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행복을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
에필로그
서른여덟, 이제 마음도 익어가다.
내 주머니 속 용돈을 훔칠 책이 있는지 오랜만에
가족과 함께 서점을 찾았다.
아내는 육아 관련 서적을 뒤적거리고
요즘 삼국지에 푹 빠져 있는 아들은 원하는 그림 삼국지 책을
찾아서 환한 미소와 함께 계산해 주기만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아들의 바람과 다르게 나는 묵묵하게 괜히 이곳저곳을 서성거려 본다.
베스트셀러, 자기 계발, 수필, 다양한 장르들이 나를 유혹하지만 나는 쉽사리 책을 선택 하지 못했다.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책을 소홀히 하는 나를 채찍질하며
‘인간은 책을 읽어야 살아 숨 쉰다.’는 주문을 걸어보며
애써 나에게 맞거나 나의 눈길을 사로잡는 책을 찾아보지만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토록 잘 읽던 자기 계발서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투자, 자기 계발, 대화의 기술 등 많은 책들을 뒤로한 채
한참을 나를 붙잡은 책들은
“마흔에 읽는 니체, 50에 읽는 순자 등”
10대 20대 그리고 30대 초반이라면 관심도 없을 책에
발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고민해 본다.
결국 내 입에서 나온 말은
“여보, 난 다음에 사야겠어.”
결국 결정하지 못했다.
내 나이는 좋게 포장하면 인생이라는 넓디넓은 벌판에서
추수를 위해 조금씩 익어가는 나이가 아닐까 싶다.
포장된 말에 기분이 좋기도 하지만
사실 ‘나도 이제 나이를 제법 먹었구나’ 하는 생각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진다.
흔히들 말해 부와 명예라는 성공에는 턱 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나름 성공이라는 막연한 꿈을 위해 달려왔다.
그리고 수많은 감투들을 훌륭하게 해내고자 노력했다.
좋은 아들
좋은 남편
좋은 아빠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좋은 사람...
이 많은 감투를 지키고자 노력해 온 나를 스스로 칭찬해 보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은 시리기도 하고 공허함이 밀려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이 감투들은 나만 특별히 쓰는 도깨비감투 같은 것은 아니다.
나와 함께 감투를 쓰며 다양한 성격과 다양한 위치에서
익어가는 사람들이 생각났다.
내 옆에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부터 친구들 그리고
이제는 남이나 다름없는 스친 인연들까지.
서점에서 쏘아 올린 작은 울림은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집에 돌아온 뒤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한참을 훑어보았다.
목록에는 분명 친구라고 하지만 연락하면 어색할 친구들부터 언제 연락해도 반가운 오랜 친구들까지
실제로 연락하는 사람은 몇 안되지만 친구목록은 수백 명의 이름들로 가득했다.
그들의 프로필 사진을 찬찬히 보며 혼자서 말을 걸어본다.
‘잘 지내고 있구나?’
‘아이가 벌써 저렇게 컸네?’
‘세월 참 빠르네.’
이렇게 한참 동안 핸드폰을 바라보며 묻지도 않은 내 안부를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주며 목록 속 친구들과의 작별인사까지 마친다.
‘요즘 나는 무엇이 행복할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질문을 던져본다.
학창 시절은 친구들과 모여 어른흉내를 냈던 소소한 탈선의 재미, 눈빛마저도 반항심이 가득하면 마치 멋있는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마냥 세상 무서울 것이 없는 게 행복이었다.
20대는 진짜 성인이 되어 자유를 얻어 노는 게 즐거웠고
다양한 것을 경험하고 젊음의 패기로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꿈이 있음이 행복했고 날을 꼬박 새더라도 끄떡없는 체력이 아직 시간이 많다는 증거인 마냥 여유를 부리며 지내왔다.
그리고 30대 후반이 되고 나니
이제야 조금씩 알게 되었다.
행복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나로 시작되는 행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 선배들에게는 아직 새파랗게 젊음 놈이 감히 인생을 논하냐고 교만하다 질책받고 비난받을 수 있겠지만,
겸손하지 못한 나는 짧은 인생 살아보니 그러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나는 내 인생에 행복을 나로 시작되게 찾아보기로 했다.
잠시 제자리에 멈춰서 숨을 깊게 들여 마시고
금세 코로 한 움큼 들여 마신 공기가 내 가슴에 가득 차기 시작하면 눈을 돌려 주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 숨은 그림 찾기 하듯이 자리 잡고 있는
행복들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 하고 내뱉으며 듣는 사람은 없지만 나지막이 말해보았다.
“저는 멀리서 행복을 찾지 않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