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있다가 없으니까.

없다고 메마른 인생은 아니었다

by 온아


다시 비에 젖다 보면 메마른 땅은 촉촉해진다.


가로등 불빛아래에서

한 소년이 쉼 없이 뜀박질을 한다.

땀은 주르륵 떨어지고 가빠지는 호흡만큼이나

공이 땅에서 튕기는 소리도 점차 빨라진다.

울퉁불퉁한 골목길 덕분에 마음처럼 공과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행동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늘 반복되고는 한다.

비가 오면 공이 미끄럽지 않아 오히려 좋다며

진흙탕 천지인 운동장에서 슛을 쏘고.

겨울에는 손이 깨질 듯 춥지만 농구가 너무

하고 싶어서 집에서 목장갑 하나를 찾아서 껴고

시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슛을 던진다.


어릴 적 밥 먹는 거보다 농구하는 게 좋았던 소년은

바로 ‘나’이다.


몸은 어른 같지만 생각은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사춘기 시절 오직 농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열망과

농구가 좋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누구보다 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지만,

나름 치열하게 살았다.

한때 농구선수가 꿈이었지만,

꿈은 꿈일 뿐 먹고사는데 집중하면서 취미조차 되어버리지 못한 농구는 기억 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누가 봐도 아저씨가 된 지금.

이래저래,

혹은 그럭저럭 먹고 살만 하게 되니

다시 농구공을 잡을 기회가 생겼다.


아내의 응원과 더불어

아빠 껌딱지 아들이 크면서 나에게도 여유 시간이 생긴 것이다.

창고 속 낡은 농구공 하나를 꺼내어

자전거 가게에 들고 가본다.

사장님께 허리를 굽히며 부탁을 하고

공에 내 설렘과 비례하게 바람을 빵빵하게 넣고

다시 농구공을 던질 때를 기다린다.


해가 지고 아들이 곤히 잠들고 나서

오랜만에 공을 들고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이미 코트에 자리 잡은

중·고등학생들의 거친 말과 거친 몸짓에

나도 마치 그들과 같은 나이가 된 거 같아서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비록 한 경기에 가슴은 터질 듯 빨리 뛰고

상대편이 분명 왼쪽으로 돌파하는 걸 알지만

나는 제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다.

집에 돌아와 샤워를 마치고 종이처럼 바닥에

널브러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이고,

당장 내일 아침 온몸이 뻐근할 게 눈에 훤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아이를 낳았더라면

아들뻘 되는 아이들과 같은 시간과 같은 에너지 레벨로

뛸 수 없다.

내가 다시 농구공을 잡고 코트로 가는 설렘과

땀 흘리고 나서 다리는 후들거리고 몸이 안 따라줘서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늘 가볍고 행복하다.


동호회 선수라면 모를까

이제 농구선수라는 꿈을 이루는 것은 냉정하게 말해

제로이다.


이제 취미생활이고 굳어 버린 몸은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다시 공을 잡고 코트를 뛰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다.


어느 누구에게나 어릴 적 꿈은 있다.

꿈은 크기가 작거나 혹은 크거나,

꿈에 내용이 화려하거나 혹은 소박하거나...

어떤 모습을 했든지

다른 누구한테가 아닌 스스로에게 있어

가슴 뛰고 설레었던 그 무언가가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작가가 꿈이었던 사람은

다시 펜을 잡아 아무것도 아닌 일상에

영혼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화가가 꿈이었던 사람은

다시 붓과 연필을 잡아

하얀 도화지에 내가 생각하는 세상을 그려 넣을 것이다.


솔직히

먹고살기 힘든 상황에서

가슴속에 어릴 적 꿈을 끄집어내라고 하며

취미생활을 하라는 가짢은 훈수 따위는 하고 싶지 않다.


행복하고 싶다면,

다시 열정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 사람이라면

그 사람들에 한해서

“다시 시작해보라고 하고 싶다.”

가슴이 설레는 순간

행복이 나에게서 멀지 않다는 기분이 느껴질 것이다.

그럼 질문하겠다.

“당신은 어릴 적 꿈이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