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 평야를 달리는 그 아이의 이야기
가족 단톡방으로 처음 그 기별을 받은 것은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막 양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대박...1등 했어."
집사람이 보낸 메시지였다. '도전 골든벨' 유럽. 아프리카. 중동지역 최종결선 1위. 이것은 바로 내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들이 처음 이집트 카이로에서 도전 골든벨 예선에 참가한다는 이야기를 집사람으로 부터 전해 들었을 때는 "뭐...그런것도 하는가..."싶을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아이들 몇 명이 모여서 하는 동네 퀴즈대회 정도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게다가 학교를 다녀 와서 휴대폰만 붙잡고 산다고 집사람이 내게 하소연을 달고 살았었기에 재미 삼아 하는 단순한 놀이 정도로 생각 했었다.
아들이 이집트 카이로에 처음 온 것은 초등학교 5학년 1학기였다. 아들의 의사가 아닌 온전한 부모의 선택이었고 1년 정도를 한국 학교에서 수업 받은 후 국제학교로 옮겼을 무렵 나와 집 사람의 우려가 무척 컸었다. 여러가지 우려가 있었겠지만 그 우려의 대부분은 어른들만의 걱정이었다. 학교 수업이 영어로 진행 될 텐데 수업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지. 대부분의 반 아이들이 외국 학생들 일텐데 그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 지 등의 지극히 모범적인 고민이었다.
처음, 바뀐 학교의 교복을 입히고 아직은 어린 나이의 아들을 첫 수업에 들여 보낼 때는 마음 한구석 시큰한 안쓰러움이 있었다. 부모 욕심으로 어린것 마음 고생 시키는게 아닌가 싶은 심정이었다. 시간이 조금씩 지나 가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 버스를 타고 오고 가는 일에도 익숙해 졌고 학교 시험에서도 곧잘 우등한 성적을 받아 오는 아들이 무척 대견 스러웠고 제 2 외국어로 선택했던 어려운 아랍어 수업도 나름 큰 무리없이 따라 갔기에 부모로서의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집사람의 푸념이 시작 된것은 아들의 키가 훌쩍 크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어느새 집사람 보다 더 커진 것은 물론이고 어쩌다 방학이 시작하는 시간에 한국이라도 몇 달 다녀 오기라도 하면 보는 사람마다 "도대체 키가 몇이냐"는 질문을 던지기 일쑤였다. 키가 커지면서 아들은 사춘기를 겪었고 목소리가 변성기에 들었고 생각이 커졌다. 문득 아이 취급 받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집사람의 고민은 깊어졌다. 아이가 아닌 남자를 키워 본 경험이 없었기에. 엄마의 자격으로.
한인 교회에서 만나는 또래의 남자 아이들과 어울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아들은 전화 한 통 없이 밤의 카이로 거리에서 시간을 보냈다. 가뜩이나 치안이 예전만 못하다는 교민들의 걱정이 이어졌기에 집사람의 한숨은 늘었고 아들은 엄마의 그러한 반응을 간섭으로 여기는 듯 했다. 아들의 '이유없는 반항기'가 시작 되었던 것이다.
처음 카이로 지역 '도전 골든벨'이 예고 되면서 또래 아이들이 의욕을 가지고 준비 한다는 소문을 전해 듣던 집사람은 아들이 다른 아이들 마냥 집중력을 가지고 준비하지 않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 곧잘 학교 수업을 따라 가는 편이었고 아주 우수하지는 않지만 나름 우등한 성적을 집으로 가져 오는 아들이라 그건 조금 노력을 더 해 주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었겠지.
그런데 카이로 예선에서 아들은 1위를 했다. 뜻 밖이었고 기대는 있었지만 사실 그 기대의 90프로 이상은 부모로서의 막연한 바램이었지 현실적으로 아들이 다른 참가자들에 비해 우위에 있다는 생각의 기반이 아니었기에 한편으론 무척 당혹 스럽게도 여겨졌다. 그리고 일부에서 "운이 좋았군" 하는 시기와 질시가 아주 없지도 않았으리라. 사람 사는 세상은 모두 거기서 거기가 아닌가?
한달 뒤 열리는 중동. 아프리카. 유럽지역 결선을 앞 두고 집사람은 혹시나 하는 기대감과 엄마된 마음 쓰임에 조금만 더 집중해서 준비를 해 주었으면 했겠지만 그게 또 성이 차지 않았나 보다. 아들은 학교가 끝나면 휴대폰으로 페이스북을 하고 주말에는 또래 친구들과 어울렸다. 결선이 열리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에는 각 지역의 예선을 1위로 통과한 실력자들이 잔뜩 몰려 올텐데 말이다.
아무튼 시간은 흘러 갔고 비엔나로 가기 이틀 전 사단이 벌어 졌다. 예약한 항공편이 이유없이 취소된 것이다. 일정에 맞추기 위해서는 불과 10시간 후에 뜨는 다른 비행기를 타야만 하는 상황. 새벽까지 대회 관계자에게 카톡을 보내고 호텔을 알아 보는 등 수선을 피웠다. 꼭 이 대회에 참가해야 하는가 하는 회의가 몰려 온 것도 사실이지만 아들의 의견에 따라 모든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다.
세 시간 일찍 공항에 도착해서 항공편을 바꾸고 티켓을 새로 받아 집사람과 아들이 비엔나 호텔에 잘 도착했다는 기별을 받고 나서야 겨우 마음이 놓였지만 그건 단지 대회가 열리는 장소에 무사히 도착한 것에 불과한 일이었지 정작 각 국에서 몰려 온 쟁쟁한 실력자들과 이틀 뒤 결선을 치르는 일과는 전혀 무관한 해프닝이었다. 전조가 좋지는 않은 것이었다.
간간히 집사람에게서 기별이 오고 갔다.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과 외부에서 식사를 함께 했고 어느 나라에서 몇 명이 참가를 했으며 대회가 열리는 장소의 분위기 등을 이모 저모 내게 전해 주었다. 그리고 여전히 집사람은 아들에 대한 불평을 잊지 않았다. 밤 늦게 까지 영국 대표로 온 학생과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했다. 내일이 시합인데도.
대회 당일 아침 일찍 메시지를 몇 번 주고 받다 집사람으로 부터의 기별이 끊겼다. 본 대회가 시작되면서 본인도 많이 긴장되고 걱정 되었으리라 생각했다. 어쨋든 국제대회가 아닌가? 처음 아들이 국제학교로 적을 옮기던 날 아침 걱정스레이 바라보던 우리를 돌아 보며 손 흔들던 어린 모습이 불현듯 생각났다. 그리고 몇 시간 후 집사람의 메시지를 받은 것이다.
"대박...1등 했어..."
아들은 오는 7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도전 골든벨' 본 대회에 중동. 아프리카. 유럽지역 결선 1위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매번 걱정을 끼치는 아들이지만 그 아이는 어쩌면 페르시아 전쟁에서 마라톤 평원을 외롭게 질주했던 '피에디 피데스'마냥 고독한 질주를 계속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를 일이다. 다만 부모로서 단지 지켜 보아야 하고 그 아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해 주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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