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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Apr 10. 2024

조금 특별한 엄마와 봄 산책.

발맞추어 걷지 않았습니다.

완연한 봄이다.

벚꽃이 아름답게 피어 전국에 모든 사람들을 벚꽃이 있는 곳으로 자석처럼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아름다움도 잠시 봄을 시샘하는지 바람과 함께 여름으로 가는 시간은 앞다투어

벚꽃 잎을 땅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거리에 벚꽃 잎이 쌓이기 시작한다.    

 

우리 가족도 사람들을 피해 우리만의 벚꽃 잎을 찾아다녔다.

봄이 지나가는 시간을 아쉬워할 틈도 없이 흩날리는 벚꽃 잎은 어느덧 내년 봄을 기약한다.

그렇게 올해 봄도 아름답게 지나가고 있다.     

그런데 이번 봄은 조금 특별했다.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우리 세 식구는 산책을 좋아한다.

겨울만 빼고는 봄, 여름, 가을은 저녁식사 후 동네 한 바퀴 도는 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는 한다.

그러기에 산책은 우리 집의 일상이고 에너지 넘치는 아들의 힘을 빼기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녀석이다.


그런데 일상이나 다름없는 산책이 조금 특별하게 다가왔다.     

한 달에 한두 번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뵌다.

거리가 가깝기도 하고 손주 녀석 보고 싶은 마음에 이런저런 핑계를 삼아 부모님은 우리 가족을 소환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부모님의 마음을 알기에 웬만큼 바쁘지 않으면 맞춰서 방문한다.     


역시나 그날도 봄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듯 너무도 빛나고 따뜻했다.

거리에, 길가에, 풀밭에,

흙이 있는 어느 곳이든 피어있는 꽃들은 아름다웠다.

자상한 아빠를 지향하는 나는 시골 가면 아들과 무엇을 하고 놀아야 좋은 기억을 심어줄까 고민하고 있다.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돌아볼까?’

‘음... 날이 좋은 씨앗 심기를 해볼까?’     


혼자서 어떤 시간을 보내야 좋을지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아내가 옆에서 조심스럽게 나의 의견을 물어본다.

가족이 된 지 9년 차가 되었어도 시어머니와 관련된 일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운가 보다.

    

“여보, 날씨도 좋은데 어머니랑 같이 휠체어 끌어서 동네 마트에 가는 건 어때?”

“응?”

“어머니만 괜찮으시면 좋을 거 같은데.”     


어머니는 내 나이 24살 무렵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그 후로 15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많은 시간을 병원과 집 그리고 재활센터에서 시간을 보내셨다.

자식들은 어머니가 강한 의지로 마당에서 걷기 운동도 하고

마비증상을 기적적으로 이겨내기 바랐지만 어머니는 쉽게 좋아지지 못했다.

지팡이 혹은 휠체어를 이용해서 잠깐잠깐 이동을 하셨다.


정확히 15년 동안 동네 이곳저곳을 가보지 못하셨고 제대로 된 꽃구경 한번 못하셨다.

그리고 어리석은 자식이라는 놈은 꽃구경 한번 시켜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사실을 오늘에서야 인지를 했다.


가족모임으로 펜션을 모시고 가거나 외식정도는 했으나

그 사소한 산책 한번 시켜드린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아내의 질문에 나는 당혹스러웠다.  

   

‘왜... 매번 엄마한테만 나가서 운동을 하라고 했을까? 함께 갈 생각은 안 하고...’

‘산책 한번 같이 하지 못할 정도로 내가 바쁜 사람이었나?’     


조심스럽게 어머니한테 휠체어를 타고 도보로 10분 되는 거리에 마트를 가보자고 물었다.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으셨다.

나는 속으로 역시 몸이 힘드셔서 나가지 않으시나 보다라며 스스로 그동안에 행동에 위안을 삼아보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휠체어를 타고 방구석구석을 누비며 외출준비를 하시고 계셨다.

대답보다는 행동으로 그동안의 산책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고 계셨다.

그리고 얼마 만에 마트를 가보는지 기억도 가물하겠지만,

장을 보실 생각에 작은 지갑에 지폐를 여러 장이나 넣고 계셨다.

이날만큼은 큰손이 되고 싶으셨던 게 분명하다.   

  

손자, 며느리, 큰아들, 막내아들 그리고 어머니

우리는 따뜻한 봄날의 온도를 피부로 느끼면 한걸음 한걸음 걷기 시작했다.

골목길 골목길마다 7살 손자의 재롱을 끝이 날지 몰랐고

무뚝뚝했던 큰아들도 조카의 손에 이끌리어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막내아들은 묵묵히 어머니의 휠체어를 끌어주고

며느리는 이 모습을 추억으로 남기고자 연신 사진을 찍었다.



역시나 어머니는 마트에서 큰 손이 되셨다.

    


예상치 못한 산책이었다.

짧은 거리지만 산책하는 동안 그 누구도 자기 마음을 표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걸음을 함께하는 가족 모두가 행복해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말하지 않아도 왠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어머니는 지나가는 길에 이웃집 담장으로 넘어온 동백꽃을 보며 짧은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이 순간은 어머니에게는 정말 특별한 봄으로 기억이 되고 있었다.

.     

‘왜 몰랐을까?’

‘왜 하지 않았을까?’

‘이토록 좋아하시는데...’     


몸이 힘들다고 매번 ‘힘들어서 죽겠다’ 하시는 모습을 보며

당연히 외출은 힘들다고 생각을 했다.

외식 한 번을 하고 싶어도 사정사정을 해서 힘겹게 외식을 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걸 바라시는 게 아니었던 거 같다.


동네 한 바퀴 돌며 계절을 바뀌는 모습을 느끼고 싶었을 것이다.

평생 누비고 살아 온 동네가 그대로 인지 혹은 얼마나 바뀌었는지 보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싶다.     


무뚝뚝한 아들은 이번일로 한없이 반성을 했다.

다음에 시골에 가게 되면 동네 작은 카페를 가보자며 아내와 다짐을 했다.

나는 또 묵묵히 휠체어를 밀어드릴 것이고 특별한 대화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좋다.

계절을 느끼고 매월 달라지는 공기와 온도를 어머니께 느끼게 해주고 싶다.     




나의 무지를 깨워준 아내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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