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은 핸드폰
지금부터 멀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그 해는 나의 교직 생활에 정점을 찍은 해였다.
무엇으로 정점을 찍었냐면 1학년 때부터 말썽 많기로 소문난 아이들이 이제 3학년이 되어 내가 그 3학년의 담임을 맡게 된 것이었다.
1, 2학년 때 이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은 교직에 회의를 느끼고 다른 학교로 이동을 한 선생님들이 많았고 특히 국어, 영어처럼 학년 전담을 맡은 선생님들은 다른 학교로 거의 떠나가시거나 다른 학년을 지원하셨다. 결과적으로 내가 3학년 담임을 맡고 처음으로 학년실에 들어갔더니 나를 제외한 선생님들은 다른 학교에서 새로 온 선생님이거나 기간제 선생님이셨다.
시작은 5개 반 5명의 담임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4반 선생님은 아이들과의 마찰을 견디다 못해 명예퇴직 신청을 해 버리셨고 학년 부장 선생님은 학생과의 물리적 충돌을 한 번 겪으시고 모든 지도의 의욕을 잃으셨다. 하지만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자리를 지켜주시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지도해 주셨다.
나와 친했던 선생님 한 분은 3학년 수업을 들어갔다가 바른 자세로 앉지 않은 학생에게 '바르게 앉아라'라고 지도했다가 쌍욕에 폭언까지 당하고 그날로 병가를 내시고 한 달간 학교를 안 나오셨다.
핸드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겠다.
이전에 쓴 나의 글 '선생님과 핸드폰 1-돌아온 핸드폰'에서 있었던 뼈아픈 기억 때문에 핸드폰 관리에 한한 나름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놓았다.
첫째, 선생님이 교실이 들어오기 전에는 핸드폰 가방에 핸드폰을 미리 내지 않는다.
둘째,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번호에 해당되는 칸에 핸드폰을 제출한다.
셋째, 휴대폰을 나눠 나눠줄 때는 선생님이 하나씩 빼서 학생에게 직접 전달한다. (대리 수령은 안됨)
넷째, 휴대폰 가방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담임과 휴대폰 도우미 두 사람뿐이다.
그래서 우리 반 학생들은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한 명씩 나와서 내가 보는 앞에서 핸드폰을 집어넣고 빼서 가져가도록 했다.
어느 평범한 날. 종례 후 청소를 하고 있는데 우리 반의 성준이가 말한다.
"선생님, 제 핸드폰이 없어요."
등에서 식은땀이 쭉 흘렀다.
반 아이들 전체에게 문자를 보내고 학부모님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난리를 쳐도 핸드폰은 소식은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핸드폰이 중간에 빠질 곳이 없는데, 그렇게 철저하게 관리를 했는데도 핸드폰이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지.. 하루 종일 기억을 되짚어가며 고심을 했지만 도저히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학년실에 가서 부장님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고 혹시 일과시간 중에 우리 반 핸드폰 가방에 손댄 사람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한참 생각하던 부장님은 우리 반의 민수(가명)가 2교시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한다고 하면서 학년실로 왔길래 "너희 반 핸드폰 가방 저기 있으니 네가 핸드폰 가져가서 전화해라"라고 하시곤 부장님은 업무를 보시느라 학생 쪽을 자세히 보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민수는 2학년 때부터 너무 다양한 사고를 일으켰던 학생인데 (특히 금전 문제 및 절도 등) 다른 선생님들이 민수에 대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질까 봐 이러한 정보들을 올해 3학년 선생님들께 일절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부장님은 민수에 대한 어떤 정보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핸드폰 가방에 손을 대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셨던 것이다.
잠정적으로 민수가 핸드폰을 가져간 것으로 생각하고 민수에게 전화를 했다. 민수에게 학교로 좀 빨리 오라고 전화를 했고 휴대폰을 잃어버린 성준이의 친구들도 그때 마침 우르르 나를 찾아왔다.
"선생님, 민수가 성준이 핸드폰을 훔친 것 같아요. 사실 어제 성준이가 민수에게 아이폰 비번을 알려줬는데 아이폰 잠금이 지금 해제되어있고 휴대폰 추적을 하니까 지금 학교로 오고 있어요"
성준이는 사실 핸드폰이 없어지자마자 민수가 훔쳐갔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경찰도 못 푼다는 아이폰의 비번을 풀 수 있는 사람이 민수가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조금 있다가 민수가 학교에 도착해서 성준이 친구들과 함께 길동이를 만났다.
"민수야 혹시 성준이 핸드폰 네가 가져갔니?"
"아니요"
이 글을 읽는 독자 분들. 나에게 삶의 지혜를 나눠주시길 바란다.
나는 민수가 '아니요'라고 하는 짧은 대답 후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학생이 안 가져갔다는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학생의 몸을 만질 수 없고 학생의 동의 없이 책가방을 뒤질 수 없다. 그때 내가 거절당할 줄 알았지만 '민수야. 니 책가방과 주머니 좀 다 뒤져봐도 되겠니?'라고 한번 물어볼 걸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민수를 만난 직후 성준이의 아이폰은 전원이 꺼졌고 이제는 위치를 추적할 수가 없었다. 아이폰의 신호를 따라 성준이의 핸드폰을 찾으러 다니던 아이들도 각자 집으로 갔다.
성준이의 어머니와 도난 신고를 경찰에 하는 것에 대해서도 상의를 했지만 아무래도 훔친 아이가 같은 반 학생이라고 생각되다 보니 성준이 어머니도 차마 그러지는 못했다.
나는 지난번 핸드폰 실종 사건 때처럼 패닉 상태가 되지도 않았고 반 아이들이 밉지도 않았다. 범인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짐작하고 있는 상태에서 우리 반 아이들은 다 나와 같은 피해자이고 훔쳐간 민수만 우리 반에서 혼자 떠도는 방랑자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분노했고 민수의 간교함에 치를 떨었다. 학생에게 개인적인 감정을 가지고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이를 볼 때마다, 아이와 이야기를 나눌 때마다 참 힘들었다.
모든 사건을 정황을 정리해 보면 민수가 훔쳤다는 정황 증거는 있으나 정확한 증거가 없어 아무것도 증명할 수가 없는 채로 휴대폰 도난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가 되어버렸다.
핸드폰을 도난당한 성준이는 고등학교 진학 무렵에 아예 다른 학군으로 전학을 가 버렸는데 성준이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성준이가 고등학교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새로운 환경에서 다니고 싶다고 했다는 것이다.
성준이가 핸드폰을 도난당한 후에도 민수와 겉으로는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는데 그때마다 성준이의 마음이 어땠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도난당한 핸드폰은 결국 주인 손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 당시 막 출시된 애플사의 최고로 비싼 기종의 폰이었다. 어느 중고 사이트를 통해서 팔렸을 거라 본다.
그 후 1년간의 휴직 후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왔을 때 다른 반에서 또다시 핸드폰이 도난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핸드폰을 도난당한 학생의 담임 선생님은 명예퇴직을 앞두고 계신 나이 많고 인정 많으신 여자 선생님이셨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저 황당해하고 계셨다. 100만원 가량하는 핸드폰 값을 개인적으로 변제하려고 준비 중이셨고 학교 측에서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계신 상황이었다.
이 분야에 우리 학교에서 유일한 유경험자였던 나는 선생님께 내가 겪었던 일들과 관련해 약간의 도움을 드릴 수 있었고 선생님은 나에게 무척 고마워하셨다.
나는 지금도 항상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휴대폰 분실에 트라우마가 있으니 시간이 걸려도 한 명씩 천천히 나와서 핸드폰을 받아가도록 한다. 한 번씩 아이들에게 핸드폰 가방을 던져주고 '우리 반엔 도난 사건 같은 거 없어, 너희들 알아서 가져가라'하고 핸드폰을 가져가도록 두는 담임 선생님들을 보면 나는 항상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곤 한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런 도난사건들을 방지하기 위한 뭔가 획기적인 방법들이 어서 고안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