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의 복지철학과 인간관

사회복지에서 맹자를 알아야 하는 이유(2)

by 오아시스

공자의 사상을 물려받고 발전시킨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주목받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바로 맹자(孟子)다. 맹자는 공자가 죽은 뒤 100년쯤 지나서 태어난 전국시대 사람이기 때문에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시대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맹자는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나 자사(子思)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맹자를 아성(亞聖)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맹자가 공자의 사상을 자신만의 형식으로 체계화하고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유가사상을 공맹(孔孟) 사상이라고 하는 것도 맹자에 대한 높은 평가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공자가 인(仁)을 재발견한 사람이라면 맹자는 의(義)를 재발견한 사람이었다.


맹자가 활동했던 전국시대는 공자가 활동했던 춘추시대보다 사회적으로 혼란이 더 심했다. 봉건 체제 내의 하극상이 매우 잦아졌고, 민중에 대한 수탈이 극에 달했다. 들판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그득하고, 살아 있는 민중들도 하나같이 굶주린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데도 지배자들은 사치와 탐욕에 빠져 침략 전쟁을 일삼았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했다. 쉰이 넘은 나이에 맹자는 이러한 난세의 한가운데서 무려 20년 동안 제후들을 만나 자신의 사상적 청사진을 전하며 사회질서 회복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제후들은 대부분 맹자의 뛰어난 말솜씨 때문에 겉으로는 받아들이는 척 했지만, 그의 말대로 실천하지는 않았다. 결국 일흔이 넘은 나이에 맹자는 고향으로 돌아와 제자들과 토론하며 저술에 매진하며 살았다. 그리고 맹자가 세상을 떠난 지 약 70년 후에 진나라가 중국 전역을 통일하면서 전국 시대는 막을 내렸다. 비록 맹자는 생전에 자신의 뜻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후대에 공자와 더불어 성인으로 추앙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약 1,500년 후인 중국 남송시대 유학자이자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는 《맹자》를 《논어》, 《대학》, 《중용》과 함께 사서(四書) 중의 한 권으로 포함했다. 맹자는 자신이 존경하던 공자와 함께 공맹(孔孟)사상으로 지금까지 후대에 정신적인 스승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의 본성

공자가 살던 시기에도 인간의 본성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철학사상의 중심 주제는 아니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은 서로 비슷한데, 습관에 의해 서로 멀어진다.”라는 말을 했을 뿐이다. 인간 본성에 대한 사유는 맹자에 이르러 철학의 중심 주제로 자리 잡았다.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태어날 때부터 원래 착하다고 했다. 이러한 성선설(性善說)에 대한 주장은 공자가 사람의 본질로 내세운 ‘사람다움’, 즉 인(仁)을 체계화 한 것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맹자는 사람의 본성이 착하다는 증거로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의 예를 들었다. 누구든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보면, 즉시 ‘저런! 저러면 안 되는데’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황급히 달려가 아이를 구하려고 하는 마음(惻隱之心측은지심)이 모든 인간이 가진 본성이라는 것이다. 맹자는 이러한 측은지심 말고도 자기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잘못을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수오지심),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辭讓之心사양지심), 옳고 그름을 가리는 마음(是非之心시비지심)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고 했다. 맹자는 이러한 마음들을 인간이 착해질 수밖에 없는 네 가지 실마리, 즉 사단(四端)’이라고 하고, 이는 인간이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으로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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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호는 사천(沙泉), 윤동주와 쇼펜하우어를 동경하는 염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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