.

나를 포함한 많은 가정이 TV를 시청하지 않더라도 그냥 틀어놓곤 한다. 혹은 무얼 시청할지 뚜렷한 목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시간 채널 Up/Down을 반복하기도 한다. 습관적으로 '집에 들어옴' = 'TV를 켬'인 사람도 있고, 혼자 있는 경우 집이 조용할 때보다 TV 소리가 들리는 것이 덜 외롭게 느껴져서 그러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목적 없이 틀어놓는 콘텐츠는 대부분 실시간 방송이다. 목적이 있어서 TV를 켰어도 사람들은 종종 딴짓을 한다. 컴퓨터를 하면서, 카톡을 하면서, 멀리서 설거지를 하면서 소리만 듣다가 중간중간 흥미가 생길 때만 단편적으로 시청하기도 한다. 심지어 TV는 TV대로 켜놓으면서 핸드폰으로는 또 다른 영상을 보고 있는 경우도 많다. 프로듀스 101 결과는 실시간으로 알아야겠는데, 관심 없는 사람이 등장할 때는 또 쉬지 않고 다른 미디어를 보고 싶을 때. 그래서 실시간 채널은 콘텐츠가 끊기지 않는,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탐색을 중요하게 고려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집중하지 않는 경우가 많음에도 TV에서 사람들은 모바일보다 더 원활한 시청을 중요시한다. 시청 중 화면을 가리거나 갑자기 방해하는 모든 것에 모바일보다 더 부정적이다. 모바일에서 갑자기 팝업이 뜰 때 보다, TV를 조금이라도 가리는 요소들에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4) 경로를 찾기 힘들다.

IPTV는 켜자마자 웹이나 모바일 앱처럼 '이제부터 네가 볼 것을 골라봐' 하며 사용자를 Ready 시키거나 모든 접근루트를 총망라한 일반적 '홈' 화면이 뜨지 않는다. TV를 켜면 실시간 채널, 즉 콘텐츠부터 경험하고, 다른 목적이 생기면 그때 탐색을 시작한다. 일반적인 '홈'에서 경로를 선택하면서부터 시작하지 않아서 그런지 IPTV 경로는 이해하기가 더 힘들다. ('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다 보니 일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어서, 아예 새로운 이름을 가져다 붙여보기도 했다) 그렇다고 '홈' = 'VOD탐색'으로 정의하자니 실시간 채널이 방송만 틀어주면 끝나는 시나리오도 아니다. 현재 방송하는 채널/프로그램의 정보를 확인하고 편성표를 탐색하며, 시청을 예약하거나 채널들을 숨기고 즐겨찾기 하는 등의 채널 관리를 하기도 한다. 이 모든 기능도 '홈'에 배치할지는 고민이 필요했다.


5) VOD탐색은 콘텐츠 쇼핑이다.

실시간 채널을 아무리 봐도 볼만한 게 없거나, 뚜렷한 목적이 있을 때 시작되는 게 VOD탐색 시나리오다. 보통은 보던 콘텐츠, 예를 들어 보던 드라마의 다음회차를 이어 보는 경우가 많고 뚜렷한 목적이 있을 경우에는 그 콘텐츠를 바로 검색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목적이 없을 때엔 '영화> 무료> 액션' 등 구성된 카테고리를 선택해 나가며 탐색하게 될 것이다. 탐색 과정에 depth가 많을 수밖에 없다. 많은 depth 들을 거쳐 하나의 콘텐츠를 선택하고 나면 이것을 볼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콘텐츠 상세화면에는 영화 예고편이나, 스틸컷, 줄거리, 출연진 등 다양한 정보들을 둘러볼 수 있지만, TV는 '이걸 봐야지!' 마음먹기가 모바일이나 웹보다 부담스럽다. 광고 때문이기도 하고, TV에서 구매는 더 어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TV에서는 내가 뭔갈 잘못 누르면 다시 돌아오기 어려울 것 같은 오류 상황에 대한 부담감이 있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결국 IPTV는 어렵다.



한국에서 보통 TV란 아무 채널이나 틀어놓으면 내가 아무것도 안 해도 이것저것 보여주는 바보상자이지, 컴퓨터처럼 내가 지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스마트 기능이 더해진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아직 덜 스마트하기도 하고), 굳이 TV를 어렵게 쓰지 않아도 컴퓨터에서 다운로드하여 보거나 스마트폰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필요성을 못 느끼니 학습하려 하지 않고 학습하지 않으니 어렵다. 스마트폰이나 PC는 옆에서 쓰는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따라 하고 배우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TV는 집마다 한 대이니 가족끼리 배우는 게 아닌 한 다른 집의 사용방법을 보면서 익히기도 어렵다.





IPTV 리뉴얼 시리즈의 디자인 결과물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behance.net/gallery/88342443/LG-U-IPTV-UXUI-RENEW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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