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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아리 Dec 08. 2023

남편의 첫경험

예쁜 꽃무늬 앞치마를 입히다

한 직장에서 40년을 한결같이 성실하게 근무하고 무탈하게 정년을 꽉 채워 퇴직한 고마운 남편에게 나는 한가지 미션을 주었다.


그건 주방일. 음식을 만드는 거다.


그 이유는 얼마전 반가운 지인들 모임 자리가 있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연륜이 꽤 있으신 팔십 중반 되신 어르신(본인은 언니라고 부르라고  함)이 하시는 말씀이 내 귀에 콕 박혔다.


그건 부엌일을 남편에게 가르치라는 말씀이셨다.


그렇게 준비를 해 두어야 훗날 혹시라도 아내가 이 세상을 멀리 떠나고 없을 때 남편이 끼니를 챙기는데 있어서 당황하지도, 남에게 초라하게 보이지 않을 거라는 말씀이셨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말씀에 백배 공감이었다.


난 집에 돌아와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로 실행에 들어갔다. 어느때와 같이 이날도 TV 리모컨은 여전히 남편의 손에서 이리저리 바삐 놀아나고 있었다.


나는 남편의 손목을 이끌고 주방으로 데려와 이쁜 꽃무늬 앞치마를 입히고 도마와 날선 칼을 쥐어주면서 먼저 파 썰기부터 가르쳤다. 남편은 갑자기 그러는 나를 생뚱맞다는 표정으로 노려보며 꽥 소리 질렀다. 그도 그럴것이 평소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펀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그 바람에 약간의 멈칫함도 있었지만 여기서 밀리면 끝이다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아랑곳하지도, 멈추지도 않았고 미션은 계속 되었다. 남편이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밀리지 않고 미션을 실행한 결과 지금은 조금 서툴긴 해도 이정도면 훗날 당황하지 않겠구나 싶을 정도로 가르쳐놨다.


이젠 칼질도, 김치찌개 맛도 제법 낸다. 음식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끼며 지금은 나에게 고마워 한다.


홀로된 남편의 끼니까지도 챙겨두고 가야 맘이 편한 것이 아내의 마음인가 보다. 이 세상이든 저 세상든 어느 곳에 있던 아내는 영원한 아내일 수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을…

  

때마침 낯익은 남편의 휴대폰 소리가 유난히도 울려댄다. 김치찌개 맛나게 만들어 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빨리 오라 한다.(올 때 소주 한병도 같이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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