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휴대폰
2012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육아휴직 후 복직을 해서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게 되었다.
그때는 한참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던 시기였고 학생들도 학교에 스마트폰을 많이 가져오게 되면서 학교에는 휴대폰을 보관하는 휴대폰 보관 가방을 담임교사가 걷어서 보관했다가 하교할 때 나눠주는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던 시기였다.
어느 날 종례 시간에 학생들에게 핸드폰을 나눠주고 청소를 하고 있는데 진석이(가명)가 와서는
"선생님 저 핸드폰을 못 받았어요"
라고 말한다. 휴대폰 가방을 얼른 들춰봤으나 남은 폰이 없었다. 다른 학생이 혹시 잘 못 가져갔을 수도 있으니 조금 기다려 보자고 이야기하고 하루가 지나갔다. 잘 못 가져간 사람은 없었고 우리 반 학생 중 한 명이 의도적으로 가져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나의 짐작은 이러했다.
아침 시간, 교탁 위에 올려져 있는 핸드폰 가방에 아이들이 핸드폰을 한 명씩 제출한다. 핸드폰 가방에는 학생들의 번호가 기재되어 있어 지정된 칸에 핸드폰을 꽂는데 학교에 일찍 오는 아이들은 핸드폰을 미리 끄고 담임교사가 오기도 전에 핸드폰을 넣어 둔다. 담임인 내가 교실에 들어가서 핸드폰 가방을 열어보면 이미 절반 정도의 학생들은 핸드폰을 이미 핸드폰 가방에 제출한 상태다. 내 생각엔 내가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누군가 핸드폰 가방에 자기 핸드폰을 넣는 척하면서 진석이의 핸드폰을 훔쳐간 것이다.
핸드폰 가방이 외부로 유출된 적인 없었기 때문에 나의 추측이 유일한 답이었다.
다음 날 학생들을 대상으로 누군가 수상쩍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았거나 핸드폰이 없어진 경위를 아는 사람이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했다. 종이에 자신이 본 것이 있거나 들은 것이 있으면 써서 내도록 했으나 성과는 없었다. 학교에 여러 선생님들께 이런 경우에 대해 문의를 하였으나 내가 관리하던 학생 휴대품 분실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답이 돌아올 뿐이었다.
우리 학급 아이들에게는 훔쳐간 사람이 있다면 핸드폰을 돌려주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조용히 해결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사실은 안 했지만) 경찰에 신고도 다 했고 위치추적도 다 될 거라고, 결국은 경찰이 알아낼 거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우리 반에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하는 도난사건이 생겨서 정말 마음이 아프고 슬프다고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에게 호소하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했지만 실제로 그때 내 마음이 그랬다.
퇴근 후에는 더 심난했다. 남편의 오랜 공부로 우리 집의 경제적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내가 보상해야 하는 핸드폰의 가격은 90만 원이 넘었다. 내가 조금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그깟 90만 원 물어주고 말지'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아이들에게 대한 배신감. 한 명의 아이가 나쁜 짓을 했지만 일 년 내내 모든 아이들을 보며 '이 아이가 가져갔을 수도 있겠다' 혹은 '아니, 저 아이가 저런 행동을 하는 걸 보니 쟤가 가져간 것 같다' 이런 마음으로 아이들은 대해야 한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괴로웠다. 90만 원을 아이 부모님에게 물어주고 그냥 선생님을 그만둘까. 아니면 육아휴직을 또 해 버릴까.
내 마음은 지옥이었고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이런 상황에서 남일 보듯 '우리 반에서 이런 일이 안 생겨서 다행이다'라는 듯 외면해 버리는 동료 선생님들의 싸늘한 태도에도 상처를 받았다. 무난하게 지내왔던 우리 반 아이들을 생각해도 너무 괴로웠다.
저녁 8시 반 정도 되었을 때 처음 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우리 반 민호(가명)였다.
"민호야 무슨 일이야?"
"...... 선생님, 사실 핸드폰 제가 가져갔어요. 선생님이 경찰에 신고해서 저는 잡혀가겠지만 선생님께 죄송해서 전화했어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잠시 눈물을 삼키고 침착하게 말했다.
"민호야. 솔직하게 이야기해줘서 정말 고마워. 선생님에게 전화하는 거 진짜 힘들었을 텐데 전화해 줘서 선생님은 정말 기뻐. 네가 먼저 이야기했으니까 경찰서에는 선생님이 전화할게. 걱정 말고 내일 핸드폰 꼭 가져와서 진석이에게 돌려주고 사과하자."
이렇게 핸드폰은 진석이의 손에 다시 돌아갔고 민호의 아빠 엄마가 학교에 다 오셔서 사과하고 진석이의 부모님도 민호와 민호 부모님의 사과를 받아주셨다. 이 사건이 있었을 때 아마 핸드폰이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민호는 본인이 핸드폰을 훔쳤기 때문에 담임인 내가 민호를 미워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민호에게 너무 고마웠다. 내가 경찰서에 전화했다고 뻥을 쳐서 순진한 마음에 고백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울면서 자신의 잘못을 이야기해 준 그 솔직함에 고마웠고 일 년 동안 우리 반 아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될 위기에서 나를 구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
일 년 간 나는 민호에게 허물없이 잘 대해 주었고 진석이가 민호를 용서하고 품어주었기 때문에 우리 반 아이들은 민호가 핸드폰 훔쳐간 것을 알면서도 잘 어울려 지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의 포용력이란 대단하구나. 어른들보다 훨씬 낫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사건을 겪으며 하나를 배웠다. 막상 일이 터지면 이 모든 것은 오롯이 담임인 나의 책임이 된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일에 의연하게 대처하려면 감정적으로나 실무면에서나 좀 더 철저한 준비가 되어있어야 했다는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