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링크에 토익 점수 업데이트 해줘.]
두 달 전 지원해 놓고 연락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던 항공사에서 온 메일이었다.
당시 토익 점수가 없어 내지 못했고 연락이 없어 떨어졌구나 하고 잊고 있었던 차였다. 저녁쯤에 가지고 있던 토익 점수를 제출했다.
제출하고 5일 후, 비디오 면접을 보라는 메일이 왔다. 인터넷에 대충 검색해서 기출문제를 찾은 후 큰 기대 없이 그날 바로 비디오 면접을 봤다. 면접은 기출문제와 동일했다.
면접을 보고 한참있다 take-off를 착륙으로 번역한 것을 깨닫고 이마를 쳤다.
글렀네 하고 하던 공부를 계속했다.
이틀 후 대면 면접을 보러 오라는 인비테이션이 왔다. 원하는 면접 날짜를 선택하라는 말과 함께 면접은 세 시간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적혀있었다. 기차시간을 생각해서 집에서 서울을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시간대를 정해서 면접 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웬걸 준비해오라는 서류 목록에 서류가 14가지였다. 내게 해당되지 않는 것을 빼도 13가지. 부랴부랴 전 직장들에 전화와 메일을 돌리고 필요한 서류들을 준비했다. 어차피 나는 파이널 가지도 못할 텐데 이런 서류 힘들게 들고 갔다가 그대로 들고 오면 얼마나 짜증 날까 생각했다.
대망의 면접날, 하필 오전에 눈이 와서 서울역에서 택시도 잘 잡히지 않았다. 택시를 서울역 앞으로 불렀는지 뒤로 불렀는지도 헷갈려서 면접복을 입고 서울역을 뛰어다녔다.
면접장은 서울의 어느 호텔 2층이었다. 아래층 화장실에서 화장과 옷매무새를 확인하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지금부터는 면접관을 마주칠 수도 있기 때문에 나는 친절하고 잘 웃는 사람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었다.
레지스터를 마치고 디스커션을 기다리며 앉아있는 복도의 공간은 파이널 면접장 문 앞이기도 해서 면접관들이 계속 지나다녔다. 혹시나 내 면접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얼굴에 계속 미소를 장착하고 같이 디스커션을 들어갈 지원자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다행히 친해진 지원자 몇몇과 같은 조로 디스커션을 볼 수 있었고 이 디스커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면접이었다. 처음에는 조금 긴장해서 말이나 호응을 많이 하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너무 신나서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농담도 던졌다.
같은 조 지원자의 대부분이 나보다 어렸고 너무 긴장한 게 눈에 보여서 마음이 쓰였다. 간절하던 시절의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오디오가 겹치거나 손을 같이 들면 무조건 양보하려고 했다. 만약에 내가 얘기함으로써 그 지원자들이 발언 기회를 잃게 된다면 집에 돌아가서 계속 그 순간을 후회하고 곱씹을까 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앳된 얼굴에서 어린 내가 보여서 차마 내가 먼저 얘기해도 될까? 하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약간 내성적인 분들이 몇 분 보여서 걱정했는데 다행히 우리 조는 모두 디스커션에 붙었다. 믿을 수가 없어서 면접관에게 정말? 진짜지? 고마워 나 믿을 수가 없어! 를 외치며 면접장을 나왔다.
파이널 면접은 무슨 순서대로 진행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뒷순번이라 한참을 기다렸다. 면접관이 서류를 들고 나와서 지원자 이름을 부르고 한 명씩 데려가는데 우리 팀원들은 디스커션을 하면서 너무 친해져서 먼저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잘하고 오라고 엄청 응원해 줘서 좋았다.
나는 안경 낀 남자면접관과 파이널을 봤는데 너무 긴장해서 그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살면서 본 영어 면접 중에 제일 길었고 항공사 면접을 이렇게 길고 세세하게 본 것은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했다.
홍글리쉬를 처음 들어서 알아듣기 너무 힘들었는데 직전 면접과 겹치는 질문이 많아서 대충 유추한 다음 '~~에 대해서 말하는 것 맞지?'하고 물어본 후 대답했다. 면접관이 나를 잘 쳐다보지 않아서 나중에는 나도 뭔가를 고민하거나 생각할 때 대놓고 눈알을 위로 굴리면서 대답했다. 개인이력에 대해서 엄청 디테일하게 물어봐서 좀 말리는 바람에 '아.. 잘못말했다 떨어지겠구나..' 했는데 붙었으니 역시 면접을 알다가도 모르는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