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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빈슨 크루소 Jul 24. 2022

길랑바레 그게 뭐야?

둘째 아이 길랑바레 발병부터 완치까지

우리 집 둘째 아이에 대해 말하자면 어릴 때부터 순한 아기로 잘 먹고 잘 자고 빨리 걷고 발달도 빨라 첫째와 비교해서 모든 것이 너무 수월해서 이 정도면 셋째도 낳아 볼만 하겠다는 환상을 품게 해 준 모범생 아기였다. 그렇게 별 탈없이 크던 아이가 22개월에 길랑바레 증후군에 걸리게 되었는데 처음 소아과에서 길랑바레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길랑 뭐라고요?' 이름도 생소한 그 병. 길랑바레. 지나고 나니 웃으면서 이야기 하지만 아이가 길랑바레로 치료를 받을 때 내 몸과 마음은 완전 만신창이였다. 길랑 바레라는 질병에 대해 공부를 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부지런히 검색하고 주변에 도움을 받고자 가입했던 카페에서 많은 글을 읽고 나도 퇴원을 하고 한참 지나고 나서 그때의 기록을 자세하게 썼다. 아래 글은 2013년 퇴원한 지 얼마 안 되어 다음 카페 길랑바레 신드롬(GBS)에 남긴 나의 글이다. 



발병일 : 2013년 1월 25일/ 퇴원일 : 2013년 3월 8일


 겨울방학을 맞아 터울이 많이 나는 초등학생 큰딸아이와 당시 22개월 둘째 딸을 데리고 3박 4일 정도로 가족여행을 떠났더랬습니다. 시댁에 들러 친지들 만나 뵙고 놀이공원에 가서 신나게 놀고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둘째 딸이 밤새 잠을 설치며 잠을 못 자는 겁니다. 

아이들이 장거리 여행을 하고 나면 으레 몸살이려니 하고 며칠을 두고 보는데 이게 아니다 싶을 정도로 아이의 행동이 이상했습니다. 밤새도록 잠을 설치는데 밤에는 1시간 이상 이어서 잠을 자지 못하고 1시간 정도 자다가 깨서 엉엉 울다가 한참 달래면 지쳐서 잠들고 또 깨서 울고.. 계속 반복하다가 낮에는 놀지도 않고 축 쳐져서 기어 다니다가 엎드려서 누워 있었습니다. 여행 후 3일째는 엎드린 자세 말고는 일어서지도, 앉지도,  걷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소아과, 정형외과를 3-4차례 방문하여 엑스레이를 찍고 여러 가지 진찰을 해보았으나 소아과에서는 잘 모르겠다 정형외과에선 애들은 크면서 그럴 수 있다 정도의 이야기를 해줄 뿐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갔던 프랜차이즈 소아과에서 아이의 주저앉는 증상을 보시더니 길랑 바레 증후군이 의심된다고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서 인근의 대형 종합병원으로 가서 아이가 몸을 지탱 못하는 걸 보더니 바로 대학병원으로 갈 것을 권유하셨습니다. 가는 도중 길랑바레라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하는 그 질병에 대해서 스마트폰으로 찾아보면서 가는데 정말 이렇게 엄청난 질환이 말도 잘 못하는 예쁜 둘째 딸에게 찾아왔다니 정말 그때의 절망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딸아이는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도 근육이 어디가 통증이 오는지 카시트에 앉지를 못하여 괴로워하며 차 바닥에 엎드린 위험천만한 자세로 1시간 동안을 아이의 절규를 들으며 가까스로 인근 대학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의 상태는 앉거나 설 수 없었고 팔다리 조작은 약간 되고 허공을 향에 팔다리를 허우적거리고 과자를 입에 넣거나 액체를 제외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으며 정신은 명료하고 목소리의 크기가 평소보다 형편없이 작아진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방문한 병원은 영남권역 재활센터가 있는 병원이었고 딸아이의 질환인 소아 뇌신경 쪽으로도 교수진이 풍부하여 치료를 잘 받았습니다. 

응급실에서 2박 3일 동안 뇌척수액 검사와 MRI 검사를 통해 길랑바레 확진을 받았고 병원에 도착하여 제2일부터 면역글로불린 주사 5일 동안 투여하였고 빠른 효과를 위해 스테로이드 투약을 권유하는 의사의 오더에  남편이 강하게 반대하여 스테로이드는 맞지 않았습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호흡근 마미가 올까 봐 계속 심전도와 산소포화도를 계속 체크했습니다. 제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 심전도와 산소포화도, 링거, 그 수많은 줄을 몸에 붙이는 것을 너무 힘들어했습니다. 

아이가 물을 마실수 없을 정도로 식도 쪽도 매우 약해져 있었지만 호흡곤란까지는 오지 않을 거란 확신이 들었던 이유가 면역글로불린 투약 후로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일에 투약했을 때보다 2일에 투약하면 더 잠을 이어서 자는 시간이 늘어나고 고통을 호소하는 아이의 울음과 짜증도 조금은 덜해졌습니다.

주로 새벽에 통증이 오는지 새벽에는 잠이 깨어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거나 (22개월인데 의사표현은 거의 다 하는 아이입니다) 악을 쓰면서 몇 시간을 울고 짜증을 내어 5인실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새벽에는 항상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서 잠들 때까지 밀고 다녔습니다.

또한 가지 증상은 기저귀를 계속 갈아달라고 요구를 하는 것 있었습니다. 배변을 하지 않았는데도 계속 응아를 했다 쉬를 했다며 기저귀를 갈면 아이의 기저귀는 깨끗했고 저는 배변 조절이 잘 안 되는구나 싶어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렇게 면역글로불린 투약이 끝나고.. 이제는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데.. 정말 시간은 멈춘 것 같고 아이는 계속 누워있고 계속 물도 못 마시고 그렇게 누워서 뽀로로만 보면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이 질환은 좋아졌다 나빠졌다 한다고 심전도도 계속 체크를 했습니다. 그렇게 아이가 잠을 4-5시간을 이어서 자게 되고 조금씩 음료수를 삼키기 시작하면서 심전도 기계와 링거선을 드디어 제거했습니다. 그때가 2월 구정이 가까운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구정 연휴를 병원에서 보내면서 반듯하게만 누워있었던 아이가 뒤집었습니다. 뒤집어서 조금 놀다가 힘든지 다시 눕고 다시 다리 아파 손 아파를 연발하였습니다. 

2월 구정 때 뒤집기를 시작한 아이는 그다음 날에는 손을 짚고 엎드리고, 그다음 날은 침대 난간을 잡고 앉고, 그다음 날은 침대 난간을 잡고 무릎을 세우고, 그렇게 정말 기적같이 서서히 하루하루 아기 때 발달단계를 다시 보는 것처럼 걷기를 위한 힘을 얻어가더군요. 그렇게 본인의 최대치를 보여주는 것은 하루 중 가장 기분이 좋은 시간, 자기 직전의 시간이었으며 뭔가를 잡고 앉을 수 있는 시간은 하루 24시간 중 3분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2월 중순이 되었습니다. 아이는 갑자기 '설 거야'라고 하더니 손을 잡고 정말로 후들후들거리며 다시 일어섰고 다섯 발짝 정도 걷다가 다시 쓰러졌습니다. 그날을 시작으로 아이는 정말로 열심히 하루하루 스스로 재활을 (?) 하더군요. 아이는 자연에 가깝다고 그런 생명력이 어디서 나오는지 정말 신기했습니다. 거의 탈진할 때까지 일으켜달라 손잡고 걷자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활동을 하고 단잠을 잤습니다. 

아이가 아직 혼자서 앉지 못했을 무렵 재활치료를 받게 되었습니다. 재활치료는 집중치료로 3주밖에 받지 못했지만 1주에는 혼자 앉게 되었고 2주에는 혼자 섰고 3주에는 혼자 걸었고 퇴원은 뛰어서 했습니다. 아이가 물리치료사들을 너무 좋아하여 재활치료도 너무나 즐겁고 신나게 잘했습니다. 마지막 주에는 주치의가 뛰는걸 한번 보려고 한번 뛰어보라고 했더니 병실을 나가서 병실 복도 끝에 있는 휴게실까지 뛰어갔다 오더군요. 

퇴원은 3월 8일에 했습니다. 주치의가 통원치료가 가능하다고 할 때 바로 퇴원했는데 이유는 아이가 원래 10킬로 정도의 몸무게였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 8.5킬로 까지 살이 빠져서 영양상의 심각한 결핍을 느끼고 바로 퇴원을 하였습니다. 

퇴원할 때는 혼자 서있을 수 있었지만 밸런스의 문제가 아직 남아 있어 점프나 계단 오르내리기기가 잘 되지 않았습니다. 무릎반사도 안 나오고 자주 넘어지는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제가 사는 중소도시의 재활의학과에 연계가 되어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아이의 상태가 매우 좋고 치료 종료가 가까우니 우선적으로 받아주겠다고 하여 이번 주에 물리치료 평가도 한번 받았습니다. 아직 미세한 밸런스의 문제가 있고 오른쪽이 아직 조금 약한 편입니다. 

현재 3월 말의 상태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어디 아팠냐고 말할 정도입니다. 지난 일요일에는 수목원에 가서 전력 질주를 해도 넘어지지 않더군요. 점프가 가능하고 양발 안정적인 자세로 착지가 가능합니다. 오랜 시간 걷는 것은 아직 조금 힘들어합니다. 3-4분 정도 걸으면 힘들다고 쉬자고 합니다. 앉아서 쉬었다가 또 곧 잘 뛰거나 걷습니다. 낮은 계단은 혼자서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밤에도 12시간 정도 깨지 않고 숙면을 취합니다. 몸무게도 10킬로를 회복하고 이제 꽤 무거워졌고 식욕도 왕성해서 잘 먹고요. 큰애는 독 감하고 지나갔는데 안 옮고 잘 지나갔습니다.

단 아직 아이가 어려서 자신의 몸 어디가 불편한 곳이 있지만 표현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제 아이의 경우는 워낙 어려서 회복도 정말 빠른 편이었고 다행히 호흡기까지 가지 않아 정말 예후가 좋은 케이스였다고 다들 입 모아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렇게 1월 25일부터 3월 8일까지의 병원생활을 마치고 지금은 집에 와서 일상생활을 잘하고 있습니다. 퇴원 후 2주 정도는 제가 물리치료실에서 보았던 운동들을 흉내라도  반복적으로  해주었고 짐볼을 이용한 운동도 꾸준히 하고 있고 산책도 하루에 3-4회 정도 합니다. 회복 중에는 신경세포 재생은 잘 때 가장 활발히 이루어진다고 해서 최대한 잠을 잘 자도록 하고 먹이는 것도 단백질 빠지지 않도록 잘 먹입니다. 

저도 정말 절망적인 마음으로 이 사이트를 찾았고 아이의 병상에서 이 게시판에 있는 글들을 하나하나 다 읽어보았습니다. 이 질환에 걸려 고생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 아이가 많이 회복한 지금이 되어 글을 올려보았습니다. 

힘들게 투병 중이신 환자님들과 가족분들 힘내시고 저의 글을 읽고 반드시 건강하게 회복될 거란 희망을 꼭 가지시길 바랍니다.  



아이는 지금 5학년이 되었고 제일 좋아하는 과목은 체육이다. 2학년 때 까지는 발레를 배워 유연성 운동을 주로 많이 했는데 3학년 때 미국에서 잠깐 학교를 다닐 때 같은 반 아이들과 요가하는 것을 배워와서 요가를 하더니 요즘은 옆으로 재주넘기, 물구나무서서 걸어가기, 몸 뒤로 젖혀 다시 일어나기 등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하는 고난도 동작을 척척해내는 체육 소녀가 되어있다. 


재활치료 후 퇴원했을 때만 해도 몇 달을 못 걸었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라도 생겼는지 유모차도 잘 안 타고 워낙에 활동적으로 자라더니 신체활동에 호기심도 많아 줄넘기면 줄넘기, 훌라후프면 훌라후프 뭐 하나 잡으면 잘 될 때까지 또 하고 또 하고 하니 못할 수가 없다. 지금도 아이는 커서 약사가 되거나 체육인이 되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처음에 질병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이가 걷지 못하자 들었던 생각은 이러다 장애인이 되는 건 아닌가. 걷지 못했다가 걸을 수 있는 그런 질병이 있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내 어머니는 내 아이가 앞으로 다시는 못 걸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과 그 아이를 평생 돌봐야 한다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딸의 수고스러운 인생에 대해 눈물을 많이 흘리셨다. 나의 둘째 딸은 걷지 못하다가 다시 걸을 수 있는 기적을 맛보았지만 2개월의 병원생활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활병원은 입원을 기다리는 환자로 가득 차 있고 못 걷고 못 서고 침대에서 하루 종일을 보내야 하는 아이들로 가득 차 있다. 

아이가 퇴원 전에 머물렀던 곳은 어른들도 같이 생활하는 재활병동이었는데 많은 병실 중에 딱 한 병실만 어린이 실이었다. 다섯 개의 침상 중에 회복되어서 퇴원할 수 있는 아이는 우리 아이 하나였고 다른 아이들은 부분마비나 영구적인 손상으로 인해서 회복이 불가능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듣도 보도 못한 길랑 바레라는 질병을 겪은 후로 나는 큰 교훈을 얻게 되었다. 

일상을 늘 감사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과 아이가 그냥 건강하게 살아 있어 주는 것 그것 자체가 부모에게는 큰 선물이라는 것. 그 마음으로 매일 아이를 바라보기로 오늘 한번 더 다짐해 본다. 


어제 코로나 확진을 받고 이틀을 굶고 고열과 구토로 지쳐 쓰러진 막내 아이를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그 시절을 되돌아보면서 회복할 수 있는 질병인 코로나에 걸린 것은 다행이란 생각에 길랑바레에 대한 글을 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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