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돼지는 하늘을 볼 수 없다.
나는 돼지가 아니다.
우리는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
연일 반복되는 미세먼지 관련 뉴스와 안전문자는
아무 생각 없이 반복되는 일상에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충분하다.
사실 심하지 않은 미세먼지에는 크게 반응을 하지 않는다.
아마도 현재의 대기(大氣)에 적응을 하며 살아가고 있나 보다.
마치 어릴 적 산성비가 내리면 금방이라도
건물이 다 부식될 거 같았지만 지금은 산성비라는 말조차 어색하다.
출근길이든 퇴근길이든 늘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안경 너머 비춘 도심의 모습 또렷하게 보이는지 아닌지가
나만의 미세먼지 농도 확인 법이다.
아이가 없다면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 있지만,
아이가 있다 보니 미세먼지에 무관심으로 지낼 수는 없다.
코로나가 끝났지만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아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봄이 지나고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서
늘 지나쳐 오는 것들이 또렷하게 보이는 횟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눈이 안 좋아서 뿌옇게 흐린 세상을 보다가
나에게 딱 맞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들과 이름 모를 산이 또렷하게 보이고,
가깝게는 참새 몇 마리가 앉아 있는 전기 줄까지 선명하게 보인다.
미세먼지가 없는 날은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나이가 먹다 보니 여름이 좋아지는 이유가 하나 더 늘은 셈이다.
봄과 여름의 사이,
날이 너무 좋아 오랜만에 아들과 산책을 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걷다가 아들이 말을 했다.
“아빠, 하늘에 비행기가 날아가고 있어!”
아들의 말 한마디에 나는 오랜만에 건물이 보이는 시선의 하늘이 아니고
고개를 들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올려 다 보았다.
‘이 얼마 만에 하늘을 보는 건지.’
아무것도 없는 파란 하늘에
흰색 꼬리처럼 연기를 뿜고 가는 비행기만이 홀로
하늘이라는 도화지에 선을 그어가고 있었다.
나도 어릴 적에는 하늘을 보며 비행기가 지나가면
재미난 생각을 했던 게 생각이 났다.
“어? 저거 우주선이 아닐까?”
호기심 가득한 생각으로 한참을 보고는 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높은 하늘을 본지가 언제인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동심을 잃어가는 것이다”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은 하늘을 바라볼 여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괜한 문장으로 어른인 나에게 스스로 시비를 걸어본다.
집에 돌아온 나는 목을 한참이나 풀어본다.
오랜만에 하늘을 한참을 올려 보아서 인지 목이 뻐근하다.
내 시선은 늘 핸드폰, TV, 노트북, 운전 그리고 책.
전방 또는 45도 방향을 바라보며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누구 하나 그렇게 하라고 시키지 않았는데 말이다.
‘나는 돼지가 아닌데 왜 앞만 보고 바닥만 보고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 양옆을 가린 경주마도 아니고
고개를 들 수 없는 돼지도 아닌데 말이다.
잠시 하늘 한 번 바라볼 여유가 없을 정도로 바쁜 사람인가 의문이 들었지만
딱히 그 정도로 바쁜 것도 아니다.
아들과 하늘을 바라본 후 나는 잠시 멈춰
맑은 하늘을 바라보는 횟수가 많아졌다.
5초만 여유를 갖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고,
그 쉬운 행동은 생각보다 큰 행복으로 다가왔다.
먹고살기 바쁜 일상이라고 하지만
걷다가 잠시 하늘을 바라볼 여유와
사무실 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을 잠시 바라 볼 여유를 찾는 것은 정말 사소한 일이다.
그동안 그러지 못하고 있었다는 게 뒤늦게 아쉽게 느껴졌다.
이것이 특별하지 않지만
멀리서 행복을 찾지 않겠다고 다짐한 내 첫 행복이었다.
아직 맑은 하늘을 보며 행복한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대견하다고 느끼며 마음속에서 박수를 보내본다.
이제 되묻고 싶다.
“여러분은 일주일에 몇 번이나 높은 하늘을 바라보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