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화를 신기 전부터 이미 훈련된 사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건 내가 스스로 선택한 꿈이라기보다는
아빠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 심어둔 씨앗 같은 것이었다.
아빠 역시 군인이었다.
내 입학식이나 졸업식에 아빠가 참석한 기억은 없다.
가족끼리 오랜만에 외식을 하기로 한 날에도,
아빠는 늘 식탁에 앉기 전 전화를 받았고
그 전화는 언제나 부대에서 걸려왔다.
“먼저 먹고 있어.”
그 말과 함께 아빠는 늘 자리를 떴다.
1년에 한 번씩 찾아오는 보직 이동,
그리고 '가족은 절대 떨어져 살면 안 된다'는
엄마의 철칙 같은 지침 덕분에
나는 초등학교를 여섯 번, 중학교를 네 번 옮겨 다녔다.
어느 날은 정말 느닷없이, 아빠의 서울 보직 이동이 하루 만에 결정됐다.
나는 잘 다니던 중학교 3학년을,
친구들과 학교를 그대로 뒤로한 채 서울로 올라왔다.
이상하게도 그때의 나는 슬프다기보다
이미 익숙했다.
서울여상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던 나를 뒤로하고
엄마가 원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나는 전학을 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해져서, 한 학교를 오래 다니면
오히려 내가 먼저 지루해질 것 같았다.
아마 그땐 친구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
내게 어색하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 생각은 달랐다.
고등학교 때 전학을 다니면 성적이 떨어질까 봐 걱정하셨고,
결국 아빠만 이동했다.
나는 서울에 남았다.
그건 처음으로 이동하지 않는 선택이었고,
그 선택마저 내가 정한 것은 아니었다.
부모님 바람과 달리 내 성적은 점점 나빠져갔다
그런데도 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주눅 들지 않는 편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건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성격의 문제였다.
나는 원래 꽤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성적표를 애써 외면한 채,
“그래도 괜찮아”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그 학교에서 꿋꿋하게 3년을 버텼다.
잘 안 맞아도, 원하는 방향이 뭔지 몰라도,
일단 견디는 게 잘하는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특강 맨 뒷장에 실린 숙명여대 ROTC 홍보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어? 이건 좀 특이한데.’
나는 원래 남들이 잘 안 하는 걸 더 좋아했다.
마침 그 즈음, 아빠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던졌다.
“숙명여대에 ROTC라는 게 있더라?”
그 한 문장이 내 마음 어딘가에 불을 붙였다.
그날 이후 나는 무조건 ROTC가 있는 대학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졸 이후 1년을 재수로 보냈고, 삼수가 하고싶어 다음 해 공부계획을 짰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있을 곳을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고,
그 사실을 내 뇌는 이미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게 아빠 손에 이끌려 나는 충청도에 있는 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울면서 교문을 지나가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 학교에 ROTC는 있네. 다행이다.'
그때의 나는 완전히 포기한 사람도,
완전히 희망을 붙든 사람도 아니었다.
울면서 들어가면서도
다음 문 하나를
조용히 계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