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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으아리 Dec 13. 2023

와인이 나를 쓰러뜨린 슬픈 밤

웬수같은 남편 미워

나도 남편도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특별할것 없는 일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남편은 징한 뒷끝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기에 늘 조심스럽다. 

뭔가를 털어내지 못하고 맘속에 잔뜩 담아놓는다. 

그러다가 술이라도 한잔 들어가는날엔 어김없이 버릇처럼 쏟아낸다. 

그 때도 다르지 않았다. 


이유인즉은,동네에 있는 외국인학교에선 매년 이맘때면 크리스마스마켓을 연다. 연중행사다. 이색적인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해준다. 각 나라별 음식과 수공예품 등등...아무튼,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있는 오픈 마켓이다. 


기대가 된다. 

남편과 함께가 보려고 산에 간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 참이다.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한듯 남편은 오늘따라 일찍 산에서 내려왔다. 날씨가 어찌나 포근한지, 봄같은 겨울 날씨다. 도착해보니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고 온통 축제분위기로 들떠있는 느낌이다.


입구에 서 있는 빠알간 나무열매가 매우 인상적이다. 내 시선을 끌었다. 앙상한 가지에 빠알간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것이 마치 아기 전구를 달아놓은 듯 참 예쁘다. 그 이름은 산수유란다. 선물같은 풍경이다. 난 시야를 넓혀 두눈를 크게 치켜 올려 사방을 쭈욱 스캔 한 후, 곧장 프랑스음식이 있는 부스로 직진했다.


다행히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음식을 받을 수 있었다. 야채스프와 다른 한가지를 더해서 두개를 받아 들고 노천테이블로 갔다. 화기애애하게 남편과 와인까지 마시며 맛나게 먹고 기분을 냈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오는 길에 옆에 있는 와인부스를 그냥 지나칠리가 없었다.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보고 그냥 지나치랴. 아니나 다를까 와인병을 서슴없이 여섯병이나 사댄다. 술욕심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을게다. 신이 났는지

남편은 엉덩이를 씰룩대며 기분좋은 걸 그렇게 표현한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문제는 집에 와서 터졌다. 남편은 술기운이 살아나는듯 얼굴색이 아주 볼그레한 것이 취기가 보인다. 뭔가 말을 할듯말듯 내 눈치를 보는 듯해서 물었다. 할말있으면 하라고. '분명 뒷끝일게야'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여자의 예감은 언제나 적중률이 높다. 대뜸 한단 말이 음식값이 얼마냐고 묻는다. 그러면서 장황하게 말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나는말야 줄 서서 기다리면서 음식 받아가지고 노천테이블에서 먹는 거 싫어. 정말 싫어."


순간 참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그 가격이면 곰탕이나 해장국을 먹었으면 훨씬 좋았을 거란다. 정말 알고는 있었지만 뒷끝 작렬인 남편 본성이 나오는게 아닌가 


휴...


난 그런 남편앞에서 할말을 잃었다. 


"내 남편 맞어? 진짜 남 편맞네"


두 가지 음식 가격은 만 칠원이였다. 

그것도 내가 가격을 지불했다. 

정말이지 이해불가였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안 먹겠다고 말 했어야 맞는거 아니냐고 따졌더니 내가 가격을 말 안해주어서 그냥 내버려 뒀다는 거였다.


순간 어느장단에 춤을 춰야 하는지 헷갈렸다. 


난 너무 화가 났다


"아이씨,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여기있네"


소리를 캑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공기가 다른 작은방으로 옮겼다. 앉아있는 뒷통수가 꼴도 보기싫었다. 정말이지 한대 내리치고 싶은 심정이였다. 홧김에 몇일전부터 미루어 왔던 옷정리를 후다닥 해치웠다. 


열받은 온 몸을 음악으로 식혀볼까하고 심수봉의 '홀로가는길'을 볼륨을 한껏 높여 듣고 있노라니 서러움에 눈물이 주루룩한다. 


남편은 수퍼에 맥주를 사러간다며 현관문을 열고 나간다. 

지금이 기회라 생각되어 남편에게 겁을 주기로 했다. 

맘 먹고 뭘할까 잠시 고민 끝에 마시지 못하는 술이지만 이거로 골탕을 먹이기로 하고 실행에 나섰다. 

마침 아까 마켓에서 사온 여섯 병의 와인이 넉넉히 있다. 


맘이 급해진다. 


먹기도 전에 남편이 그안에 올까봐 휴...


마시지 못하는 술을 생각하니 겁도 나긴 했지만 술 취해 널부러져 있는 날 보고 당황할걸 생각하니 그래도 난 술을 마셔야 한단 생각이 강했다.


"그래 죽기아니면 살기란다. 오늘 기분도 더러운데 술맛이 올메나 쓴지 마셔보자"


그런데 와인병 마개가 아무리해도 열리지가 않는다. 


뚜껑열기가 너무 힘들다. 술을 먹어봤어야 뚜껑을 딸텐데. 


남편이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열 것같아 맘이 콩당콩당이다. 


이렇게 저렇게 한참 씨름끝에 드디어 와인병 입이 열렸다.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내가 아닌 다른 나다. 열린 와인병을 보니 무언의 싸인을 주는듯 했다. 어여 입 맞춤 해달라고 와인병이 나에게 이야기한다. 나는 사정볼거없이 와인병 주둥아리에 내 주둥아리를 포개었다. 


들이부었다.


벌컥벌컥 받아 넘기느라 목구멍이 쉴틈없이 바쁘다. 넘기는것보다 들이붓는 속도가 더 빨라 주변으로 와인이 흘러 목줄기를타고 방바닥으로 떨어진다. 



시간이 없다. 빨리 마셔야한다.

남편오기 전에 이벤트를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얼마를 벌컥대고 있을때 뭔가 몸에서 야릇한 경험해보지 못한 반응이 나타난다.

아마도 이런느낌을 취한 거라고 하나보다.



점점 몸이 이상해져간다. 

몸 따로 맘 따로다. 몸이 말을 안듣는다. 

이건 뭐지 

천정이 빙빙돌고 방바닥이 위로아래로 왔다갔다한다. 

신기했다.


입에 물었던 와인병이 희미하게 보이는데 한병이였던 와인이 빈병되어 바닥에 딩군다,

알콜이 내 몸 속에서 활개를 치는 시간인가보다. 


아파오는 두통에 눈을 뜰수가 없다. 이러다간 내가 먼저 죽을거 같단 생각이다. 괴로워서 몸부림 치고 있는 사이 남편 들어오는 소리가 난다. 그래도 그때까지도 정신은 희미하게 살아 있어 그 순간을 기억할 수 있다,


남편은 나를 불러도 기척이 없으니 이쪽저쪽으로 나를 찾으러다닌다.

날 보더니 놀란다.


"이 여자가 왜이래 미친거아녀"


목소리가 떨려온다.


그도 그럴것이 전혀 술을 마시는 사람이 아니다보니 겁이 났나보다.

죽었는지 확인하나보다 얼굴을 때려보고 내가슴에 얼굴을 대어보기도한다 


나는 남편의 얼굴을 확 밀치며

 "저리가 웬수야 미워" 하고 빈 와인병을 집어던졌다.

와인병은 방바닥에 날카로운 소리를 지르며 떨어져 유리조각돼 번쩍인다.


속이 뒤틀리는 고통이 온다.

다 토해내고야 말았다.

그리고는 기억이 없다.


얼만큼 시간이 흘렀나보다 창문이 훤하게 보인다.

아마도 아침인 듯하다.

머리가 깨지고 온 몸을 가눌수가 없는 고통이다 이런 경험을 왜 자초했나 싶다.

왜 이런 술을 사람들은 마시는거지? 

아직도 모르겠다. 가끔은 이벤트가 필요하긴 하지만 이번에 다짐을 했다.


골탕을 먹일 땐 다음엔 술이 아닌 다른 걸로하자고..


2023.12.09 토요일밤은 내 평생 역사에 기록될 날이다.


와인이 나를 쓰러뜨린 슬픈 날 이기에...

와인과 찐한 키스의 댓가는 괴로운 고통이였다.

그렇다고 남편의 뒷끝이 없어진것도 아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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