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산후우울증
출산부터 육아까지 남편 눈으로 바라보다.
3. 산후우울증
우리는 산후조리원을 선택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조용히 푹 쉬다가 집으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그리하여 아내는 2주간 병원에서 장기입원을 선택했다. 이것이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 결과를 바로 말하자면,
2주를 채우지 못하고 10일 동안 입원 생활을 하고 집이 아닌 처가로 아내와 아들은 들어 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처가는 우리 집과 차로 10분만 이동하면 갈 수 있는 위치였다. 가족의 생이별은 막을 수 있었다.
산후조리원이 없던 산부인과에서 장기 입원으로 푹 쉬면서 산후조리를 하려고 했던 것은 우리 부부의 최악의 한 수였다. 무를 수만 있다면 돌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은 정도였다.
오랜 병원 생활이 산후우울증으로 가는 급행열차인지는 나와 아내는 알 길이 없었다. 하기야 모르는 것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는 초보 엄마, 아빠이니까 말이다.
병원 생활하는 동안 하루 이틀 아내가 변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출산부터 시작해서 아내는 변신의 귀재가 된 것 같았다. 대체 어떤 모습이 아내의 본모습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 또한 별일이 아니겠다고 생각했지만, 하루 이틀 병원에서 지내는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우울감은 급속도로 심해졌다.
아내는 신앙생활도 열심하고 누구보다 밝은 성격이었다. 어떤 어려운 일도 긍정적이고 힘 있게 극복하는 아내라는 것을 알기에 지금 이런 모습이 혼란스러웠다. 아내에게 산후우울증이라니...
나도 아내도 아내를 알고 있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변수였다.
‘출산부터 시작해서 쉬운 것이 하나도 없다.’
잠시 내 이야기를 하자면, 온유가 태어나기 2년 전 아내와 나는 결혼을 했다. 첫사랑인 아내를 죽자 살자 쫓아다닌 결과 아내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결혼 당시 나는 작은 카페를 운영하고 있었다.
문제는 카페폐업을 앞두고 아내와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 시절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에 아내는 모든 것을 안아주고 이해하며 단 한 번에 잔소리도 없이 밝은 모습으로 내 옆을 지켜주었다. 카페를 정리하고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5년 동안 했던 카페가 망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서 나는 회사에 입사했다.
오랜만에 다니는 회사이고 내부에서도 막내 생활을 하며 신입사원 티를 팍팍 내던 때에 아내의 임신과 출산이 이루어진 것이다. 나는 다시 시작한 사회생활을 누구보다 잘하고싶은 욕심이 컸다.
“무더운 여름.”
조금만 관심 있게 본다면 이 시기는 산과 바다로 가는 휴가철이다. 바로 여름휴가 때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여기서 나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실수를 하게 된다. 출산휴가를 쓰지 않고 짧은 여름휴가를 마치고 회사로 복귀한 것이다.
산후우울증으로 힘들어한 아내를 뒤로한 채 나는 병원에서 출·퇴근을 했다. 내가 출근할 때면 창밖으로 나를 바라보던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손은 흔들지만 꼭 가야만 하냐고 묻는듯한 애절한 아내의 모습말이다.
내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내가 출근하고 나면 아내는 병원에 홀로 남겨져 우울의 늪으로 한 없이 끌어당기는 호르몬 변화를 온몸으로 느끼며 시간을 보내야 했다.
못난 남편으로 인해 계획에 없던 시나리오가 생긴 것이다. 아직도 술 한잔 기울이며 그 시절 이야기가 나오면 난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어 진다. 등짝을 여러번 내어주어도 아내가 그 당시 서운함을 풀기는 힘들 것이다.
아내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새벽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을 호소했다. 잠든 내 귓가에 들려오는 아내의 울음소리로 알람처럼 새벽마다 깨기를 반복했다. 울음소리는 흐느끼는 수준이 아니라 대성통곡하는 수준이었다.
출산과 마찬가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눈물 흘리고 고통스러워하는 아내를 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손을 잡아주고 토닥여주는 위로와 격려뿐이었고,
당시에는 아내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 희망에 문장들로 애써 괜찮다며 안심을 시켜주는 것이 다였다. 매일 새벽마다 이 상황은 반복되었고 내가 출근하고 난 뒤 아내는 혼자서도 수없이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그러다 아내 입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난 이 모든 것이 꿈이었으면 좋겠어, 아이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어.”
감정 컨트롤이 전혀 되지 않는다며 힘들어했다.
이 모든 상황을 알고 있는 장모님이 손을 내밀어 주셨다. 원래 병원에서 퇴원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아내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은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장모님 장인어른도 분다고 건강하시게 일을 하시는 맞벌이 부부라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병원에서 퇴원 후 아내와 아들은 집이 아닌 처가로 가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육아.
그 거룩한 단어... 하지만 우리 부부는 시작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산가족처럼 이별하게 되었다.
나까지 처가에 들어가서 지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기약 없는 반쪽짜리 국내산 기러기 아빠가 되었다.
다행히 같은 지역이고 가깝기에 퇴근 후 아내와 아들을 잠깐 보고 잠은 따로 자는 부부가 되었다.
눈물이 마를 틈이 없던 아내와 핏덩이 아들과 헤어지고 나면 내 손에는 두 손 가득 빨래만이 가득했다.
그렇게 아내는 아내 나름대로 엄마라는 성장의 과정을 거쳐야 했고, 나 또한 나름대로 생각지 못했던 외로움을 이겨내며 아빠의 성장 과정을 거쳐야 했다.
아내의 산후우울증은 쉽게 극복이 되지 않았다.
눈물이 마르기 전에 다른 눈물들이 눈에서 쏟아져 나왔다. 살도 눈에 띄게 빠졌다. 역설적이지만 이때 아내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아내와 대화중 다시 한번 아내 입에서는 놀라운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이 말을 들었을 때는 내 귀를 의심했다.
“여보. 나 티브이에서 우울증으로 자식을 죽이는 엄마 마음이 왜 그런지 알 거 같아.”
그 말을 듣고 있자니, 무서웠다.
그런 일이 절대 없도록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만큼 우울증은 무서운 병이고, 지금까지 봐온 아내와 산후우울증에 고통받는 아내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다행스럽게 하루 이틀 삼일...
시간이 지나갈수록 아내의 마음의 병은 많이 치유되었다. 아내의 엄마이자 아빠인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관심 속에 웃음을 되찾기 시작했고, 나도 아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아내와 내가 진짜 아빠·엄마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사이 아들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훌륭하게 자라고 있었다. 작은 체구로 태어난 아이는 한 달 사이 제법 살이 오른 빵떡이 되어 통통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고마웠다.
아내에게도 아들한테도. 그렇게 한 달쯤 다 되어서 우리 가족은 큰 결심을 하고 장모님의 도움 없이 진짜 홀로서기를 시작하기로 했다. 이전보다 많이 치유된 아내도 직접 부딪혀 아이를 책임지는 육아를 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바빠서 우울감도 덜 할 거 같다며 대견한 말을 했다.
나도 그런 아내를 적극적으로 응원하고, 혼자가 아닌 같이하는 육아를 하겠노라 다짐했다. 내가 아이와 시간을 많이 갖게 된 이유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아내를 위해서였다.
“아내에서 엄마로.”
“남편에서 아빠로.”
“튼튼이라는 태명에서 온유로.”
우리 가족은 이전과 다른 이름을 하나씩 얻게 되었다.
그리고 진짜 한 팀으로 첫출발을 하게 되었다. 가족이 제대로 뭉치는 데 한 달이나 걸렸으니 진짜 잘해보자.
아내와 다짐을 했다.
《산후우울증 극복하기》
1. 제일 중요한 것은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을 한 후 꾸준하고도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다.
2. 우울증은 나뿐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이 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3. 내 성격이 잘못되었거나 또는 벌을 받아서 우울증이 생긴 것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의학적 질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4. 우울증 치료를 인생에서 겪게 되는 하나의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용기를 가지도록 한다.
5. 충분한 영양 섭취와 휴식을 취하여 신체도 잘 치료되도록 한다.
6. 가능한 한 햇볕을 많이 쬐도록 한다. 또한, 실내 채광을 너무 어둡게 하지 않는 것이 좋다.
7. 혼자 있는 시간을 줄인다. 억지로 다른 사람과 대화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대화는 나중에 마음이 내킬 때 해도 된다.
8. 우울증에 관한 서적, 인터넷 등을 통해서 우울증이라는 질환에 대해서 잘 알아둔다. 자신의 병을 잘 알고 있으면 치료에 도움이 된다.
9. 만일 중요하게 내려야 할 결정이 있다면 그것은 우울증이 회복된 후로 미룬다.
10. 다른 사람들의 도움 받는 것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출산 후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산후우울증은 있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의 사랑이다. 사실 아내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할 때 남편이 할 수 있는 건 없다. 단지 무한한 사랑과 걱정 그리고 매일 아내가 사랑받고 있고 절대 혼자라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해야 한다. 출산 직후 산후우울증이 있든 없든 꼭 표현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