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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인어'

리비아 바닷가에서 보냈던 어느 하루

by 오스만

'지중해의 인어'

북아프리카 지중해변에 위치한 나라 리비아. 2011년 '무아마르 까다피'정권 몰락 이후 급격한 정치적 혼란에 휩싸인 그 나라를 부르는 수 많은 별칭 중 나의 마음을 가장 사로 잡는 이름이다. 수도 트리폴리와 동부의 미항 벵가지, 그리고 지중해.


그 기억만으로도 가슴 뛴다. 그곳의 한 바닷가에서 보냈던 하루에 대한 이야기.


새벽녁에 일어나 지중해에 내리는 아침을 맞는다. 금요일 휴일을 맞아 오늘은 호젓하게 지중해 바닷가에서의 하루를 보내리라 생각하며 길을 나섰다.


차에 간단한 취사 도구를 싣고 해안가 벼랑에 서다. 매섭게 부는 바닷바람이 나를 집어 삼킬 듯 불어 댔다. 파도가 부서지고 밀려 나기를 수억년. 사람으로 나서 짧은 시간을 살아 간다는 궁싯거림에 세상을 향한 이방인의 짙은 향수가 우러 났다. 바다 건너면 그리스의 '크레타'나 '산토리니' 같은 섬들을 만나게 되겠지?


오전 10시.

어느새 하늘은 환하게 밝아 있다. 구름이 빠르게 머리 위에서 어딘가로 흘러갔다. 어디로 가는걸까?


차를 몰아 바닷가에서 다소 떨어진 산 등성이에 섰다. 옛날 사람들은 이런 풍광을 대하며 호연지기를 길렀으리라. 하늘과 땅과 바다가 내 두 눈 가득이 들어 온다.


연이 내 손에 들려 있다면 훨 훨 날리고 싶다. 이카루스의 날개를 달고 신화 속의 그 사람처럼 나 또한 태양을 향해 힘껏 날아 오를 수 있을까?


길은 바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 또 새로운 길로 이어 진다는 사실을 긍정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 길을 따라 오늘 끝없이 걷고 싶다.


수많은 세월 힘차게 흘렀을 강줄기가 이제는 말라 붙어 와디가 되었다. 말라 버린 강바닥은 지난 옛날 은성했던 그 시절을 꿈꾸며 잠들어 있을까?


계곡 아래에 대추야자 나무 몇 그루가 보인다. 작은 대추야자 씨앗을 던졌더니 사막의 마신이 나타나 그 씨앗을 맞고 자기 아들이 죽었다며 복수를 다짐하던 '아라비안 나이트'의 한 이야기가 생각 난다.


봄이 오는가 보다. 긴 겨울 지내고 지중해의 언덕에도 봄이 오는가 보다. 바다 멀리서 들려 오는 봄의 소리가 들리지 않나요?


해안가로 돌아와 간단히 점심을 먹었다. 나른한 오후의 시간. 바다도 의자도 바닷가에 뜬 배 두 척도 그리고 나도 모두가 파도소리에 꾸벅 꾸벅 졸며 나른한 오후의 잠에 빠져 있었다.


출어를 앞 둔 몇 몇 어부들이 배에 발동을 걸면서 가벼운 술렁거림이 있었지만 잠에 취한 오후시간의 바다는 좀체 기지개를 켤 생각을 않는다.


어부들의 집으로 초대를 받아 설탕이 바닥에 수북하게 가라 앉은 홍차 한 잔을 대접 받았다. 바다와 하얀 자동차와 해변의 조각배들이 풍경화보다 아름답다.


밀려 오는 파도에 출렁대며 배들은 어느 노인이 꿈꾸었던 '사자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태초의 바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 듯이 나는 바닥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지중해 바닷물에 두 발목을 담근채 첨벙 첨벙 이리 저리 발걸음을 옮겨 보았다.


은빛 생선의 비늘처럼 오후가 깊어 가자 지중해가 반짝이기 시작했다. 코발트빛 바다가 오후 햇살을 만나 눈을 뜨기 어렵게 빛났다.


멀리 저녁 노을이 내려 앉는다. 수평선 가득 신세대 젊은이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하루 해가 저문다. 지중해의 밤이 오고 있다. 현실로 돌아 가야 할 시간이 다가 왔다.


"세상의 도피를 꿈꾸는 모든 자 지중해로 오라. " (영화 지중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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