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는 처음이라

by 정희리

엄마는 8월 8일 새벽에 돌아가셨다.

내 휴대폰에 저장된 엄마 집 전화 단축 번호는 88번이다.

엄마가 팔팔하게 오래 사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엄마 번호를 88번에 저장했다.

근데 하필이면 8월 8일, 엄마가 세상을 떠나셨다.


난생처음으로 장례식장을 예약했다.

불과 30분 전까지만 해도 우느라 정신 못 차리고 있던 내가 눈을 부릅뜨고 장례식 절차를 알아보고 있다.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친구를 도와 장례식장을 돌며 이것저것 알아보러 다닌 적은 있지만, 내가 상주가 되어 장례식 절차를 알아보긴 이번이 처음이다.

빈소를 배정받자마자 상복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재단 장식이며 조문객 식사 등 장례식 절차에 필요한 제반 사항들을 챙겨줄 직원들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왔다.

엄마를 애도하거나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바쁜 틈틈이 친척이나 지인들에게 연락도 돌려야 했다.

누구에게 알려야 할지 몰라 엄마 카톡을 보고 최근까지 연락이 있는 분들께만 부고를 알렸다.

난 그냥 친한 친구 한 명에게만 알리고 페북에 소식을 올렸다.

엄마나 나나 대인관계가 넓지 않아 빈소도 작은 평수로 잡았다.

마지막 가시는 길 엄마가 초라해 보일까 봐 재단 꽃은 3단짜리 고급형으로 올려드렸다.

꽃을 좋아하는 엄마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살아생전 꽃 선물 한 번 못 해드린 나의 죄책감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한숨 돌리는데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 둘러보니 모든 게 다 낯설기만 했다.

여행 가서 내가 직접 찍어드린 엄마의 영정 사진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사진 속 엄마는 활짝 웃고 계셨다. 그땐 엄마도 나도 알지 못했다. 이 사진이 영정 사진으로 쓰일 줄은.


조문객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했다. 조문객의 대다수는 내 손님들이었다.

부고를 알리지 않았는데도 꽤 많은 분들이 찾아와 주셨다.

건너 건너 소식을 듣고 일부로 먼길까지 와주신 분들께 죄송하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텅 비었던 접대실은 평소 코로나 핑계로 못 만나던 이들로 가득했고, 여기저기서 술판이 벌어졌다.

주동자는 나였다.

난 술병을 들고 테이블을 다니며 조문객들에게 술을 권했다.

그 자리에서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접대가 술밖에 없었다.

평소 나와 술대작을 하던 지인들이라 서로 주거니 받거니 신나게 마셨다.

우리 엄마가 쏘는 술이니 실컷 마시라며 웃는 날 안쓰럽게 바라보는 눈빛들을 향해 난 더 크게 웃으며 술잔을 내밀었다. 냉장고에 있는 술을 다 마시기 전엔 아무도 못 간다고 으름장을 놨지만 결국 나 혼자만 남았다.

조문객들이 돌아가고 텅 빈 빈소에 앉아있으니 옆지기가 소주를 들고 온다. 우린 그렇게 둘이서 또 술을 마셨다. 그런데 하나도 취하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5시에 자연스레 눈이 떠졌다.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엄마 밥 차려 드려야 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빈소였다. 헛헛한 공기가 내 몸을 감쌌다. 싸늘함도 따스함도 아닌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밤사이 다 타들어간 향을 새로 꽂으니 비로소 엄마가 내 옆에 없다는 게 실감이 났다.

영정 사진 속 엄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백혈병 진단 후 7개월간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환한 미소가 내 마음을 강렬하게 할퀴고 지나갔다.

나에게 남은 건 눈물이지만 엄마에게 남은 건 미소였다.

이제 엄마는 더 이상의 고통도,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으로 가셨다. 사진 속 모습처럼 환하게 웃으면서.

그러니 나도 더 이상 울어선 안 된다. 날 위해, 엄마를 위해, 날 걱정하는 모두를 위해.


둘째 날도 많은 조문객들이 찾아와 주셨다.

너무도 고마운 마음에 역시나 테이블을 돌며 술판을 벌였다.

술 좀 그만 마시라는 친구에게 한 마디 했다.

"사람은 밥심으로 살고 상주는 술심으로 산다!"

내 어이없는 말에 친구 하나가 내 술잔을 가득 채웠고, 난 그 술잔을 털어 마셨다.


가끔 조문객이 끊길 때가 있는데 그럴 때면 미치도록 가슴이 공허했다.

허전한 마음을 어떻게 달래야 좋을지 몰라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고, 그럴 때면 어김없이 눈시울이 붉어졌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없는 세상은 상상해본 적 없는데, 이제 비현실적 사실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조문객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씩씩하게 맞았다.

억지로 밝은 척을 한 건 아니다. 그저 그들이 와줘서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웃음이 번졌다.

내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조문객들을 맞이하니 친구 하나가 말한다.

원래 장례식장에서는 정신없어서 슬픔을 못 느낀다고. 나중에 유품 정리할 때 미친 듯 사무칠 거라고.

남 일처럼 웃는 내 모습에 옆에 있던 친구가 한 마디 거든다.

- 그렇게 참다가 나중에 엄마 보고 싶어지면 어떡하려고?

내가 말한다.

- 괜찮아. 울면 돼.

나의 생활신조가 고스란히 반영된 대답이었다.


내일의 걱정으로 오늘을 망치지 않는다.


나와 엄마는 거의 평생을 붙어살았기에 유착관계가 깊었다.

엄마에게 있어 나는 딸이요, 친구요, 남편이요, 유일한 보호자였다.

그렇기에 누구보다도 엄마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게 뻔했다.

매일 엄마 보고 싶다며 남몰래 질질 짤 거라는 게 너무도 자명했다.

아마도 평생토록 엄마를 그리워하며 눈시울을 붉힐 것이다.

오죽하면 엄마가 이런 당부를 다 하셨을까.

'엄마 죽으면 울지 마.'


엄마가 돌아가시고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찌질이 울보라는 사실을.

장례식장에서 내가 웃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걸 인정했기 때문이다.

난 언제든 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엄마라는 단어만 들려와도 수도꼭지 버튼은 어김없이 눌러진다.

그렇기에 지금 당장 웃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어차피 내일 울 거니까, 오늘은 좀 웃어도 괜찮지 않을까?


바람이 왜 부는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바람은 그냥 분다. 바람이니까.

그렇듯 나도 그냥 산다. 사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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