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외투

by 정희리

장롱을 열어보니 엄마 외투들이 내 외투보다 많이 걸려 있다.

엄마의 유품들을 정리하면서 버리지 못한 것들이 몇 개, 아니 꽤 많이 있는데 그중 엄마가 입던 외투들을 대표적이다.

엄마는 나와 달리 멋을 아는 분이셨다.

겨울은 멋쟁이들의 계절이라는 말을 증명하듯 엄마의 겨울 외투들은 하나같이 멋스러웠다.

물론 나와 취향이 정반대라 내가 입을 만큼 욕심나는 옷은 없었지만 아까워서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나름 정리하고 또 정리했지만 여전히 엄마의 외투는 장롱을 꽉 채우고 있다.

장롱을 열 때마다 엄마의 외투들이 어서 나를 입어달라며 유혹하곤 한다.

그럴 때면 몇 번의 패션쇼가 시작된다.

이거 입어봤다가 저거 입어봤다가 생쇼를 하지만, 결국 패션쇼의 끝은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는 내 낡은 외투를 꺼내 입는 걸로 끝이 난다.

엄마의 외투를 입은 내 모습이 왜 이렇게 어색한지 모르겠다.

한 때 엄마의 몸을 따스하게 감싸주던 외투가 날 감싸고 있는 모습이 영 낯설기만 하다.

아무리 봐도 내가 아닌 것 같다.

그럴 때면 외투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본다.

엄마 냄새는 사라진 지 오래.

그냥 옷장 속 걸려 있던 옷감의 냄새만이 허전한 내 마음을 투박하게 위로할 뿐이다.


날씨가 추워질 때마다 난 이와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

입었다가 벗었다가...

그러다 한 번쯤은 엄마의 외투를 입고 외출을 하기도 한다.

근데 춥다. 정확히 얘기하자면 춥게 보인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춥게 느껴진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외투는 입어도 따스하지가 않다.

겨우내 엄마가 잘 입고 다니시던 옷이 분명한데 왜 내가 입으면 춥게 느껴지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


외투가 주인을 데려오라며 내게 심술을 부리는 건 아닌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도 장롱을 열고 엄마의 외투들을 뒤적거리고 있다.

하나하나 꺼낼 때마다 그 외투를 입고 다니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추운 날이면 엄마가 더 보고 싶어 진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추워서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은 다 핑계다.

난 늘 엄마가 보고 싶다.

추울 때도, 더울 때도, 걷을 때도, 가만히 서 있을 때도... 문득문득 엄마가 보고 싶어 눈물이 흐를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전화를 하곤 했는데, 이젠 전화를 걸 수도 없다.

엄마 집 단축번호 88번이 이젠 엄마 기일이 되어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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