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밑 3cm와 공간의 부재
거울 속의 나는 낯설었다. 사실 꽤 마음에 들기도했다.
'진짜 귀밑 3cm로 자르다니?'
여자 후보생들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이자, 가장 상징적인 변화였다.
전투복 깃에 머리카락이 닿지 않아야 한다는 규정.
훈련을 위해 귀밑 3cm의 짧은 머리를 가져보는 경험을
평범한 20대 여자가 인생에서 몇 번이나 해볼 수 있을까.
그 낯선 머리칼을 만지며 첫 관문인 2주간의 동계 기초군사훈련을 준비했다.
이 훈련을 무사히 마쳐야만 비로소 정식 후보생으로 인정받는 '입단식'을 치를 수 있다.
무엇이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하는 법.
우리에게 이 훈련은 우리가 후보생이 될 자격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하는 치열한 시험대였다.
그 뜨거운 증명의 장에 우리 학교 동기 19명이 모였다.
우리는 앞으로 매일, 질리도록 서로를 보게 될 것이다.
학기 중에는 물론이고 입영 훈련 전 선행 학습 기간에도 늘 함께일것이다.
같은 단복을 입고, 같은 군사학 수업을 듣고, 매일 아침 연병장에서 땀을 흘려야 하는,'운명 공동체'
우리는 무엇이든 '함께'일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일찍 나를 분리했다.
우리 학교 학군단 건물은 캠퍼스 구석, 눈에 띄지 않는 허름한 지하에 있었다.
여자 후보생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라 그곳엔 여자를 위한 공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남자 동기들의 관물대는 한곳에 듬직하게 모여 있었지만, 내 자리는 그 대열에 끼지 못했다.
다행히 앞서 길을 닦아준 두 명의 선배 덕분에 자리는 마련되었다.
학군단 건물에서 5분 정도 따로 떨어진 여자 후보생실.
고작 5분의 거리였지만, 그 공간의 부재는 나를 '함께'가 아닌 '혼자'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동기들이 관물대 앞에서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노하우를 공유하고 짐을 꾸릴 때,
나는 홀로 떨어진 공간에서 적막하게 짐을 챙겨야 했다.
별거 아닌 듯 보이는 그 짧은 물리적 거리가,
동기들과 얼른 친해지고 싶었던 나의 조급한 욕심을 자꾸만 가로막았다.
덩그러니 놓인 내 관물대 앞에서 나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이들 사이에 잘 섞일 수 있을까?'
내가 이들 사이에 섞일 수 있을지, 아니 오히려 그들을 앞서나갈 실력이 있는지,
이제 오로지 나 자신을 입증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