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

by 오스만


아침 출근시간이 훌쩍 지났지만 지하철엔 빈자리가 없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했을 때 아직 약속시간 까지는 여유가 있었다. 환승역에서 승객들이 우르르 내리고 탔다. 그 바람에 내 앞자리 하나가 비었다. 자리에 앉자 열차가 덜커덩 출발했다.


휴대폰 화면에 시선을 주고 있다가 멈춰 선 역을 확인하려 고개를 들었다. 아직 일곱 정거장이나 남았다. 출입구 쪽 두 번째 자리에 앉은 여자와 그때 눈이 마주쳤다. 그 여자는 줄곧 나를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몇 정거장을 지나면서 눈이 마주쳤다가 외면했다를 반복했다.


그 여자가 나를 안다면 내가 기억하는 여자도 분명해 보였다. 몇 년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까닭이었을까? 얼핏 느낌은 그 여자인 듯도 한데 영 명확하지는 않았다. 세월이 벌써 흐른 탓이었다. 그 여자는 줄곧 다른데 시선을 두었다가도 이내 새침한 표정으로 나에게 또 시선을 던졌다.


어쨌든 마침 내려야 할 역이었다. 열차가 정차하기 전에 일어나 미리 출입구 앞에 서 있었다. 환승역이라 내리는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중에 그 여자도 포함되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개찰구로 나가는 중에 그 여자는 내 바로 앞에 서 있었다. 우연이었을까? 그 여자가 맞았던 걸까?


여자는 개찰구를 빠져나가 덩그러니 서 있었다. 열차엔 일행이 없었지만 누구를 아직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여자가 거기 서 있는 걸 알았지만 쳐다보지는 않았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와 겨우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여자도 보이지 않았다.


몇 년 전에 알던 그 여자는 길에서 자길 보면 아는 체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잊어주길 그럼 바라느냐 내가 물었을 때, 그 여자는 고개를 숙인 뒤 천천히 가로저었다. 그 날 나는 그 여자를 이내 떠올렸지만 확인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 여자에 대한 생각은 좀처럼 그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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