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항산(恒産)과 항심(恒心)
맹자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혼란 그 자체였다. 제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고, 백성들은 전쟁과 수탈, 기근 속에서 고통의 나날을 살아야 했다. 국가는 백성의 삶을 보살피기보다 전쟁에 동원하여 군사력과 노동력으로 활용했다. 국가를 통치하는데 덕(德)보다 힘을 앞세웠기 때문에 정치의 목적은 국가의 안녕이 아니라 세력을 키우기 위한 정복에 가까웠다. 그래서 맹자는 이러한 전국시대의 혼란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을 왕도정치의 실현이라고 보았다. 왕도정치는 덕으로 하는 정치이고, 반대로 힘으로 하는 정치는 패도(覇道)정치이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모든 사람이 착한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 본성을 잘 기르면 모두 성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모든 임금은 어진 마음의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잘 기르면 당연히 왕도정치도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어느 날 제선왕이 한 신하가 소를 끌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신하에게 물었다.
제선왕: “소를 어디로 끌고 가느냐?”
신하: “흔종(제사)에 쓰려고 합니다.”
제선왕: “그 소를 놓아주어라. 부들부들 떨면서 죄 없이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하겠다.”
신하: “그러면 흔종 의식을 폐지할까요?”
제선왕: “어찌 흔종을 폐지할 수 있겠느냐? 소 대신 양으로 바꾸어라.”
이 이야기를 들은 맹자가 제선왕에게 말했다.
맹자: “왕께서 부들부들 떨면서 사지로 끌려가는 소를 차마 볼 수 없어서 양으로 바꾸라 하셨습니다. 그런 마음씨라면 충분히 천하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큰 재물을 작은 재물로 바꾼 것을 두고)백성들이 왕을 인색하다고 하더라도 언짢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이 곧 인(仁)의 실천입니다. 왕께서는 소는 보았으나 양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맹자》「양혜왕」편
맹자는 제선왕이 재물로 끌려가는 소를 보고 안타까워했던 것을 두고 그것이 바로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며 인간의 본성이라고 했다. 그는 통차지가 불인인지심과 같은 연민의 마음으로 백성들을 대한다면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소를 불쌍히 여겨 대신 양을 재물로 삼은 것은 왕이 소만 보고 양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는 왕이 양도 보았다면 똑같이 불쌍히 여겼으리라 믿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불인인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맹자가 제선왕이 불쌍한 짐승을 보고 연민의 마음을 가졌던 것처럼 백성들에게도 같은 마음으로 대하라는 깨우침을 주고 있는 것이다.
맹자는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 즉,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는 정치를 일러 왕도(王道)라 했다. 왕도라는 말은 《서경(書經)》에서 가장 먼저 쓰였다. 《서경》에 보면 “치우침이 없고 편들지 않으면 왕도는 넓고 유원(悠遠)할 것이고, 편들지 않고 치우침이 없다면 왕도는 평이하고 평탄할 것이며, 뒤집거나 기울이지 않는다면 왕도는 바르고 곧다.”는 말이 나온다. 원래 왕도는 ‘중용의 정치’를 뜻했다. 그런데 이러한 왕도를 ‘덕으로 인(仁)을 실행하는 정치’로 새롭게 정의한 이가 바로 맹자다. 맹자가 사단(四端)을 말하고 그것을 정치로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은 통치자가 불인인지심을 통해 현실 정치를 펼쳐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은 본디 선한 마음을 품고 태어났으니, 왕의 자리에 오른 자는 그 마음을 백성을 위한 정치로 확충하라고 재촉한 것이다.
항산(恒産)과 항심(恒心)
왕도정치 이론은 성선설에 바탕을 두고, 인간의 본성과 삶을 존중하는 덕의 정치이다. 맹자는 인간이 원래 선한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에 왕도정치는 도덕의 근원인 하늘의 뜻을 실현하는 일인 동시에 하늘에서 받은 인간의 착한 본성을 실현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맹자는 이러한 착한 본성이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고 보았다. 굶주리고, 불안하고, 억압받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도덕적일 수만은 없다고 말했다. 《맹자》에 기록된 당시 상황을 보면 패도정치가 얼마나 백성의 삶을 비참하게 만드는지 알 수 있다. 농사철에도 전쟁을 일삼아서 밭 갈고 김맬 때를 놓쳐 부모 봉양도 못하게 했다. 그 결과 부모는 추위에 떨고 굶주리며, 형제와 처자식은 헤어지고 흩어져야 했다. 흉년이라도 들면 노약자는 굶어 죽어 도랑과 골짜기에 뒹굴고, 장정은 천지사방으로 흩어졌다. 땅을 얻으려고 싸우다가 들판에 시체가 가득했고 성을 빼앗으려 싸우다 성안이 죽은 사람들로 가득했다. 땅을 차지 하려다가 사람 고기를 씹는 꼴이었다. 전국시대는 바야흐로 패도를 통해 군주의 야욕을 실현할 수 있는 야만의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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