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격증을 손에 쥐었지만 마냥 기쁘지 않았던 이유
여대 ROTC는 학교별로 선발했지만, 지방 대학은 권역별로 묶여 경쟁했다.
경기, 강원, 충청, 전라, 경상권 등
나는 충청권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이름 모를 이들과 뒤섞여 순위를 다퉜다.
당시 세상은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열풍으로 뜨거웠다.
그 붐은 ROTC 지원율마저 기형적으로 끌어올렸고,
여군 경쟁률이 6대 1을 훌쩍 넘겼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너도 그 드라마 보고 지원한 거야?”
나는 코웃음을 쳤다. “난 본 적도 없는데?”
역시 그랬다. 나는 어떤 집단에 대해서도 환상 따위는 갖지 않는 사람이었다.
군대는 내게 로망이 아니라 살아남아야 할 현실이었다.
그렇게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마음 한구석에서 낯선 질문이 고개를 들었다.
‘내가 과연 병력들을 이끄는 지휘자가 될 수 있을까?’
..
마침내 화면에 글자가 떴다.
[수험번호 XXXX-22-002 합격]
합격이었다.
이제 나는 매일 아침 무엇을 입을지 고민하는 대신,
빳빳하게 다려진 '단복'을 입고 캠퍼스로 향하면 되었다.
매일 아침 옷 고르는 수고를 덜어줄 단복의 등장은 분명 반가운 일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냥 기쁘지만은 않았다.
뜬금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건 이유 모를 감정이 아니라, 앞으로 짊어져야 할 리더로서의 명확한 부담감이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나 정말 괜찮을까.’
그리고 내 마음을 조금 막막하게 만든 건 또 따로 있었다.
'우리 학교의 유일한 여자 후보생'
단 한 번도 속해본 적 없는 철저한 남초 집단 속에,
나는 단 한 명의 여자 후보생으로 서게 되었다.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창한 각오 이전에
당장 내 옆에 설 수많은 남자애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가 더 큰 숙제였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 생소한 구조 속에서,
나는 또 나만의 생존법을 찾아 나서야만 했다.
기어이 스스로 선택한 이 길 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