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식 곶감, 또마떼 데 꼴가르

Tomate de colgar, 그 건조의 진미

by 은수자

스페인에도 한국의 곶감과 비슷한 게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아마 Tomate de colgar가 그에 상응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히 "비슷하다"를 넘어, 두 식재료는 '기다림의 미학'과 '시간이 빚어낸 농축된 맛'이라는 정서를 완벽히 공유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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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햇살을 가득 머금은 스페인 요리에서 '토마토'는 공기나 물 같은 존재에요. 올리브 오일과 더불어 모든 요리의 기본이죠. 하지만 그중에서도 아주 특별한 대접을 받는 녀석이 하나 있으니, 바로 '또마떼 데 꼴가르(Tomate de Colgar)'**입니다. 이름부터가 '매달아 놓는 토마토'라는 뜻이죠.

토마토를 습기와 직사광선이 없는 곳에서 꾸덕하게 말려, 빵에 문질러 먹는 일종의 건과일 퓌레인데요.


COLGAR : 걸다, 걸어 둔다는 의미의 스페인어 동사입니다.



� 시간이 멈춘 토마토: 또마테 데 꼴가르


보통 토마토는 따는 순간부터 부패와의 전쟁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 '꼴가르' 품종은 유전적으로 껍질이 두껍고 과육의 수분이 적어, 건조하고 서늘한 곳에 줄줄이 엮어 매달아 두면 몇 달씩이나 신선함을 유지합니다.


마치 시골집 처마 밑에 감을 꿰어 말리듯, 스페인의 농가 창고에는 빨간 토마토 포도송이들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겨울을 납니다. 겉은 살짝 쪼글쪼글해질지언정, 그 속에서는 수분이 서서히 빠져나가며 감칠맛의 핵폭탄인 글루탐산이 응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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곶감과의 평행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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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 위의 마법, '빤 꼰 또미떼" (Pan con tomate)


한국의 곶감은 수정과에 들어가 계피와 절묘한 맛을 이루거나, 호두말이 등의 고급 디저트로 사랑받는데요. 스페인의 또마떼 데 꼴가르 (Tomate de Colgar)는 보다 일상식에 깊이 애용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마치 우리의 잼이나 과일청 같은 용도로서, 스페인의 국민 조식인 빤 꼰 또마테(Pan con Tomate)의 주인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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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법은 아주 투박하면서도 예술적입니다.


바삭하게 구운 빵 단면에 생마늘을 슥슥 문지릅니다.


잘 숙성된 콜가르 토마토를 반으로 잘라 빵 위에 '강판에 갈듯' 문지릅니다.


질긴 껍질만 남고 농축된 과육이 빵 속으로 스며들면, 올리브유와 소금을 톡톡 뿌립니다.


일반 토마토는 물이 너무 많아 빵을 눅눅하게 만들지만, '시간을 견딘' 꼴가르 토마토는 잼처럼 진득하게 발리며 빵과 물아일체가 됩니다. 여기에 마늘향과 어우러지면 정말 멋진 향이 나게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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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과 바람, 기다림이 만든 건조의 미학


한국인에게 곶감이 할머니의 장롱 속 숨겨둔 간식 같은 정겨움이라면, 스페인 사람들에게 꼴가르 토마토는 척박한 땅에서 일궈낸 삶의 여유입니다.


두 식재료 모두 "당장 먹고 싶지만, 더 맛있어질 때까지 참아낼게"라는 인간의 인내심이 만들어낸 결과물이죠. 수분이 날아간 자리를 풍미로 채우는 과정은 어쩌면 우리 인생의 성숙과도 닮아 있지 않을까요?


오늘 밤, 곶감 한 입을 베어 물며 먼 나라 스페인 천장에 매달려 있을 붉은 토마토의 생명력을 상상해 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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