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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리 Sep 20. 2023

글이요? 그냥 쓰면 됩니다

얼떨결에 시작된 글쓰기 수업

어떤 분이 내게 반색을 하며 물었어.

"작가라며?"

이런 질문을 받으면 상당히 당황스럽곤 해. 그다음 물음은 뻔하거든.

"그래서 어떤 거 써?"

"뭐 썼어?"

"유명해진 거 있어?"

작가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네! 라고 대답했다가 난처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난 유명세와는 거리가 먼 아주 소박한 작가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니 어느새부턴가 작가냐는 질문에,

"그냥 뭐..."

말을 흐리는 습관이 생겨버렸지.

이번도 마찬가지였어. 대충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분이 날 잡는 거야.

"우리 조카도 작가야. 여행을 다니면서 글을 써서 책도 많이 냈다나 봐."

"아, 네..."

그래서 자기는 어떤 글 써? 책은 냈어? 

다음 쏟아질 질문을 예상하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닌 거야.

대충 대답하고 자리를 피하려는데 그분께서 이런 말을 하셨어.

"부럽다. 글 잘 쓰는 사람."

툭 내던지듯 한 말이지만 그 말엔 진심이 묻어 있었어. 

그제야 나도 불편한 마음을 내려놓고 그분을 바라봤어.

희끗한 머리에 세월의 나이테처럼 깊게 파인 주름을 보니 예순은 족히 넘어 보였어.

하지만 청아한 음색과 미소는 영락없는 소녀였지.

왜 그런 거 있잖아. 초롱초롱한 눈에서 밝은 에너지가 막 뿜뿜 하는 사람.

"나도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그분의 진심 어린 고백에 나 또한 진심으로 다가가게 되더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요. 그냥 쓰시면 돼요."

그분은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거부하며 말했어.

"글은 재능이 있어야 하는 거야. 난 그런 재능 없어. 못 써."

"재능도 필요하지만 쓰는 게 더 중요해요. 아무 거나 일단 써보세요."

내 말에 그분은 도망치듯 자리를 피하셨고, 난 그분이 떠난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어.

그분 말씀대로 글은 재능이 필요할 지도 몰라. 

나한테 그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를 고민하며 괴로워하던 시절이 떠오르더라. 

그렇게 고민만 하다가 버린 숱한 시간들이 반성되면서 말이지.

글은 무조건 써야 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무조건 쓰고 또 써야 하는 거야.

내 안의 내가 내게 소리쳤어.

"재능 운운하며 떠들 시간에 한 자라도 더 쓰란 말이야!"

 

만나는 사람마다 스승으로 알라.

 

괴테의 말처럼 난 스승을 만났는지도 몰라.

바람처럼 스쳐갔던 그 스승 덕분에 정신 차리고 책상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했어.

재능도 노력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잖아? 

글 쓰는 걸 즐기자. 내가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처럼.


얼떨결에 시작하게 된 글 쓰기 수업에서도 이렇게 말할 생각이야.

그래. 일단 써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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