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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창환 Andy Jul 12. 2022

영화 '미싱타는 여자들'이 태어난 곳

봉제 메카 창신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에서 그린 <마스터의 가위> 


 
3월 서울 어반스케쳐스 정기 모임을 창신동 일대에서 하기로 했다. 딱 집어서 말하면 창신숭인 채석장 전망대다. 얼마 전에 창신숭인 전망대에 가서 동망봉을 그렸으니까 이번에 나는 창신동에 있는 봉제 역사관에 가기로 했다.
   

국내 최초 봉제 역사관인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동대문 패션 타운의 든든한 배후 생신 기지인 창신동 봉제 마을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우리나라 봉제 산업의 역사를 알리기 위해 설립된 문화공간입니다. '이음피움'은 실과 바늘로 천을 이이서 옷을 탄생시키듯 서로를 잇는다는 의미의 '이음'과 꽃이 피어나듯 소통과 공감이 피어난다는 뜻의 '피움'을 합해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 봉제역사관 리플릿 


작은 갤러리니까 예약은 필수다. 오전 11시에 예약을 했고 지도 앱을 손에 들고 이음피움에 도착했다. 이음피움은 창신동의 흔한 건물을 수리해서 갤러리로 만들었다. 바닥이 좁아 지하에서 3층으로 죽 타고 올라가면서 전시가 진행된다.



지하 1층에서는 체험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2층에서 봉제 메카 창신동의 역사가 상설 전시되고 있다. 3층에서는 기획전으로 요즘 시대의 컴퓨터 미싱을 소개하는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도 아기자기하고 도슨트의 설명도 재미있었다.




▲ 이음피움 봉제역사관 전경. 창신동 골목길에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갤러리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내 생각에 이음피움의 경쟁력은 체험 프로그램인 것 같다. 손수건에 이름을 새겨준다거나 손바늘로 브로치를 만드는 등의 프로그램은 다른 곳에서는 하기 힘든 것이고 재미도 있다. 전체 프로그햄을 거치면 약 1시간 정도 걸린다.

봉제역사관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전시뿐 아니라, 역사관으로서의 자료 수집도 하고 있다. 2018년 김정영 감독은  봉제역사관에서 영상 자료집을 만들기 위해 봉제 노동자 32인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 감독은 그 과정에서 70년대 청계피복 노동조합 출신의 두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70년대 평화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전태일 시절의 어린 여성 노동자들의 기록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이후 이혁래 감독이 연출에 참여하며, 단순 인터뷰의 나열에서 벗어나 다양한 자료와 그림, 합창 등의 여러 미디어를 활용하는 아이디어를 함께 발전시켜 40여년 전 여성 노동자들의 감정과 사연을 담은 감동 서사를 탄생시켰다.

이 영화는 여자라서 혹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 대신 미싱을 탈 수밖에 없었던 1970년대 평화시장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시절 소녀들의 청춘과 성장을 그리는 휴먼 다큐멘터리이며, 특히 평화시장 노동자들의 배움터였던 노동 교실을 사수하기 위한 투쟁의 기억이다.

<미싱 타는 여자들>이 바로 그 영화다. 참고로 '미싱'은 소잉 머신(Sewing Machine)의 '머신'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것이다. 지금은 우리말이라 해도 좋을 만큼 대중적으로 쓰는 말이 되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이라는 어려움에 코로나까지 겹쳐서 힘들게 완성된 영화이지만 역시 코로나로 개봉 날짜를 잡기가 힘들었는데 결국 2022년 1월에 개봉했다. 영화가 감동적이라는 소문을 들었다. 이런 영화는 개봉관에서 보려면 서둘러야 한다. 흥행이 안 되는 영화는 상영관에서 슬그머니 내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서둘러 용산 CGV에 예약을 했다. 상영관에 들어가 보니 20여 명의 관객이 있었다.

다큐멘터리라 당연히 인터뷰 화면이 주를 이루지만 부족한 자료 화면을 보완하기 위해서 그림과 노래로 보충을 했다. 특히 나의 주목을 끈 것은 출연자들이 개인적으로 보관하던 사진을 꺼낸 것. 그런 사진을 보면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옆에 앉은 분이 영화 중반부터 손수건을 꺼냈다.

봉제역사관은 매 시간마다 도슨트 프로그램이 있어 여기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지만 낮 12시 타임은 점심시간이라 프로그램이 없고, 기사를 쓴다는 이유로 잠시 드로잉 할 시간을 허락 받았다. 여기서 무엇을 그릴지는 어렵지 않게 결정했다.
             


▲ <마스터의 가위>를 그리고 있다. 기사 취재를 이유로 스케치 허락을 받았다.


 
전시장 한 구석에 걸려 있는 '마스터의 가위'. 2018년 기획 전시에 참여한 10분의 봉제 마스터의 가위를 액자에 넣어 전시해 놓았다. 가위는 봉제인에게는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늘 작업자의 손에 닿는 거리에 있어서 어찌 보면 애착 인형 같은 것이다.

각 가위들은 손에 닿는 데를 천으로 감거나 해서 편하게 만들어 놨다. 수십 년을 사용한 낡은 도구에는 그것을 사용한 분들의 지난 시간이 담긴 아름다움이 있다.

다음 예약시간인 1시 전에 드로잉을 마치고, 동네 식당에 가서 국밥 한 그릇을 먹었다. 다른 어반스케쳐들 얼굴이나 볼 겸 창신숭인 채석장을 향해 올라갔다. 채석장 카페에 올라가 보니 넓지 않은 공간에 십 수 명의 스케쳐들이 일제히 창밖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202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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