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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Feb 26. 2024

티비를 껐다.

적어도 이 시간만큼은

*저는 TV 혹은 텔레비전 혹은 티브이가 아닌 '티비'가 좋습니다.






집집마다 식사를 하는 풍경은 다를 것이다.

식탁이 있으면 식탁에서 밥을 먹고  

밥상으로 밥을 먹으면 밥상에서 밥을 먹는다.


우리 집도 여느 집과 다르지 않은 저녁시간을 보낸다.

아침은 등원과 출근시간 같은 아내와 아들이 함께 밥을 먹는 시간이 많고 출근시간이 빠른 나는 보통 아침을 거르거나 대충 입에 스치듯 아침을 먹는다.  

   

어릴 적부터 저녁을 제외하고는 가족들과 함께 식사한 기억이 별로 없다.

그러다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각자의 식사시간처럼 따로 밥을 먹었던 거 같다.

사실 기억도 흐릿하다.

그만큼 함께 하는 저녁시간이 중요하지 못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밥 먹으라는 엄마의 말에 툭하면 먹기 싫다고 했던 기억만 강하게 남아있다.

나만의 반찬투정이 아니었나 싶다.   

과거 우리의 밥상의 컨셉은 단어 하나로 정의가 내려졌다.


"silence "


결혼하고 나서는 주말은 거의 가족과 붙어 있기에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에 세 식구가 함께 식사하는 시간은 저녁시간이 유일하다.

아마도 많은 가족들이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아이의 하원과 더불어 퇴근한 아내가 분주하게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나는 아들의 친구가 되어 함께 시간을 보낸다.

늘 같은 루틴의 저녁 시간이다.


아들의 체력을 따라가지 못해 몸과 마음이 지쳤을 무렵

아내가 저녁식사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알리는 신호를 보낸다.

난 티비를 켜고 큰소리로  

    

“밥 먹자!”     


를 외친다.

해방감에 심취해 맛난 저녁식사를 시작한다.


그리고 밥을 먹으면서 온 가족은 티비를 바라본다.

7살 아들도 이제 제법 만화가 아니어도 다른 프로그램들도 이해를 하고 재미있는 부분에서는 배꼽을 잡고 웃을 때도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일부로 재미난 프로그램을 틀어줄 때도 있다.

물론 내 몸도 쉬는 평온한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도 말이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식사 시간에 티비를 켜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그냥 그날은 티비를 켜지 않았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마음먹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저 우연이다."     


고요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맛있게 식사를 했고,

하루 있었던 일 그리고 시시콜콜한 대화들이 오고 가기를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티비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이 서로를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티비로 고정된 두 눈은 이제 서로를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고

귀는 티비에서 나오는 잡다한 소리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더 이상 티비 소리가 거실을 채우지 않았다.

엄마, 아빠, 그리고 아들의 목소리가 거실을 채우고 있었다.    

 

그날 이후 티비가 없는 저녁밥상은 우리에게 자연스러워졌다.

저녁시간에 거실에 있는 티비는 늘 검은색 바탕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있던 티비를 안방으로 넣는다던지 티비를 없앨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만큼 미디어를 멀리 하고 싶은 마음 없다.

아직 봐야 할 넷플릭스 시리즈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족이 하루동안 흩어짐에서 모이는 순간이 저녁식사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유튜브를 지웠을 때처럼 긍정의 효과를 몸소 체험하고 있다.

티비는 재방송도 되고 수많은 OTT 채널에서는 다시 보기 몰아보기 등 내 시간과 내 입맛에 따라 선택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가족에 대화는 '다시 보기' '몰아보기' '재방송' 따위는 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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