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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Apr 01. 2017

클로징-아는 사람

The Master of Sales




집으로 전단지가 배달된 것은 토요일 아침이었다.


동네 인근에 'A 스포츠'의 팩토리 아울렛이 문을 열었다는 광고 전단이었다.  번잡함을 피해 월요일 오후 3시가 막 넘어서는 시간에 매장을 방문했는데 젊은 부부가 주인이었다.  매장을 이리저리 둘러보니 전체 3층 구조 건물에 1층과 2층은 매장으로 사용되고 3층은 창고 용도임이 눈에 들어왔다.  어렴풋 판단컨대 3억 5천만 원 정도의 재고물량에 2억 원 정도가 외상판매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어 젊은 사장에게 내 명함을 건네고 화재보험을 안내했다.


젊은 사장은 같은 회사 매장을 운영하고 있던 형과 함께 경기도 인근의 한 팩토리 아울렛에서 경험을 쌓다가 얼마간의 대출을 받아 매장을 열었다고 했고 건네 준 커피를 한 잔 마시며 내가 생각했던 매장의 운영구조를 물어보자 사장의 눈이 동그래지며 "어떻게 알았느냐?" 하는 반응을 보였다.


월납 50여 만원 5년 만기 상품의 안내서를 한 부 출력해 다음 날 젊은 사장을 찾았다.  2억 원 이상 외상판매 재고분에 대한 부담을 가지고 있기에 별도의 긴 설명은 필요하지 않았다.  사장은 옆에서 커피를 타 주던 부인에게 어떻게 할지를 묻는 시늉을 하다가 이내 청약서 위에 사인을 했다.  


사인을 받아 해당 증권을 전해 줄 것을 약속하고 나오는 길에 카운터 옆에 놓인 A 스포츠의 수첩 하나가 눈에 띄었다.  전국에 A사의 팩토리 아울렛이 몇 개나 있느냐는 질문에 사장은 대뜸 수첩을 펴 보였다.  수첩의 뒷 장에는 각 아울렛의 연락처와 매장의 대표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내가 한 부 복사를 해도 되는지 묻자 잠시 망설이던 사장은 팩스로 해당 연락처를 복사해 주며 경기도 어느 지역에 자신의 매장과 같은 시기에 문을 연 아울렛이 있다고 했다.


주소록에 적힌 A 스포츠 전국 매장의 수는 15개 남짓 되었고 그중 수도권에 위치한 것이 약 10여 개였다.  경기도 인근 새로 개점을 했다는 매장으로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이 누군가를 바꿔 주었는데 시간이 되면 한 번 들러 달라고 그가 이야기를 했다.  차로 경기도 인근의 매장까지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였다.  춘천 가는 길목에 위치한 매장이었는데 2개 동의 매장이 약 300평이 넘어 보였고 창고에 보관하는 물량으로 보나 7개 정도 되는 브랜드의 종류로 보나 지난주 계약한 매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큰 매장이었다.


명함을 건네고 내 인사가 막 끝나자 사장의 처남이라는 그 남자가 나를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창고의 내실로 안내했다.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근 비슷한 시기에 문을 연 아무개 사장님과 지난주 관련 계약을 했다고 이야기 하자 사장의 처남은 조금 더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매장을 한 번 둘러본 후 관련 자료를 준비해 보겠다고 했다.  총 재고 가액 8억 원. 외상 물량 6억 원. 두 개동 건물 350평.


사무실로 돌아와 전산을 확인해 보니 해당 계약은 막혀 있었다.  '철근 철골 슬라브조'가 아닌 '샌드위치 패널 구조'로 3급 건물의 경우 의류와 신발류 등의 가액은 1억 원 정도였다.  관련해서 회사 측 언더라이터와 상의했다.  전산을 임시로 열어 해당 가액을 잡을 수 있는지 여부가 관건이었다.  관할 부서장에게 보고한 후 절차상의 문제에 대한 확답을 받아내야 했다.


 다음번 방문해서는 사장을 만날 수 있었다.  40대 중반의 사장은 L 스포츠에서 대리점 담당을 하다가 함께 근무했던 친구와 함께 직접 매장 운영에 뛰어든 경우였다.  내가 지난번 방문해서 매장을 찬찬이 둘러보았고 회사 측 인수가액이 얼마 정도인데 전산을 임의 오픈해서 약 7억 원 정도의 상품가액을 개런티 하겠다고 하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준비해 온 가입내역서를 그에게 전했다.  2개 동 상품가액 7억 원.  건물가액 2억 원. 월납 460여 만원의 5년 납 상품이었다.


사장은 자신이 아는 사람 중에 S사에 근무하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에게서도 한 번 상담을 받기로 했다고 했다.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하시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대답한 후 언제쯤 다시 들러야 할지를 물었다.  사장은 일주일 후가 좋겠다고 했다.  S사는 명실상부 국내 1위의 회사였다.  그리고 상대는 가장 우려가 되는 '아. 는. 사. 람'


공교롭게도 사장을 만나기로 한 날은 월 마감날이었다.  아침부터 어수선한 사무실을 나서는 내 마음이 무거웠다.  생면부지의 남에게 매월 500만 원 가까운 보험료를 청구해야 하는데 그에게는 아는 사람이 있다.  잘 될 것인가?  차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를 가면서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가급적이면 다음 달로 이 건을 넘기고 싶지 않았다.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긴장했다.


사장은 밝은 표정이었지만 아직 S사의 상품 안내서를 받지 못했다고 했다.  점심시간에 매장으로 아는 사람이 찾아 오기로 해서 그때 그걸 확인하고 최종 판단하겠다고 했다.  웃는 얼굴로 그렇게 하시라고 한 후 차를 돌려 나오는데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마감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7시간 남짓.  사장이 S사 직원과 만나서 확인하고 결정을 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최소 3시간.  4시간 안에 모든 걸 결정 지어야 했다.


차를 대성리 역 인근에 주차하고 우유 한 병과 샌드위치 하나를 사서 차에서 기다렸다.  대성리역 인근에는 젊은 남. 녀의 무리들이 깔깔대며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젊음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 하는 생각으로 한동안 있다 다시 계약과 관련해서 오만가지 생각이 교차했다.  시간이 참 더디 흘렀다.


오후 2시다 되어서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검토해 보셨습니까?" 하는 내 물음에 사장은 "네. 아는 분이 오셔서 상품에 대한 안내를 잘 받았습니다.  전일 제게 안내해 주신 것과 큰 차이는 없군요..."라고 했다.  순간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사장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큰 차이가 없는데 먼저 오신 분께 기회를 드리는 게 맞는 것 같군요.  오셔서 계약하시지요."


머릿속이 하얘졌다.  계약을 하자는 이야기였다.  대성리에서 차로 매장까지는 약 20여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청약서에 막 사인을 하고 자동이체를 걸어 초회 납 약정을 하고 나서는 길에 나도 모르게 다리가 풀렸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내 눈물이 나왔다.


마감 날 착 가라앉은 분위기의 사무실로 돌아와 초회 납 460여 만원을 회사에 납입한 후 계약을 전산에 넣고 나자 여기저기서 동료 직원들의 찬탄이 흘러나왔다.


A사의 아울렛 매장에서는 이후 다른 계약을 6개 정도 더 체결했다.  정기적으로 들러서 인사를 드리면 과분하게 대접을 해 주시는 사장님들이 태반이었다.  점심식사를 함께 하자고 전화를 주시는 건 물론이고 자동차 보험이나 다른 일과 관련해서도 선뜻 마음을 열어 주셨다.  물론 처음 50여 만원으로 시작했던 A사 관련 월납 보험료는 3,000만 원 가까이로 불어나 있었고 나는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이제 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운전을 하는 도중에 전화를 한 통 받았다.  A 스포츠 영업부 아무개 과장이었다.  인천 검단지역에 새로 매장을 하나 오픈하는데 방문해서 컨설팅을 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 통화의 요지였다.  흔쾌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통화를 끝냈다.  통화 말미에 그가 했던 말이 자꾸 귀에서 맴돌았다.


"저희 회사 사장님들 하시는 말씀이 가장 믿을만한 분이라고 하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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