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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Aug 13. 2017

알렉산드리아

지중해의 진주

사람들이 예언자에게 몰려와 물었다.

"우리가 스스로의 몸을 청결히 하는 방법을 알게 해 주십시오."


예언자가 말했다.

"하루 다섯 번 기도를 하고 매번 기도하기 전에 그대들의 몸을 청결히 씻는다면 더 이상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사람들이 다시 예언자에게 물었다.

"그러면 우리가 그 기도하는 때를 어떻게 알 수 있는지 알려 주십시오."


예언자는 빙긋이 미소를 보이며 사람들에게 대답했다.

"마을과 마을 사이에 등대를 세우고 매 기도시간 전에 그 등대 위에 서서 누군가 그 기도시간을 알린다면 그때를 모두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카이로에서 알렉산드리아 가는 일등석 열차표

카이로 람세스 지하철역에서 내려 알렉산드리아 가는 기차역을 두리번대며 찾았다.  요란한 경적소리와 나귀들이 끄는 짐수레를 이리저리 피해 행길을 몇 차례 건너자 고가도로 너머 기차역이 겨우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이 없는 길을 건너 목으로 흐르는 땀을 연신 닦아 내며 기차역 안으로 들어섰을 때는 매표소를 이내 찾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수소문을 하여 매표소를 찾았는데 알렉산드리아 가는 매표소는 맨 끝번이라는 안내를 받았다.  오후 12시 차량번호와 객차 번호 그리고 좌석번호를 휘리릭 적은 표 한 장을 손에 들고 나서야 겨우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열차를 기다리고 있는 승객들

열차에 올라 자리를 찾아 앉았다.  나름 에어컨이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지정된 좌석이 입구 바로 앞이라 입석으로 가는 몇몇 사내들이 내 자리 주변에 모여 있었다.  그중 한 사내는 쉴 새 없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내 머리 위로 계속 침을 튀기고 있었다.  게다가 지근거리에서 내 귀에다 대고 연신 들이붓는 듯한 그 이집트 아랍어의 향연은 무척이나 고역이었다.  어쩌겠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는 생각으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열차가 출발하고 나서 창 밖으로 지나는 풍경들에 눈을 고정한 채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을  무렵의 시간이 얼마쯤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 사내가 없어진 것을 겨우 알아차렸다.  대추야자 나무 숲을 지나고 이름 모를 마과 하얀 빨래가 햇빛 아래 바삭 말라가는 그 마을의  마당과 마당을 지나 푸른색으로 바람에 일렁이는 밀밭을 지나면서 나는 '밀밭의 윌리'를 생각다.   "이집트 왕과 밀 중에서 어떤 것이 더 가치가 있는 거야...?" 하던 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내었다.


알렉산드리아 기차역

크고 작은 역에서 여러 차례 정차하기를 반복하던 열차가 세 시간 가량을 달리고 나서야 마침내 종점인 알렉산드리아 기차역에 겨우 도착을 했다.  사람들을 따라 역 대합실을 빠져나오자 노란색과 검은색으로 치장한 택시들이 역 앞에 옹기종기 진을 치고 있는 풍경이 보였다.  전화기에서 지도와 숙소 위치를 확인하고 길머리를 바로 잡았다.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가면 지중해변이 나오고 그 해변도로 앞에 숙소가 있었다.


콰이트베이 요새로 가는 해안도로(코르니쉬)
몬타자 궁전으로 가는 해안도로(코르니쉬)

숙소에 도착해 체크 인을 하고 방에 짐을 부려 놓은 후 숙소의 꼭대기 층으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숙소의 꼭대기 층은 식당과 카페로 치장을 하고 있었다.  건물 옥상의 가장자리로 다가가자 알렉산드리아를 감싸고 있는 지중해의 풍경이 눈 앞에 성큼 다가왔다.  멀리 콰이트 베이 요새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으로 가는 해안도로가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날은 금세 어둑해지고 있었다.  인근 거리를 어슬렁대다가 얼렁뚱땅 저녁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온 시간 날은 이미 깜깜다.  해안가 방파제를 따라 젊은 남녀들이 밤의 장막 속에서 삼삼오오 모여 앉아 웃고 있었다.  


다음 날은 금요일이었다.  정오 무렵이 막 가까운 시간에 숙소를 빠져나와 해안가로 통하는 길을 이리저리 걸어 보기로 했다.  전차가 다니는 정거장을 지나 바닷가로 가는 길은 텅 비어 있었다.  전차의 철길을 마악 지나칠 무렵 금요일 정오를 알리는 기도소리가 모스크의 첨탑 여기저기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알렉산드리아 시내 전차 정거장

철길을 지나 바람이 빠르게 지나는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지중해 바닷가였다.   한적한 해안을 걷는 두 여인이 보였다.  히잡을 쓰고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모습이 정겹게 느껴졌다.  


금요일 해안가를 걷는 두 여인

바다를 향해 서서 낚싯대를 손에 쥐고 있던 한 사내는 고기가 낚이기를 바라고 있는 것일까?  미끼라 해 봐야 고작 빵을 물에 적셔 낚시 바늘에 끼우고 연신 낚싯줄을 거두어들였다 다시 바다로 던지는 일을 반복하던 그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터키 이스탄불 갈라타 타워 가는 다리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던 터키 남자들을 문득 기억해 내었다.  


바게트 빵을 물에 말아 미끼를 만들어 던졌다

듬성듬성 기와가 깨어져 나간 지붕 위로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바람소리에는 나지막한 파도의 속삭임이 섞 있었고 바람이 지나간 자리마다 소금기 가득한 세월의 흔적들이 하얗게 남아 있었다.


파도소리에 잠이 들고 바람소리에 잠이 깨기를 얼마나 반복했을까

리비아 트리폴리가 '지중해의 인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고 이집트 알렉산드리아는 '지중해의 진주'라는 별칭이 있다고 했지만 정작 바닷가에 서 있는 입간판에는 '지중해의 신부 알렉산드리아'라고 적혀 있었다.  진주 장식을 단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새색시라는 의미일까?  아주 오래전에 이곳을 찾았던 카이사르와 안토니우스는 이 땅의 주인이었을 클레오파트라를 그렇게 바라보았을지 모르는 일이다.


'지중해의 신부 알렉산드리아'

파도가 돌돌 거리며 밀려왔다가 다시 밀려가듯이 한 사내가 자전거의 두 바퀴를 굴리며 지나갔다.  나를 지나 친 그 사내는 얼마간 바퀴를 굴리다 잠시 내 앞에서 두 발을 멈추고 멀리 바다를 응시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리고 그를 바라보는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일이지만  매일 바라보는 바다 그리고 매일 지나치는 길 위에서 그 사내는 문득 무슨 생각이 들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도 한번쯤 해보게 되었다.


두 바퀴는 파도처럼 굴러간다
문득 무슨 생각이 든 것일까

세상 모든 물건에는 그 쓰임새가 있다.  그것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든 아니면 사람이 생기기 전 이미 존재하던 것이든 우연히 존재하는 것은 세상에 없다.  바닷가에 세워진 파라솔 하나와 플라스틱 의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 텅 비어있는 의자에 앉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하고 싶은걸 모두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주인을 기다리는 작은 의자

인간의 역사에서 고래의 지식이 한때 모여 있던 곳.  바로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이다.  그리스와 로마의 고서들로부터 오리엔트의 비밀들이 모두 이 곳 알렉산드리아 대도서관에 차곡차곡 모여들었다.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여 결국 한 줌 재로 변해버린 이 곳에 다시 같은 이름의 도서관이 생겼지만 그것은 아주아주 나중의 일이었고 오래전 모여있던 찬란한 유산은 한여름 밤의 꿈처럼 모두 사라져 버렸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전경

항상 무언가를 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아주 가끔은 바닷가에 앉은 아이처럼 단지 시간 속에서 정지된 풍경처럼 지내보는 일도 필요한 일이 아닐까?  


누군가는 단지 바다를 바라 볼 뿐이다

숙소 옥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해안도로에는 오고 가는 차들의 경적소리로 가득했다.  도로의 오른쪽으로 펼쳐진 지중해는 하루 영업을 이제 마감해야 할 시간이라도 되는 양 바다 한가운데 모여 있던 빛을 바닷가로 서서히 몰아내고 있었다.  이제 얼마 후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해가 바다로 지는 시간은 아주 짧다.  순식간에 낯과 밤이 서로 뒤바뀔 것이다.  그 사이에 나는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숙소를 빠져나왔다.


은빛 생선의 비늘처럼 바다가 번들거리는 오후

골목길을 지나다 보이는 '아부 나쓰르' 식당에 앉았다.  식당을 삥 둘러싼 전광판에는 각종 메뉴가 이발소의 삼색등처럼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었다.  점원 하나가 쭈뼛거리며 다가오다가 말고 다른 점원에게 뭐라고 이야기를 하자 이야기를 받은 점원이 씩씩하게 아랍어 한편에 영어로 적힌 메뉴판 하나를 들고 자리로 왔다.  골목길을 오고 가는 행인들은 모처럼 낯선 동양인 하나가 식당 한편에 앉아 있는걸 신기하게 여겨 계속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물 한 병과 샐러드 그리고 기억에 없는 뭔가를 하나 주문했고 그 맛은 내 생각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었다.  셈을 치르고 또 다른 골목길을 지나 아주 오래된 간판의 커피숍 안으로 들어섰다.


아부 나스르 식당 - 손님은 없는데 종업원들은 바쁘다

바닷가 근처에 있는 그 커피숍은 이름이 브라질리언 커피숍이었다.  직원들은 한결같이 브라질 축구팀이 입는 노란색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커피숍 2층에 앉아 아무것도 첨가되지 않은 원액의 커피 한 잔을 시키고는 한동안 사람들이 오고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각양각색의 사연들을 서로 나누며 사람들은 바닷가 우체국을 찾아 가지고 온 편지봉투에 정성껏 우표를 붙이듯이 한잔의 커피를 마시고 눈빛을 속살거렸다.  커피숍 한편에는 커피를 빻는 거대한 기계가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아마도 가게를 찾는 손님들에게 오래된 가게의 전통과 긍지를 자랑하고 싶은 듯 보였다.  


Since 1938 . 브라질리언 커피숍에서
Since 1938 .  불과 얼마 전 까지 사용되었던 커피 그라인더


세상 모든 밤바다를 지켜주는 등대에는 오래된 기원이 있다.  일찍이 알렉산드리아 바닷가에 '파로스'라는 등대가 있었는데 그 높이가 160미터 정도였다고 했다.  


오늘날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시간을 알리는 첨탑을 '마나르'라고 하는데 그 뜻은 아랍어로  '등대'를 의미한다.  밤바다의 모든 배들을 등대 불빛이 지켜 내듯이 이슬람 사원의 등대 마나르는 이슬람의 신앙을 밤의 암흑 같은 무지로부터 오롯이 지키는 역할을 해내라며 그렇게 이름 지어졌을 것이다.  


그리고 그 등대의 기원이 바로 여기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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