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담임이 중3 담임보다 좋은 이유
육아휴직을 하고 복직을 하면서 작년에 중학교 2학년 담임을 맡았다.
나는 남자 중학교에만 20대 후반~40대 초반인 지금까지 근무하며 주로 중3 담임만 맡았었다. 진학지도와 원서 업무가 주요 업무이고 과학고 같은 특목고의 원서는 여름방학 끝날 즈음에 쓰기 때문에 방학 중에도 학생과 원서 준비며 자잘하게 해야 할 일이 많다.
10월 말 혹은 11월 초에 기말고사를 치고 나면 특성화고 원서를 바로 써야 하기 때문에 학부모와 통화할 일도 많고 12월은 평준화 원서를 쓰는데 여기에 학급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해당되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들여서 원서를 작성하고 확인을 하게 된다. 특성화 고등학교는 원서를 넣고 나서는 며칠이면 합격여부를 알 수 있고 평준화 지역 고등학교는 12월에 원서를 접수하면 1월 중순이 되어서야 합격 여부 및 배정 고등학교를 알 수 있다. 2월에는 일주일 정도 학교에 나오고 졸업식이 있다.
처음 3학년 담임을 하고 졸업식이 있던 날에 마지막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전할 진지한 말들을 밤잠을 못 자고 준비했었는데 아이들은 내 말 따위엔 관심이 없는 듯 졸업 분위기에 들떠있었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이들을 교실에서 내보내고 난 후, 내 마음은 아이들을 보내는 아쉬움보다는 씁쓸함에 가득 찼다.
교실 뒤편에 어지럽게 내팽개쳐진 쓰레기들.
분명 어제 종례시간에 책상 서랍을 다 비우라고 했는데 책상 서랍을 꽉 채운 교과서와 쓸모없는 종이들.
이리저리 다 어질러진 책상과 걸상.
이 모든 걸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사람은 담임인 나뿐이란 걸 알기 때문에 더 외롭고. 더 씁쓸한. 그런 기억이었다. 그 이후로 3학년 담임을 계속하면서 단련이 되었는지 졸업을 시킬 때 마지막 종례는 짧게 '잘 가라. 건강해라' 이 한마디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그 전날에 교실의 말끔한 정리는 기본으로 아이들이 교문을 나서기 전에 철저한 청소까지 다 하고 나가도록 하였다.
10년 이상 중3 담임을 하다가 2학년 담임을 하게 되니 좋은 점이 많았다.
1. 중2는 중3보다 좀 더 발전 가능성이 많다.
미안한 말이지만 중3이 되어서 아침자습시간 혹은 수업시간에 쭉 자는 학생이 있다면.. 내 짐작으로는 공부를 포기한 학생이라고 생각된다. 그런 학생과 몇 마디 나눠보면 이 학생은 이미 학습 결손이 너무 많고 영어나 수학은 중1 아니, 초등학교 고학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학생이며 이미 뭔가를 하기엔 본인도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학생이다.
선생님 입장에서도 도와주기엔 너무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중3들은 이미 고등학교 수학 과정을 공부하는 아이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학생들이 교실에서 의욕을 가지고 공부를 하기에 이미 다른 학생들과의 학습 격차가 너무 많이 벌어진 후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은 중3은 확실히 중2보다는 머리가 큰 아이들이기 때문에 교사든, 부모님이든 누군가의 충고나 지적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계속 자는 중2 학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면 "어머, 우리 애가 그러나요? 집에서 대책을 강구해 보겠습니다"와 같은 긍정적인 반응이 있다 하면 중3쯤 되어서 학부모님께 전화를 하면 부모님은 학생의 낮은 성취도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부모도 학생의 학업 성취가 향상될 거란 기대를 딱히 하지 않고 잠을 자면 계속 깨워달라는 등 학생의 드라마틱한 변화를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을 많이 보아왔다.
중2가 되면 학생들 중에 흡연자도 상당수 생기는데 중2 때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고 상담을 통해서 흡연의 습관을 고쳐가려고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행동 수정이 효과적으로 잘 된 학생들은 흡연의 유혹을 끊고 비흡연자의 길로 들어선다. 그 반대의 경우는 부모님 혹은 선생님이 알 수 없는 음지로 들어가 골초가 되는 학생이 된다.
여러 문제 행동을 보이는 학생들을 지도해 보면 중2들은 중3들보다 훨씬 유연하고, 타인의 의견을 잘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성적이 학업 성취도가 낮은 학생이 갑자기 성적이 많이 오르는 경우도 많이 보이고 의기소침해 있다가 뭔가 결정적인 계기가 생겨 학교를 졸업할 즈음에는 인싸 기질을 가진 아이로 내면이 변화되는 아이도 많이 보았다.
2. 어떤 중3 학부모들은 너무 지쳐있다.
학교에서 문제를 많이 일으키는 학생들의 학부모님들의 경우. 중3이 되면 이미 학교에서 너무 많은 전화를 받았기 때문에 너무나 지쳐있다. 나 같은 경우도 아무것도 모르고 중3 담임을 맡아서 학생이 학교에서 일으킨 문제 때문에 학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는데 '죄송하다'는 말은커녕 '또 전화했냐. 지겹다. 학교에서 일어난 일 선생님이 지도해야지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이런 식의 태도로 나오는 학부모님이 많아서 참 황당했던 경험이 많다.
1학년 학부모님들은 아이들을 처음 학교에 보냈기 때문에 낯설고 선생님들에 대해서도 조심하는 측면이 있다면 아이들이 나이를 먹을수록 학부모님들도 학년이 같이 올라가는지 3학년 학부모님들은 1학년 학부모님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인다.
3. 진학지도는 어렵다.
특히 공부를 잘해서 알아서 특목고건 자사고로 가주는 학생들은 원서만 써주면 오케이라서 딱히 어려울 것이 없다. 최근 들어서 특성화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면서 2022학년도 우리 학교가 속해 있는 학군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수십 명이 탈락을 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럴 경우 3학년 담임교사의 진학지도는 약간 어려움을 겪는다. 모든 학생들이 인문계에 진학할 수 없을 경우 특성화 고등학교 쪽으로 학생들이 진학을 하도록 권하는데 주로 하위권 학생들이 이에 해당한다.
물론 내신 등급이 꽤 괜찮은 아이들이 특성화 고등학교를 지원하는 예는 종종 있다. 하지만 담임 입장에서 수업시간에 내내 잠만 자는 학생이 있고 국영수 시험 성적이 10점대이면 이 학생은 인문계 고등학교에 갈 것을 권장하지 않는다.
이 학생이 인문계에 가면 다른 학생들의 내신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게 되고 더 어려워진 고등학교 공부는 이 학생에게는 그저 고문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아이들이 손재주가 좋거나 활동적인 성격의 학생이라면 담임 입장에서는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특성화 고등학교를 가도록 권한다. 해마다 커트라인이 다르지만 내신 성적 75%~이하의 학생들은 공부보다는 특성화 쪽으로 진학을 하도록 한다.
어떤 학부모님들은 자신의 아들에게 특성화 고등학교 소개를 하는 것조차 싫어하는 분도 계신다. 전화가 와서 다짜고짜 '선생님, 우리 애한테 특성화 고등학교 가라고 했나요?'라고 따지던 학부모님. 학생의 내신 성적이 하위권이라 특성화 고등학교도 선택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더니 그날 밤에 당장 전화가 왔던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학생이 인문계에 떨어져서 재수를 하건 미달이 된 학교를 찾아가건 특성화 고등학교를 개인적으로 권장하지 않기로 했다.
어느 해엔 우리 반 학생이 하도 학교 생활을 똑바로 안 하고 지각에 무단 결과를 자주 하고 시험지를 자꾸 백지로 내고 0점을 번번이 받아 걱정이 되어 어머니께 계속 전화를 했더니 두 번 정도는 전화를 받더니 그다음엔 아예 듣기도 싫은지 전화도 안 받으셨다. 담임으로서 책임질 수 없는 일이 생길까 봐 아이가 사고 칠 때마다 문자만 계속 보냈다.
결과적으로 그 학생은 우리 중학교에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떨어진 유일한 학생이 되었고 그 학생의 엄마는 다시 원서를 써서 접수해야 하는 마지막 날까지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결국은 아버지께 전화를 해서 원서를 새로 써서 넣었다. 그 아이의 가정에 내가 알 수 없는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만 상황을 바꿀 수 있었던 그때 그 아이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아이의 문제에 대해 조금 더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셨다면 상황이 좀 바뀌었을까. 학교 담임도 아이의 성장을 바라고 아이가 잘 크기를 바란다. 아마 그 아이의 엄마는 아들이 치는 사고에 대해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으셨던 것 같다.
4. 3학년의 12월은 두렵다.
3학년 담임을 하다 보면 가장 힘든 시기는 2학기 기말고사를 치고 난 이후의 11월, 12월이다. 진학을 위해 시험을 다 치고 내신성적을 산출해야 학생들의 원서를 쓸 수 있기 때문에 시험 후에 선생님들은 가장 바쁘다. 3학년은 3년간의 학교 활동에 대해서도 내신 성적을 산출해야 하기 때문에 성적뿐 아니라 1, 2학년 때 학생들의 자료도 다 찾아서 챙겨줘야 한다.
특성화 고등학교 원서는 진학하고자 하는 학교마다 원서 전형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꼼꼼히 확인을 하고 원서를 넣어야 한다. 그런 적은 없지만 담임 때문에 떨어졌다는 소리 듣기 싫으면 조그만 실수 하나 없어야 하고 원서의 오탈자도 하나 없이 보내야 한다. 그 와중에도 선생님들은 수업을 계속해야 하고 학생들은 계속 학교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퇴근 후에 남아서 업무 처리하는 것은 너무 빈번한 일이다.
업무야 그렇다 쳐도 3학년들의 탈선은 주로 이때 많이 발생한다. 선생님이 수업을 해도 이미 시험을 다 친 상태에서 아이들에게 지금 하는 중학교 과정의 학습은 별로 의미가 없다. 모든 학생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험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 학습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 많아지면 면학분위기가 잘 형성이 안되어 수업이 잘 되지 않는다.
서서히 무단 외출해서 편의점을 가거나 pc방을 가거나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등등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
이 어수선한 와중에도 계속 독서를 하거나 공부를 하는 아이들도 있는데 이런 아이들은 학교에서 뭔가를 해 주는 것을 바라는 아이들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를 하고 시간을 소중히 여길 줄 알도록 교육을 받은 아이들이다. 이런 아이들은 공부할 것을 잔뜩 싸들고 와서 수업할 땐 하고 자습시간엔 자기 공부를 열심히 한다. 주로 고등학교 선행 학습이다.
학생들의 계속되는 탈선 때문에 학부모님께 전화를 하면 또 이런 반응이 온다. '3학년 다 끝났는데 꼭 그렇게 융통성 없이 지도를 해야 하나요' 혹은 '아이가 무단 외출할 동안 선생님은 어디 계셨나요' 등의 비수를 꽂는 말이다. 왜 비수를 꽂는 말이냐면 그 말이 맞기 때문이다. 나도 3학년 다 끝났는데 설렁설렁하고 싶다. 그러나 한 명 지각하는 걸 봐주면 그다음 날은 2-3명이 지각한다. 그걸 또 놔두면 그다음엔 더 많은 학생이 지각한다.
학교란 곳은 많은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규칙을 잘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학생들도 안전하게 학교생활을 할 수 있고 그래야 성실하게 학교생활하는 학생들이 피해를 안 본다. 3학년이 학년 막바지에 이렇게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그동안 마땅히 지켜오던 학교 규칙을 3학년이라는 이유로, 시험을 다 쳤다는 이유로 성실하게 지키지 않으려는 이기심과 게으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1, 2학년 때는 감히 생각도 하지 않던 무단외출을 3학년이 되어하는 이유는 이제 최고 학년이라 무서울 것도 없다는 생각에서다. 중학교는 담임교사도 교과목 교사로 반을 돌아다니며 수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한 번씩 담임 학급을 돌아볼 뿐, 아침시간과 종례시간에 학생들을 볼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거기다 대고 학생이 무단 외출할 때 선생은 뭘 했냐는 말을 들으면 그저 어리둥절할 뿐 할 말은 없다.
학교에 보낸 내 아이가 무단외출을 했다고 하면 나 같으면 내 아이를 야단칠 것 같은데 그 순간 선생님은 어디서 뭘 했냐고 하니 나로서는 대단한 발상의 전환이었다. 내가 그 집 아이만 보고 있냐고 학교에 애들이 몇 명인 줄 아시냐고 한마디 하고 싶지만 교사는 이런 순간 항상 꿀 먹은 벙어리일 뿐.
중학교 3학년 담임만 십 년 넘게 하다가 2학년 담임을 해 보니 학부모님과 진학 문제나 학교 생활 문제로 전화할 일도 훨씬 적고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해 말씀을 드리면 적극적인 개입이 일어나 학생의 행동이 많이 수정되는 경우도 많았다.
2학년은 기말고사 시험을 12월 초에 실시하니 방학 때까지 학생들의 면학분위기도 거의 흐트러지지 않고 2월까지 수업을 해도 학생들이 수업에 잘 참여를 하였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2학년을 마친 아이들은 졸업을 하지 않고 3학년으로 진학하여 아이들과의 이별을 경험하지 않아도 되니 졸업하고 나면 가슴에 구멍 나는 것 같은 허전함이 없어서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