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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만 Mar 10. 2017

에바, 하와, 젯다

그녀의 생일날


"우리가 몰랐다고 그것이 없었던 일이 되지 않으니 어제의 일을 온전히 잊고 어찌 새로운 내일을 꿈꿀 수 있겠는가..."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젯다'는 수도 '리야드'를 잇는 제2의 도시로 홍해를 옆에 끼고 있는 천혜의 무역항이자 이슬람의 두 성지 '메카'와 '알 마디나'로의 접근성이 매우 편리해 많은 이슬람 순례객들이 한 번쯤 들르게 되는 도시다.  도시의 지명인 '젯다'는 몇 가지 어원의 유래에 대한 추측이 있지만 그중 가장 유력한 것이 아랍어가 의미하는 바 '할머니'다.  할머니... 이슬람교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에서 공통으로 지목하는 우리 인류의 할머니...


그녀의 이름은 '이브'라고도 알려진 아담의 반려자 '하와'였다.


내비게이션을 켜고 아랍어로 '하와의 무덤 (مقبرة حواء)'이라고 검색하자마자 금세 지명이 하나 떴다.  차로 15분 남짓한 거리였다.  구글로 다시 검색을 하니 오랜 전승으로 전해 내려오는 하와의 묘가 바로 이 곳 젯다에 존재한다는 몇 개의 오래된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만약 아담의 갈빗뼈에서 탄생된 그 하와의 묘가 이 곳 젯다에 존재한다면 이 곳의 지명이 '할머니'라고 불리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 아닌가?


내비게이션이 지목하는 하와의 묘가 자리한 곳은 도심의 중심부였지만 다소 낙후한 곳이었다.  넓게 둘러싼 담벼락을 따라 입구를 찾아 무작정 걸었다.  3월이었지만 오후 시간의 기온은 다소 후텁지근하게 느껴졌다.  입구 옆에 자리한 자그마한 이정표에 아랍어로 '하와의 무덤'이라고 적혀 있을 뿐 별도의 안내문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건물 관리인 3명이 막 문을 잠그고 있어 황급히 다가가 안으로 입장할 수 있는지 여부를 묻자 그중 한 명이 손목시계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슬람 기도 시간이었다.  도리없이 인근의 좁은 골목을 어슬렁 대며 30여분을 보내고 있으니 어디에선가 나타 난 좀 전의 그 관리인들이 비로소 다시 문을 열고 있었다.


건물 바깥을 서성대던 몇몇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나와 함께 입장을 했다.  가운데 긴 회랑을 하나 놔두고 담벼락 안은 공동묘지였다.  이 곳 어딘가에 하와의 묘가 있다는 것인가?  묘한 기대감이 어렴풋한 실망감으로 차츰 바뀌는 순간이 이내 찾아왔다.  후텁지근한 바닷가의 날씨도 일조를 했던 것 같다.  여기저기를 천천히 걸어보다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이제 그만 돌아가야겠거니 하고 있을 때였다.


입구 쪽으로 돌아가는 중에 한 노인이 햇빛 아래 고개를 떨구고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지나치려 했으나 어딘가 거동이 불편해 보이는 노인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행색을 유심히 살폈는데 하얀색 튜브에 예배용 둥근모 자를 쓰고 있던 노인은 어림잡아도 여든 살은 족히 넘긴 듯한 나이였다.  그는 두 눈을 지그시 감은채 미동조차 않고 있었다.  발걸음이 채 떨어지지 않아 한동안 노인 곁에 서서 그의 안색을 살피고 있던 찰나에 노인의 감겨 있던 두 눈이 어느새 나를 응시하고 있는 걸 알았다.


겉으로 보이는 노인의 나이에 비해 맑은 시선이 느껴지는 것이 사뭇 낯설었지만 혹 도움이 필요한지 여부를 내가 묻자 노인은 빙긋 웃으며 양 옆으로 고개를 천천히 가로젓다가 한쪽 손을 내게 내밀었다.  자신이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뜻으로 처음 이해하였으나 내 손을 잡은 노인은 오히려 나를 자신의 옆에 앉게 했다.  잠자코 노인의 옆모습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노인은 좀처럼 나를 돌아다보지 않았다.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겨있던 노인이 침묵을 깼다.


"햇빛이 너무 좋지 않나?  계절이 또 바뀌는 듯싶네.  날마다 해는 뜨고 지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오늘이야."


 "오늘... 그래.. 바로 오늘이었지.  그녀가 처음 세상에 온 날도... " 


"내 살 중의 살 내 뼈 중의 뼈로 그녀가 세상을 향해 걸어 나온  날이었어.  밤하늘에 불꽃이 터진 듯 온 세상이 그녀의 등장으로 환해진 날이었다네."


"세상은 봄날의 언덕과 같이 밝아 보였고 산과 들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듯 나와 그녀에겐 모자람이 없는 시간이 계속되었어."


노인은 마치 연극무대에서 독백을 하듯이 혼자만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해마다 단 하루 그녀를 위해 이 곳을 찾았다네."  


"비록 이 곳 어디인가는 오래전에 잊고 말았지만 그녀에게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그녀를 떠나 혼자 세상으로 나아가야 했던 때가 있었지."


노인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해가 뉘어 기울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보였던 입장객들도 하나 둘 그 숫자가 점차 줄어드는 시간이었다.  관리인 하나가 멀찌감치에 서서 손으로 문 방향을 가리켜 이제 그만 나가야 할 시간이라는 사인을 보내고 있었다.  손목시계를 들어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을 확인했다.


노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상하리만치 목구멍까지 차 올랐던 호기심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야 겨우 그 생각을 말로 꺼내 놓을 수 있었다.


"저......... 그러면 에덴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리고 어르신이 바로 아담이신지요?"


내 우스꽝스러운 질문에도 노인은 어떤 표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에덴은 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네... 말하자면 에덴은 특정 시간을 지칭하는 것이야."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느 한 시절이 되었든 무척 좋았던 기억 하나쯤은 가지고 살지 않겠나?  그 기억이... 그 그리움이... 바로... 에덴일세."


"그것을 망각하고 사는 순간만큼은 우리가 낙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될 테지.  매일매일을 축제(عيد/에이드)를 즐기듯이 들떠서 지내게.  그러면 모든 날들이 에덴에서의 날들(عيدين/에이딘)이 될 터이니..."


"소용없는 고민과 걱정은 멀찌감치 두고 가까이 말게.  그건 뱀처럼 은밀하게 찾아와 우리가 에덴에서 지내는 시간을 방해할 뿐이지."   


"그리고 내 이름이 무엇이었든 그건 다른 이들이 나를 가리켰던 호칭일 뿐이지 않겠나?  내가 그녀를 하와라고 불러 주었듯이 말이네."  


"다만 나와 그녀의 피로 시작된 인연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지금껏 나누어지고 있는데  이 곳에서는 그 피를 '앗담(الدام )'이라고 부르더군. " 


"나와 하와 사이에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 그대가 내 옆에 앉았을 일도 없었을 것이네. "


이상한 말이었지만 노인의 목소리에는 확신과 진정성이 담겨 있었다.


여전히 그가 하는 말들은 내게 알듯 모를 듯 들려왔지만 이윽고 노인과 작별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이제 그만 나가야 할 것 같다며 손을 내밀어 그를 부축하려 했으나 노인은 조금만 더 이곳에 머물고 싶다며 내게 먼저 일어나라고 했다.  그에게 인사를 하며 돌아서는 순간 어떤 상실감 같은 감정이 잠시 온몸을 흩고 지나갔다.


입구로 혼자 걸어 나오는 길에 마주친 관리인은 입을 삐죽 대며 나 때문에 아직 문을 닫지 못했다고 잠시 불평을 해댔다.  내가 노인이 아직 안에 남았다고 하자 의아해하는 눈빛이었다.  줄곧 혼자 앉아 있지 않았느냐고 하며 팔짱을 낀 채 그가 다시 한번 뾰로통한 눈빛을 내게 던졌다.  


내가 관리인을 데리고 노인이 머물던 자리를 다시 찾았을 때 노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거 보라는 듯이 관리인은 나를 향해 어깨를 한 번 들썩했다.  어찌 된 일일까?  분명 입구는 하나뿐인데... 주변을 여기저기 둘러보아도 노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제 그만 문을 닫아야겠다며 돌아서는 관리인의 뒷모습을 지켜보다 노인과 앉았던 자리에 재차 시선을 두는 순간 그 자리에 장미꽃 한 송이가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잎이 채 시들지 않은 붉은색 장미였다.  장미 잎사귀에 손가락을 조심스레이 갖다 대자 꽃잎에서 촉촉한 물기가 느껴졌다.  


 "어쩜 그것은 노인이 자기 삶의 영원한 반려자에게 보여 준 몇 방울의 눈물과 같은 것이었을까?"


아주 오래전 아담이 하와를 묻었다.  아니 확실치는 않은 일이다.  나로서는 아담의 생각과 행적을 도저히 알 길이 없으니  


그래... 어찌 된 일이었든 아담은 어렴풋이나마 이해하고 있던 마지막 죽음의 순간이 하와의 육신에 찾아든 후 그녀를 위해 어떠한 선택이든 해야만 했으리라  


동굴 속에서 죽어가는 '캐서린'을 살리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리비아 사막을 건너야 했던 '알마시'(영화 English Patient)처럼 하와의 영혼을 다시 육신으로 되돌릴 방법을 얻기 위해


아담은 세상의 끝까지 필사적인 방황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을 수가 있으니.


3월 10일 세상에 등장한 사랑하는 그녀에게 장미꽃 대신 어줍챦은 이 글을 대신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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