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도정치 속 사회복지철학

(4) 호연지기(浩然之氣)

by 오아시스

맹자는 권력자 앞에서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인(仁)과 의(義)의 정신에 입각해 혁명을 정당화한 사람이었다. 아무리 군주라 할지라도 왕도를 저버리고 패도에 빠질 때 그런 왕을 갈아치울 수 있다고 서슴없이 말했던 것이다. 요즘 같은 시대라면 모를까 2300년 전 서슬 퍼런 권력 앞에서 감히 ‘혁명’이란 말을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목이 달아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맹자는 절대 권력자 앞에서 민심을 잃으면 권력을 잃을 수 있다고 당당히 말한다. 또한 패도에 빠진 왕을 일개 사내라 불렀을 뿐만 아니라, 그런 왕은 신하가 죽여도 괜찮다고 말하기를 겁내지 않았다. 과연 그의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도대체 맹자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이런 발언을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백성이 귀하고 사직은 그다음이며 임금은 가장 가볍다(民貴君經민귀군경)는 평소 맹자의 소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유학의 주요 덕목으로서 지(知)·인(仁)·용(勇) 3주덕을 내세웠다. 훗날 공자의 철학을 이어받은 맹자는 사단(四端)에 바탕을 둔 인(仁)·의(義)·예(禮)·지(智) 4주덕을 제시했다. 공자는 3주덕을 규제하기 위해 언제나 의(義)와 예(禮)를 강조했고, 맹자 역시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내세워 4주덕에서 빠진 용(勇)의 중요성을 잊지 않았다. 따라서 공맹의 유교적 전통사상에 있어서 인·의·예·지 4주덕과 더불어 용(勇)은 유교적 주요 덕목이라 할 수 있다. 공자는 “사람다운 사람은 반드시 용기가 있지만, 용기 있는 사람이 반드시 사람다운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사람다운 사람의 용기는 참용기라고 할 수 있다. 서양속담에 “진정한 용기란, 아니라고 말해야 할 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우리는 분명히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이라면 정말 그 일로 해서 피해를 입거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더라도, 아니라고 해야 할 자리이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일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용(勇)은 두려울 게 없는 것으로서 진정한 용기는 바른 길을 당당히 걸어가기에 거리낌이 없다는 뜻이다. 공자는 의(義)와 용(勇)을 관련지어 설명한다. 《논어》에는 “이득을 보면 반드시 그것이 정의로운 것인지를 먼저 생각한다.(見利思義견리사의)”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막상 사람이 이득을 목전에 두고서 그것을 바로 취하지 않고 먼저 정의를 따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득을 앞에 두고 정의를 생각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정의를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용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맹자의 4주덕(인·의·예·지)에는 공자의 3주덕(지·인·용)에 나온 용(勇)의 덕이 빠져 있다. 그러나 맹자는 ‘용’의 덕을 소홀히 한 것이 아니고 호연지기와 관련해서 도덕적 용기를 보다 특별히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맹자의 사단(四端)은 인의예지(仁義禮智)를 도덕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실마리이며, 수양을 통해 내적인 힘이 충만한 상태를 가리켜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칭하였다.

공손추가 맹자에게 물었다. “무엇을 호연지기(浩然之氣)라 합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말하기 어렵다. 그 기(氣)의 양상은 지극히 크고 지극히 굳세니, 곧음으로써 잘 길러서(以直養이직양) 손상되지 않으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게 된다. 그 기운의 양상은 의(義)와 도(道)에 짝이 되는 것이니 이것(義의와 道도)이 없으면 호연지기가 굶주리게 된다. 호연지기는 의(義)가 모여서(集義집의) 생겨나는 것이다. 의(義)는 밖에서 엄습하여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행한 것이 마음에 흡족하지 않으면 호연지기가 굶주리게 된다. -《맹자》「공손추」편

맹자가 제자 공손추에게 설명한 내용을 보면 호연지기(浩然之氣)는 수양을 통한 도덕적 완성이며 마음에 거리낌이 없고, 충만한 행복을 느끼게 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맹자는 호연지기를 기르는 방법으로 곧은 마음으로써 기르고, 의(義)를 축적하는 두 가지를 제시하였다. 곧은 마음으로 호연지기를 기른다는 것은 마음에 거리낌이 없이 스스로 만족스러운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의를 축적한다는 것은 의를 지속적으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즉, 호연지기는 의에 합당한 행위를 반복적으로 실천할 때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는 호연지기가 인식이나 신념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실천의 축적에서 발생하는 내면적 힘임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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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사, 호는 사천(沙泉), 윤동주와 쇼펜하우어를 동경하는 염세주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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