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에 혹은 장판 맨바닥에 자리 잡은 통닭을 중심으로 아버지, 어머니, 형, 누나 그리고 나까지 다섯 식구가 영롱한 통닭과 마주했다.
녀석은 한 마리 그리고 입은 다섯 개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물론 그땐 몰랐다. 누군가 숭고한 희생정신이 필요했다.
그 몫은 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희생이 있었기에 삼 남매는 한 마리를 가지고 배부르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다섯 식구가 입을 모았던 곳에서 독립한 지 20년이 흘렀다. 삶은 풍요로워지고 다섯 식구가 비좁은 공간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입을 모을 필요도 없고 통닭을 따사롭게 감싸고 있던 은박지가 언제 개봉될지 발을 동동 구르지 않아도 된다.
어느새 나도 가정을 꾸렸다.
밥상보다는 땅바닥보다는 식탁에서 먹는 통닭이 허리도 아프지 않고 편하다.
이제 아들이 아닌 삼 남매 중 막내가 아닌 아빠가 되어 아들의 배고픈 배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숭고한 희생정신을 계승해 본다. 이제 통닭 한 마리에 세 식구 머리를 맞댄다. 그 거리는 어찌나 넉넉한지 빈틈이 많이 보인다. 없어서 못 먹던 어린 시절에 비교하지니 두 세 조각 먹고 나니 금세 배가 불러온다. 딱 첫 조각의 통닭이 입안으로 들어갈 때가 가장 맛있게 느껴진다. 두 번째 세 번째 조각이 들어갈수록 배는 쉽게 부르고 느끼하고 속이 편하지 못하다. 무릎을 탁 치고 유레카를 외쳐본다.
정답을 찾은 내 눈은 오랜만에 반짝인다. 통닭을 처음 먹어 본 아이부터 틀니든 임플란트이던 백발의 노인까지 통닭은 맛있다는 것을 다만 개수가 줄어 간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 적 어머니 아버지는 숭고한 희생정신보다는 가장 맛있는 정량을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