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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늑대

'샤리프'는 천국에 갈 수 있을까?

by 오스만

영어 단어 'Assassin'은 암살자를 의미하고 'Assassination'은 그 암살자가 행하는 암살이라는 뜻을 가진다.


이 단어의 어원은 본래 아랍어 '하쉬쉬'에서 유래하였는데 그 뜻은 '풀'을 의미 하지만 통칭적으로 마약을 은유하고 하쉬쉬에 취한 사람을 '하샤신'내지 '하쉬신'으로 불렀는데 정적을 제거하는데 동원된 중세 이슬람 제국 시대 자객의 별칭이 바로 이 '하쉬신'이었기에 오늘날 'Assassin(어쌔신)'의 기원이 되었다.


'샤리프 알리 이사'는 레바논 베이루트 출생이지만 본디 시리아 할렙(알레포)에서 이민 온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위로 형이 둘, 누나가 하나 있었고 가난했지만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가족들은 시리아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남편 없이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기에 샤리프의 엄마는 집에서 만든 반찬이나 튀김 과자 등을 거리에서 팔았고 두 형들은 자동차 정비 일을 배워 근근이 생활하고 있었다.


2011년 아랍의 봄과 함께 시리아 아사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내전이 시리아 전역을 휩쓸자 할렙의 가난한 동네에서 고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다니던 샤리프는 학교에 가지 못하고 두 형들과 함께 반정부군의 편에 합류하여 '클라쉬니코프'소총을 잡는 소년병이 되었다.


그 해 튀니지와 이집트, 그리고 리비아의 독재 정권이 차례로 무너지면서 기대와 희망을 가득 품었던 반정부군 진영은 러시아를 위시한 중국과 이란 등의 친 시아파 국가들이 아사드 정권 편에 서면서 지루한 장기전의 수렁에 빠져 들게 되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전투 중에 샤리프는 두 형을 잃었다.


졸지에 두 아들을 잃게 된 샤리프의 엄마는 스무 살이 막 지난 샤리프의 누나와 함께 샤리프를 설득하여 터키 이스탄불로 거취를 옮겼으나 그들의 궁핍한 삶은 계속되었고 곤궁한 시리아 난민들이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샤리프의 누나는 이스탄불 '이스티끄랄'거리에서 아랍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기념품점에 어렵게 취직했고 샤리프는 블루 모스크 인근의 케밥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시작해야 했다.


하루 일이 끝나는 늦은 밤 시간 샤리프는 20여 분을 걸어서 '에미뇌뉴' 선착장의 바닷가를 찾아 혼자 서성였다. 갈라타 다리 너머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밤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샤리프는 전쟁터에서 죽은 형들을 생각하거나 학교에서의 친구들 얼굴을 하나씩 떠올려 보기도 했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저 '갈라타 탑' 너머 어딘가에 떠나 온 내 고향이 있을까? 무함마드, 왈리드, 카림, 칼리드, 주마... 그들은 아직 살아 있을까? 현실은 암울했고 내일이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을 그는 보내고 있었다. 단지 고단한 하루가 또 지나고 있을 뿐.


그녀의 이름은 '바스마'라고 했다. 이름이 뜻하는 바 그대로 그녀는 미소가 아름다운 아가씨였다. 샤리프가 일하는 식당의 인근에서 행상을 하는 남자의 딸이었다. 길을 지나다가 눈여겨보게 된 순간 이후부터 샤리프의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시리아 '하마'에서 왔다고 했다. 가본 적은 없지만 물레방아가 유명한 서부도시로 바스마처럼 무척 아름다운 곳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바스마는 샤리프 보다 한 살이 많았다. 바로 위의 누나 '라합'과 동갑이었다. 샤리프는 그녀가 누나처럼 포근하고 다정하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가 웃을 때마다 누나 이상의 감정을 느꼈다. 기분이 이상해지는 그런 느낌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바스마와 그녀의 아버지가 보이지 않았다. 하루. 이틀... 일주일이 지나도 그들이 보이지 않았던 까닭에 처음 가졌던 샤리프의 궁금증은 걱정으로 이내 바뀌었다. 식당이 끝나는 늦은 시간에 샤리프는 인근에서 노점을 벌이는 시리아인들을 대상으로 수소문하여 바스마의 집을 찾아 나섰다. 정확한 주소지가 없어 매 번 허탕을 치는 날이 계속되었지만 샤리프의 마음은 절박함으로 가득 찼다. 이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만큼 그의 모든 의욕이 몸에서 스르르 빠져나가는 느낌을 아침마다 느껴야 했다.


두 달이 지나가던 어느 날, 바스마를 우연히 만났다는 전별을 받아 샤리프는 일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탁심 광장의 구불구불한 뒷골목을 찾았다. 그곳은 사창가가 위치한 곳이었다. 일대를 이리저리 전전한 끝에 샤리프는 바스마를 만났다. 진한 화장을 한 그녀는 샤리프를 보는 순간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졌다. 샤리프의 시선을 애써 외면했다. 웃음이 아름다웠던 바스마의 표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샤리프는 입고 있던 겉 옷을 벗어 바스마의 어깨에 두르고 그녀의 손을 낚아 채 듯이 끌어 거리로 나왔다.


어두움 속에서 '마르마라 해'가 코 앞에 다가 온 순간까지 둘은 말없이 걷고 또 걸었다. 인적이 드문 해안가에 선 채 둘은 어색함을 잊기 위한 듯 바다 위를 오고 가는 배들에 시선을 고정했다. 진한 물 냄새가 풍겨 왔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바스마였다.

"아버지가 이민국 직원들에게 잡혀 가셨어. 나 역시 불법 체류자 입장이라 면회가 힘들고... 당장 손에 쥔 돈은 없고...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하네... 샤리프. 그래도 얼마간의 돈을 준비해 가면 아버지가 그곳에서 나오실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

샤리프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목이 메어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무기력하게 여겨졌다. 무엇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너와 나의 인생은...


시리아 홈즈 출신의 '모흐씬'을 만난 건 그 무렵이었다. 샤리프 보다 다섯 살이 많았던 모흐씬은 이스탄불 대학에서 '국제 정치학'을 전공하는 학생이었는데 그를 만나게 된 건 이른 아침 블루 모스크에서의 예배 시간이었다. 그는 신실한 무슬림처럼 여겨졌고 처음 보는 샤리프에게 친 형과도 같은 친밀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1년 전 두 형을 잃은 샤리프에게 모흐씬의 존재는 너무 깊숙하게 그리고 빠르게 다가왔다.


샤리프는 모흐씬에게서 아버지의 따뜻함을 느꼈고 두 형들의 애정을 느꼈다. 중단된 그의 학교 생활에 대한 갈망과 세상에 대한 절망 속에서 모흐씬의 태도는 그의 숨통을 겨우 트이게 만들었다. 모흐씬의 말투는 세련되었고 눈빛이나 걸음걸이, 표정 하나 어느 것 하나 반듯하지 않은 부분이 없을 정도로 샤리프의 눈에 그는 선망의 대상이자 이상적인 사람이 되어 갔다. 그는 달변가였고 샤리프는 그런 모흐씬을 닮고 싶었다.


금요일 정오 '쌀라툴 주므아 (금요예배)'를 마치고 둘은 보스포루스 해협이 바라다 보이는 한적한 언덕 위 찻집에 앉아 터키쉬 커피를 주문했다. 알싸한 생강의 향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모흐씬이 샤리프가 마시고 남긴 커피잔을 들어 점을 봐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내 심각한 표정으로 바뀐 모흐씬이 샤리프에게 물었다.

"너... 누군가를 간절히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구나?"

순간 샤리프의 머릿속에서 바스마의 웃는 얼굴이 떠 올랐다. 그녀를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책하는 시간이 그동안 얼마나 샤리프를 괴롭혀 왔던가?

샤리프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심각한 표정의 모흐씬이 샤리프의 표정을 지켜보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알라(하나님)는 인간에게 시련과 고난을 주시기도 하시지만 그분이 주시는 그 힘든 시간만큼을 또한 온전한 기쁨으로 돌려주시는 분이란다. 샤리프...

너 나를 믿니? 내가 네게 하는 말을 그대로 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말이야."

샤리프는 정색을 하며 모흐씬에 대한 신뢰를 긍정했다.

"그래. 나도 네가 꼭 내 친동생 같구나.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네가 꼭 지키고 싶은 사람을 지켜 주기 위해 너는 알라에게 너의 모든 걸 드릴 수 있겠어? 너 자신 조차도. 이스마엘을 알라에게 봉헌하려 했던 아브라함처럼 말이지..."

모흐씬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오랫동안 삶을 형벌처럼 받아들였던 샤리프가 모흐씬의 눈을 들여다보며 입을 열었다.

"지켜 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을 생각하면 제 가슴속에 분노의 불길이 타오르는 걸 느끼죠. 하지만 그것은 단지 분노일 뿐 분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걸요..."

샤리프의 말을 끝까지 듣고 있던 모흐씬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주머니 속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샤리프에게 봉투를 열어 보라고 했다. 봉투를 열어 본 샤리프의 손끝이 떨렸다. 500유로 100장이 들어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거금이었다.


"알라를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하는 것보다 더 값진 일은 없단다. 순교자가 되는 일이야. 하늘의 말 '알 부락'을 타고 넌 순교자가 누리는 천국의 정원에서 네 마음속의 분노를 영원히 잊을 수 있지. 네가 이 일을 해 준다면 너의 가족들에게 이만큼의 금전이 더 전해 질 거야. 물론 너의 순교는 가치를 매길 수 없지만. 할 수 있겠니?"

엄마와 누나 라합의 얼굴이 차례로 떠 올랐다가 이내 바스마의 얼굴로 바뀌었다.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놓치기 싫은 기회. 샤리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주 스무 살이 된 청년 샤리프의 눈이 반짝였다.


한 달 뒤 바스마와 그의 아버지는 이민국 직원의 호위를 받으며 '아타튀르크' 공항의 입국 심사장에 나타났다. 한층 삼엄해진 공항 검문검색을 통과하며 자꾸 뒤를 돌아다보는 바스마를 늙은 아버지가 낯설게 느끼며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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