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출산

출산부터 육아까지 남편 눈으로 바라보다.

by 온아

2. 출산


2018년 7월 29일 일요일.

나는 회사 여름휴가로 인해 휴가 중이었다. 아내의 출산 예정일이 31일 이기에 여름휴가를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집에서 휴가를 즐기며 비상대기하고 있었다.

교회 예배를 마치고 아내가 저녁으로 선택한 메뉴는 단골집 삼겹살이었다. 고기를 먹고 싶다는 아내의 요청으로 우리는 삼겹살집으로 이동했다.


임신 동안 크게 먹고 싶다는 것도 없고 과일만 입에 달고 살던 아내이기에 먹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바로 사주고 싶었다. 하지만 굳게 닫혀 있는 삼겹살집은 우리를 허무하게 했다. 아내는 이 집 삼겹살을 먹고 싶었다며 그냥 집으로 돌아가자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차를 돌린다. 집에서 대충 밥을 차려 먹었다. 이때까지는 이 조촐한 저녁밥이 출산 전 최후의 만찬이 될지는 꿈에도 몰랐다. 아직도 아내는 그때를 생각하면 아쉬워한다.

마지막 만찬으로 삼겹살을 먹었더라면 출산하는데 애먹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삼겹살... 다른 곳에 가서라도 먹었더라면….


무더운 여름 출산을 앞두고 새롭게 장만한 에어컨은 신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신혼살림으로 장만하지 않았지만,

출산이 임박해서 장만한 소중한 에어컨이다.

해가 갈수록 무더운 날씨에 곧 태어날 갓난아이가 땀띠는 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에 장만했다.


시원한 거실에서 우리는 티브이를 시청했다.

한참 야구에 푹 빠져 있던 우리는 신나게 응원하며 저녁 시간을 보낸다. 응원 중 화장실에 다녀온 아내는 아무래도 출산이 임박했다고 말한다. 출산 전조 증상 중 하나인 이슬이 보인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 말을 들어도 나는 현실감각은 전혀 없었다. “그래?”라고 하며 공감해 주고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아직 예정일보다는 이틀 남았고, 초산인 경우 예정일보다 늦게 출산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주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든지 병원으로 출발할 수 있게 짐은 완벽하게 챙겨둔 상태였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과 더불어 어둑해진 창밖에 풍경에 잠이 솔솔 온다. 그렇게 나는 아내의 속도 모른 채 드르렁드르렁 코를 골아대며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내가 다급하게 나를 흔들어 깨웠다.

막 잠에서 깬 나는 비몽사몽인 모습으로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보니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내의 얼굴빛은 당황한듯했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여보. 배가 너무 아파... 진통이 시작된 거 같아.”


한 시간 전 아내의 출산 전조증상을 태연하게 바라보던 내 모습과는 다르게 순간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동갑내기 부부지만, 나는 이 집에 가장이다.

아내의 남편이자 이제 곧 태어날 아이의 아빠이고 우리 집의 울타리이다.

'내가 판단해야 한다.' 겨우겨우 정신을 차리려고 했을 때 귓가에 들려오는 달콤하고 한 줄기 빛이 되는 담당 의사의 인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실제로 풍채나 얼굴도 굉장히 인자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의사 선생님! 당신은 나의 은인이오, 나에게 천사와도 같은 사람입니다.’


“진통이 시작되면 언제든 병원으로 오세요.”


마지막 검진할 때 담당 의사가 말했던 말이 한 줄기 희망이 되어 나는 힘을 얻는다. “그래 바로 병원으로 가자!”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집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어 봐야 도움 될 건 하나도 없으니 병원에서 안심하며 출산을 기다리자는 심상이었다. 모든 변수에 대한 대처가 집보다는 병원이 안전하다는 생각이었다. 그땐 몰랐다.

굳이 그 상황에서는 병원에 안 가고 침착하게 집에서 기다려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한쪽 구석에 미리 준비해 둔 캐리어는 나를 보면

‘주인님 저는 언제든 출발 준비가 되었으니 당장 레츠 고 하시죠.’라며 나를 쳐다보는 듯했다.

아내를 안정시키고 서로 옷을 갈아입고 부랴부랴 짐을 챙겨 나는 운전대를 잡는다. 아마 병원에 가자고 마음을 먹고 준비해서 차까지 이동하는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움직였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유부단한 성격인 내가 빠른 판단과 빠른 움직임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저녁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병원 입구에 있는 비상벨을 눌러 다급하게 간호사를 호출한다. 분명 나는 다급하고 위급상황인데 나와는 다르게 담담하고 별일 아니라는 듯한 간호사는 간단한 인적 사항을 확인하고 병원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제야 나는 안도했다.

하지만 그 문은 앞으로 일어날 진통이라는 환상의 나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드라마에서처럼 힘 몇 번 주면 아이가 순풍하고 나오는 줄 알았다.

이미 담당 의사에게 자연분만을 추천받았던 상황이라 제왕절개는 우리 머릿속에는 있지도 않았다.

아내의 골반은 아이가 나오기 좋은 조건이었고 더불어 배 속에 있는 아기도 작은 몸이었기에 큰 문제없이 자연분만으로 결정했다.

문제는 진통이었다. 진통은 예측이 불가능했다.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의 차이도 다를 것이고 아내가 처음 겪어보는 진통을 얼마나 잘 참을지는 겪어 보기 전까지는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아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잠시 병원에 오자 아내도 미소도 보이고 조금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 안정된 아내의 모습을 보자 그제야 나도 마음에 안정을 찾았고 미소를 보이며 여유로운 척을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그래! 내 판단이 옳았어.’ 자화자찬하며 곧 일어날 위대한 탄생에 나는 아내에게 무슨 말로 축하를 해줄까를 생각했다. 어떤 말과 행동이 감미로우며 멋져 보일 지를 생각했다. 이마에 입맞춤? 아니면 가벼운 포옹? 수고했다고 말해볼까? 사랑한다고 말해볼까?

혼자서 이미 출산에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한 착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아내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는 고통스러워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진통에 아내도 어쩔 줄 몰라했다. 잠시 정신 차리면서 하는 말들은 정말 아프다는 표현들이었다. 다시 진통이 시작되면 저 여자가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아내가 맞나 싶은 정도였다. 순간 나는 창밖에 보름달이라도 뜬 건가? 의심했다. 내가 알던 아내의 모습은 어디도 찾아볼 수 없었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진통은 심해졌고, 내 얼굴도 점점 잿빛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문제는 이제 시작이라는 것이었다. 아내는 임신 전에는 키도 크지 않고 49kg의 가녀린 여자였다. 임신하고 나서도 만삭까지 겨우 53kg 정도였기에 배만 볼록 나온 임산부였다.


뱃속에 아이는 아들이었지만 배만 보고 할머니, 할아버지 주위 어른들은 딸이라고 당당하게 빗나간 예측을 하기도 했다. 그런 아내가 침대 위에서 방방 뛰고 있었다. 출산을 앞두고 남산만 했던 배는 보물단지를 배 속에 숨기고 있는 마냥 조심조심 생활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였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럴 것도 그럴 것이 내가 이런 모습을 알고 있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이다.

아내가 진통하는 모습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미 출산의 기쁨은 저 멀리 안드로메다로 간 지 오래였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인가.’

‘아... 이 시간이 끝나기는 하는 것인가?’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직 반도 열리지 않는 자궁문으로 인해 문이 열릴 때까지 아내 혼자서 견뎌 내야 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저 보호자로 아내 옆을 지키면서 손잡아주고 기껏해야 하는 말은 “괜찮아?” 정도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미안했다. 이게 엄마와 아빠의 차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왜 모성애가 생기는지 알 수 있었다. 그저 난 로봇처럼 손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다였다.

이게 남편이구나 싶었다.


이 세상에 긴박한 사람은 나와 아내뿐이었다.

우리 부부와 다르게 간호사는 담담했다. 그럴 것도 그런 것이 간호사분들에게는 업무적인 평범한 일상인 것이 분명했다. 진통에 차이가 있을 뿐 모두 같은 출산을 앞둔 임산부와 가족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찾아보기도 힘든 일회용 면도기들 들고 뚜벅뚜벅 아내에게 다가와 제모를 한다. 쓱 쓱 면도기가 지나가는 소리가 무섭게 들린다. 그리도 담담하게 관장을 요구한다. 그 난리에 아내는 간호사의 말은 한 줄기 희망처럼 경청하며 두 발로 화장실로 들어간다. 이 과정을 한쪽에서 지켜보는 나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얼음이 되어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출산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있는 모습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날을 꼬박 새우면서 진통을 함께했다. 여름 아침 해는 일찍부터 뜨기 시작했다.

아침이 밝아 와도 아내의 자궁문은 도무지 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침 일찍 군산에 사시는 장모님께 연락을 드렸다. 연락받고 장모님과 장인어른은 병원으로 오셨다. 두 분 모두 곧 만나게 될 손자의 모습을 기대하셔서인지 웃으면서 병원으로 들어오셨다. 장모님은 본인은 두 시간 만에 출산했다며 첫째 딸인 아내도 금방 출산할 거라며 옛날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셨다.

하지만, 이미 10시간째 진통을 했던 사실은 나만 인지하고 있었나 보다. 자궁 문이 50%로도 열리지 않았지만, 아내의 고통에 대한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이미 체력적으로 바닥나있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출산의 고통은 아내를 절규하게 했다.


“여보! 엄마! 나 수술시켜 줘! 제발... 제발….”


그때부터는 나도 울고 장모님도 울었다. 잠시 이곳이 생명의 기쁨을 느끼는 산부인과인지 장례식장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병원 관계자나 침착한 다른 산모 및 가족들은 우리가 얼마나 웃겼을까 생각해 본다. 그래도 그 당시 너무 슬펐다. 눈물이 쉬지 않고 나왔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인지 아닌지 판단할 상황이 아니었다.


잠시 제왕절개를 고민했지만, 담당 의사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지금까지 진통한 것이 아까우니 조금만 더 힘을 내보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팔랑팔랑 내 귀는 나뭇잎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최종 결정권이 있는 아내의 보호자인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했는데 조금만 더 참아보자.’라며 아내를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어리석은 판단으로 아내를 2시간이나 더 진통이라는 고통 속에 혼자 던져버린 것이다. 결국 수술을 결정했다. 12시간의 진통 그리고 수술 결정.


이 모든 것이 아내에게 미안했다.

내가 조금 더 빨리 결단을 내렸더라면 이토록 아파하지 않았을 텐데 고생시키지 말 것을…. 망할 자연분만이 뭐길래…. 늦은 후회와 미안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수술을 결정하고 나는 침대가 수술실로 들어가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 다르게 아내는 다시 두 발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갔다. 아내에게 마취제가 투입되자 안정이 된 아내의 목소리와 함께 담당 의사와 대화하는 이야기가 수술실 밖으로 들려왔다. 그제야 나는 안심이 되었다.

엄마가 되는 과정은 위대하다. 그리고 존경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결혼 8년 차인 나에게 변함없는 생각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7월 30일 월요일 오전 10시 48분.

드디어 아내와 나를 애타게 했던 녀석이 세상 밖으로 나왔다. 튼튼이라는 태명을 가지고 있던 아이도 만날 수 있었다. 몸무게 2.74kg 요즘 아이 들치고는 작았지만 어디 하나 문제없이 건강하게 태어났다.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눈, 코, 입, 있을 건 다 챙겨서 나온 아들이었다.

물론 아내도 건강하게 수술을 마쳤다. 날을 꼬박 새우고 눈물로 아이의 탄생을 맞이한 터라 온몸에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보면 내가 출산한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 나도 마음으로 아내와 함께 출산한 것은 사실이다. 아이와 마주한 나는 묘한 기싸움을 하고 있었다.


“누구냐 넌?”

쭈글쭈글 참으로 못생긴 아이는 인상을 쓰며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난 당신의 아들입니다.”


아직 내 주위에도 미혼인 친구들이나 후배 그리고 아직 아이가 없는 가정을 보면 나는 남자들에게 말한다.

만약 미래 아내나 지금의 아내와 아이를 계획하고 혹시 자연분만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라고 말이다. 그러면 아내가 새롭게 보이고, 엄마 또는 어머니라는 글씨 자체를 존경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우리 가족은 완성이 되었다. 인생을 함께하는 동반자들과 언제가 끝이 될지 모르는 기나긴 여행의 서막이 열렸다. 병실에서 만난 아내는 홀쭉해져 있었다.

아내를 맞이한 나는 준비했던 말은 다 뒤로 한 채 아무 말 없이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을 꺼낸다.


“저기... 여보, 우리 그거 잘할 수 있을까?”

“뭐?”

“육아. 육아 말이야.”




《출산 전조증상》

진통이 시작되기 전 산모가 느끼는 변화들이 있다. 이것들은 출산 전조증상 또는 진통 전조 증상이라고 불린다. 태아가 내려가는 하강감, 불규칙적인 자궁 수축인가진통, 이슬을 포함한 질 분비물 증가 등이 있다.

·하강감

산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많은 초산부에서는 출산 날이 가까워지면서 태아가 아래로 처지고 상당수는 태아 머리가 산모의 골반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즉 태아 머리의 약 반이 골반 안에 있는 것이다.


·가진통

가진통은 분만 진통이 오기 전에 불규칙적인 자궁 수축이 많아지고 세지는 것을 말한다.


·이슬

분만 진통이 가까워지면서 가진통이 잦아지고 자궁 경관이 풀리면서 냉이 많아지는 것을 느끼게 되고 결국은 이슬로 이어진다. 보통은 피가 몇 방울 정도 나오지만 생리처럼 나오는 산모도 있다. 그러나 양이 많은 경우 다른 원인인지 확인 해야 하므로 빨리 병원으로 가는 것이 좋다.

《병원 가기 전 산모를 위해 준비해야 할 품목》

·산모수첩, 주민등록증

입원 시 필요한 기본적인 준비물로 기본적으로 챙겨두는 것이 좋다.


·임부 팬티, 산모용 패드

출산 후에는 땀과 오로가 많이 나오므로 자주 갈아입게 된다. 출산 후 복부가 바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임신 후기 입었던 팬티를 챙기는 것이 좋고 산모용 패드는 병원 근처 약국에도 판매를 한다.

*오로란? 분만 후 자궁에서 나오는 분비물을 말합니다.


·수유용 브래지어, 수유패드

수유용 브래지어를 챙기고, 모유가 새는 것을 막아주는 수유패드도 준비해 둔다. 입원 중에는 일화용 패드를 사용하는 것도 좋다.


·유축기, 모유 저장팩

제왕절개 산모는 출산 직후 안정을 취해야 하므로 초유를 먹이는 것이 힘들기에 젖을 짜서 보관해야 하므로 필요하다. 자연 분만 시에는 당장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변수에 대비해서 준비하는 것도 좋다.


·슬리퍼 및 핸드폰 충전기

슬리퍼는 보통 병원에 준비 안 되어 있는 경우가 있기에 몸이 괜찮으면 이동을 해야 하므로 준비하는 것이 좋고 충전기도 미리 챙기는 것이 좋다.


·양치용 가글

출산 직후 칫솔질을 하기 어려운 상태를 대비해서 가글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무리한 칫솔질은 잇몸을 상하게 할 수 있다.


·카디건, 양말

여름에 출산했더라도 찬 바람에 직접적으로 산모가 노출되면 산후풍에 걸려 몸이 약해질 수 있기에 양말과 카디건은 필수이다. 양말은 될 수 있으면 길이가 긴 양말이 좋고 레깅스로 하체를 전부 보호해 주는 것도 방법이다.

*산후풍이란? 출산 후 관절이 아프거나 몸에 찬 기운이 도는 한의학상 증세


그 밖에,

머리끈, 머리띠, 빗등 기본적인 생활용품도 챙긴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스킨, 로션 기초화장품과 경우에 따라 립밤 튼살 크림을 챙겨서 발라주면 회복하는데 도움이 된다. 경우에 따라 유두보호크림도 챙기는 경우도 있다.

이전 01화01. 타임머신을 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