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핏빛칵테일, 상그리아(Sangria)

그 눈부신 핏빛, 여름의 칵테일

by 은수자

붉은 피의 유혹, 상그리아의 탄생


상그리아라는 이름은 스페인어로 '피'를 뜻하는 **'Sangre'**에서 유래했습니다. 조금 섬뜩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만큼 진한 붉은빛 와인의 생명력을 강조한 이름이죠.


역사의 시작: 사실 와인에 무언가를 섞어 마시는 관습은 로마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엔 수질이 좋지 않아 물 대신 와인을 마셨는데, 이때 맛을 좋게 하고 박테리아를 죽이기 위해 허브와 향신료를 넣었던 것이 그 시초라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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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아이콘: 중세 시대를 거쳐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농부들이 수확한 과일을 와인에 넣어 마시면서 지금의 상그리아 형태가 정착되었습니다. 1964년 뉴욕 세계박람회에서 스페인이 상그리아를 소개하며 전 세계적인 '파티 칵테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답니다.


상그리아의 어원에는 스페인의 뜨거운 열정과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생명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브런치 에세이에 깊이를 더해줄 그 유래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Sangre', 생명의 붉은 빛


상그리아(Sangria)라는 단어는 스페인어로 **'피(Blood)'**를 뜻하는 **'Sangre(상그레)'**에서 파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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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이름을 들으면 조금 강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는 단순히 색깔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유럽 문화권에서 와인은 종종 '예수의 피'나 '생명력'을 상징해왔죠. 진한 레드 와인에 신선한 과일즙이 섞이며 만들어내는 그 짙고 선명한 붉은색이 마치 혈관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또 다른 가설: 'Sarangati'


일부 언어학자들은 산스크리트어인 **'Sarangati(사랑가티)'**에서 유래했다는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이 단어는 **'설탕을 친 음료'**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달콤한 맛이 특징인 상그리아의 본질과 딱 맞닿아 있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이 과거 이슬람과 다양한 동양 문화의 영향을 받았던 점을 고려하면, 먼 동양의 단어가 스페인의 와인과 만나 '상그리아'로 정착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입니다.

"상그리아 한 잔을 마시는 것은, 스페인의 붉은 태양과 그 땅의 생명력을 들이키는 것과 같습니다. 그 이름이 '피'에서 왔든 '설탕'에서 왔든, 한 모금 머금는 순간 우리 몸에 생기가 도는 것만큼은 분명하니까요."


상그리아의 맛과 특징: '달콤한 휴식'


상그리아는 단순한 술이라기보다 **'마시는 디저트'**에 가깝습니다.

맛의 조화: 저렴한 레드 와인의 떫은맛(타닌)을 설탕의 달콤함과 과일의 시트러스한 산미가 부드럽게 감싸 안습니다.


청량감: 탄산수나 오렌지 주스를 더해 도수를 낮추고 청량감을 극대화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한 모금 마시면 입안 가득 과즙이 터지는 듯한 풍성함을 느낄 수 있죠.


어느 계절, 어떤 날에 어울릴까?

상그리아는 단연 **'여름의 술'**입니다.

계절: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는 무더운 여름날, 얼음을 가득 채운 상그리아는 최고의 피서가 됩니다.


순간: 나른한 주말 오후의 브런치, 혹은 친구들과의 떠들썩한 홈파티에 제격이죠. 스페인 사람들에게 상그리아는 '축제' 그 자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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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그리아와 완벽한 페어링

상그리아는 맛이 강렬하고 달콤하기 때문에 간이 짭짤하거나 기름진 음식과 궁합이 환상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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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그리아를 가장 맛있게 즐기는 팁

상그리아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비결은 **'기다림'**입니다.

와인 선택: 비싼 와인보다는 만 원대의 가성비 좋은 레드 와인(카베르네 소비뇽 등)을 고르세요.


과일 듬뿍: 오렌지, 레몬, 사과는 필수! 베리류나 복숭아를 넣으면 풍미가 더 깊어집니다.


숙성의 미학: 과일을 썰어 넣고 설탕(혹은 꿀)을 더한 뒤, 냉장고에서 최소 4시간 이상, 가급적 하루 정도 숙성시키세요. 과일의 향이 와인에 충분히 배어 나와야 진정한 상그리아가 완성됩니다.


마시기 직전: 톡 쏘는 탄산수나 시원한 오렌지 주스를 섞어 잔에 내면 끝!

오늘 저녁, 냉장고 구석에 잠자고 있는 와인이 있다면 과일 몇 조각과 함께 상그리아를 담가보는 건 어떨까요? 내일 오후면 당신의 식탁이 스페인의 어느 햇살 가득한 광장으로 변할지도 모릅니다.



상그리아를 직접 만들어볼까요 ?


STEP 1. 냉장고 과일 궁합 체크

어떤 과일이 있나요? 종류에 따라 풍미가 달라집니다.


기본 (필수 권장): 사과, 오렌지, 레몬 중 하나라도 있다면 베이스는 완성입니다. (시트러스한 과일은 산뜻함을 줘요.)

달콤한 과일: 포도, 딸기, 복숭아, 망고, 배 (설탕 양을 줄여도 될 만큼 풍성한 단맛을 줍니다.)

상큼한 과일: 키위, 블루베리, 파인애플 (와인의 떫은맛을 지워주는 훌륭한 킥이 됩니다.)


STEP 2. 황금 비율 레시피 (와인 1병 기준)

준비물: 먹다 남은(혹은 저렴한) 레드 와인 1병, 냉장고 속 과일 2~3종류, 설탕 2~3스푼, 오렌지 주스(종이컵 1컵), 탄산수(선택).


과일 손질: 과일은 껍질째 깨끗이 씻어 한입 크기로 얇게 썹니다. (단면이 넓을수록 과즙이 잘 나와요!)


단맛 입히기: 넓은 병에 과일을 담고 설탕을 솔솔 뿌려 10분 정도 둡니다. 삼투압 현상으로 과즙이 배어 나옵니다.


액체 섞기: 와인 1병과 오렌지 주스 1컵을 붓습니다. 조금 더 도수가 높고 진한 맛을 원하신다면 집에 있는 위스키나 진을 소주잔으로 한 잔 섞어보세요.


인내의 시간: 냉장고에서 최소 4시간, 가장 좋은 건 하루(24시간) 숙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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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P 3. 마시기 직전의 '한 끗'

청량감 추가: 숙성된 상그리아 원액을 잔에 70% 담고, 나머지를 시원한 탄산수나 사이다로 채우세요.


허브의 마법: 베란다에 애플민트나 로즈마리가 있다면 한 잎 띄워보세요. 향의 층위가 달라집니다.


"상그리아는 '시간'이 만드는 요리입니다. 처음 섞었을 때의 날카로운 와인 맛이 냉장고 안에서 과일의 속살과 섞이며 둥글게 깎여나가는 과정을 즐겨보세요. 내일 오후, 당신의 냉장고 문을 열었을 때 퍼지는 그 달콤하고 향긋한 내음이 바로 오늘의 수고에 대한 가장 맛있는 보상이 될 거예요."




혹시 상그리아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가볍게 즐기는 스페인의 또 다른 와인 칵테일,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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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상그리아가 화려한 '파티의 주인공'이라면, **틴토 데 베라노(Tinto de Verano)**는 스페인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장 편하게 곁들이는 '다정한 이웃' 같은 존재랍니다.


이름부터가 로맨틱해요. 스페인어로 **'여름의 레드 와인'**이라는 뜻이죠.


틴토 데 베라노, 상그리아와 어떻게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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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이 상그리아와 틴토 데 베라노를 헷갈려 하시지만, 실제로 스페인 현지 식당에서 "상그리아 한 잔 주세요"라고 하면 관광객 취급(?)을 받기 일쑤예요. 현지인들은 훨씬 가볍고 심플한 틴토 데 베라노를 훨씬 더 자주 마시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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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쉬운 레시피 (집에서도 10초 컷!)


상그리아처럼 과일을 썰고 숙성시킬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퇴근 후나 나른한 주말 오후에 바로 만들어보세요.


잔에 얼음을 가득 채웁니다.

레드 와인을 잔의 절반 정도 따릅니다. (저렴한 와인일수록 좋습니다!)

나머지 절반을 **레몬 에이드(혹은 사이다)**로 채웁니다. Tip: 스페인 현지 느낌을 내려면 설탕이 적은 레몬 탄산수나 '가세오사(Gaseosa)'를 쓰지만, 한국에서는 **레몬 사이다(스프라이트 등)**를 넣으면 맛이 딱 맞습니다.

기분 내고 싶다면 레몬 슬라이스 한 조각만 툭 던져 넣어주세요.


왜 틴토 데 베라노일까?

상그리아는 과일이 와인에 녹아들 시간이 필요하지만, 틴토 데 베라노는 즉석에서 섞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스페인 사람들은 뜨거운 여름날 태양 아래서 갈증을 해소할 때 이 음료를 선택하죠. 도수도 4~5도 정도로 낮아져서, 대낮 브런치에 한두 잔 마셔도 얼굴이 너무 붉어질 걱정이 적답니다.


상그리아가 정성을 가득 담아 손님을 맞이하는 '정찬' 같은 술이라면, 틴토 데 베라노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슬리퍼를 끌고 나가 즐기는 '산책' 같은 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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