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사무실로 되살아 난 일본의 미나미 마을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은 태백산맥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낙동강의 젖줄인 위천(渭川)이 마을 앞을 가로질러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한적한 산골마을이었다. 여름이면 또래 친구들과 함께 개울가에 나가 물고기도 잡고 물장구도 치다가 배가 고프면 지천에 널린 산딸기며 이름 모를 열매들을 따먹다보면 하루가 훌쩍 지나곤 했었다. 벌써 30년도 훌쩍 넘게 지난 이야기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동네에는 제법 어린 아이들이 많아 마을에 생기가 돌았었다.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근처에 수력발전소가 건설되면서 마을은 수몰되고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지 않아서 우리 집 삼부자의 모교인 초등학교가 폐교되더니, 급기야 얼마 전에는 읍내에 하나 있던 중학교마저도 폐교됐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 또한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을 하고 있는 몸이라 가끔씩 고향집을 찾아가 마음의 안식을 얻고 싶어진다. 비록 지금의 고향은 어릴 적 뛰어놀던 동네는 아니지만(-댐이 건설되면서 마을 전체가 산 중턱으로 이주를 했다.-) 그래도 고향에 가야면 느낄 수 있는 따뜻하고 포근한 감정이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 드는 것도 잠시였다. 언제부턴가 (이주한)마을에는 하나둘씩 빈집이 늘어났고, 아이들이 뛰어놀아야 할 골목길은 이제는 스산한 기운마저 감돈다. 날이 갈수록 나의 유년시절 추억이 점점 눈앞에서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다. 도대체 지금 농촌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이상은 농촌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의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점점 도시로 떠났고, 현재는 농촌인구가 전체인구의 20%도 넘지 못하고 있다. 농촌의 고령화 현상도 매년 기록을 갱신중이다. 2015년 이미 농가의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40%를 뛰어 넘었고, 그마저도 20∼30년 후에는 80%가 넘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2040년에는 농촌인구비율이 8%대로 곤두박질 칠 것이라고 하니 농촌붕괴라는 재앙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의 인구 고령화 문제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먼저 시작됐다. 현재 일본의 농촌지역 대부분도 저출산과 고령화로 심각한 인구감소에 고민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최근 사라질 위기에 놓였던 일본의 한 시골마을에 청년들이 다시 몰려들면서 마을이 되살아나고 있다고 한다. 산과 바다가 잘 어우러진 도쿠시마현 미나미마을 이야기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폐점한 상점들이 즐비했던 미나미마을에 한 IT기업이 위성사무실(지점)을 열면서 긴 가뭄에 단비처럼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네트워크 기반의 업무를 하는 IT기업은 사무실 장소가 문제가 될 것이 없어 본사와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에 위성사무실을 만들어도 운영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더군다나 이 IT회사는 회사업무와 개인의 취미 활동, 둘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맡은 업무가 끝나면 농사를 짓고 싶은 직원은 농사를 짓게 하고 서핑을 즐기고 싶은 직원은 서핑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러자 도시에서 늘 구인난을 겪던 이 회사에 지원자가 쇄도했고, 얼마 가지 않아 도쿄에 있던 본사가 농촌으로 옮겨지는 역전현상까지 나타났다. 요즘 이슈화되고 있는 스마트워크를 도시가 아닌 농촌에서 실제로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 회사의 성공소식이 전해지면서 도시에 있던 다른 IT기업들도 농촌에 위성사무실을 만들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IT기업뿐만 아니라 광고회사나 고객상담 업무를 하는 회사들도 속속 자리를 잡으면서 미나미마을의 상가거리에는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젊은이들로 인해 죽어가던 농촌마을이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과 비슷한 농촌문제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는 어떨까? 얼마 전 끝난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화재의 중심이 된 여자컬링 대표팀과 함께 유명세를 탄 곳이 바로 그녀들의 고향인 경북 의성군이다. 평소에는 잘 알려져지지 않았지만 올림픽을 계기로 지역특산품인 마늘도 함께 유명해졌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의성군이 10년 안에 소멸될 위기에 있다는 소식에 국민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의성군은 인구 5만 3000명의 소도시로 10년 전에 비해 인구가 30%이상 감소했고, 노인인구비율은 39.2%로 전남 고흥군과 함께 1,2위를 다투고 있는 지역이다. 올림픽의 여파로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리자 의성군은 부랴부랴 인구증가대책회의를 열고 전입지원금과 결혼장려금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컬링학교를 만들자’는 제안도 나왔다. 결국에는 올 해 10월까지 ‘출산통합지원센터’가 전국 최초로 의성군에 설립된다고 한다. 국가대표 갈릭소녀들 덕분에 생긴 올림픽의 또 다른 성과라고 볼 수 있겠지만 내놓은 대책치곤 미봉책인 것 같고 왠지 아마추어 느낌이다.
지방소멸의 담론을 처음으로 제기한 사람은 일본의 정치인 [마스다 히로야]다. 2014년 ‘지방소멸’이라는 책에서 마스다는 지방소멸을 막기 위해서 지방에 중핵도시(Core City:특례도시)를 만들어 인구 유출을 막고 사람들을 다시 찾아오게 만들자고 제안했다. 중핵도시를 만들려면 명문대나 기업이 있던지 무언가 매력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IT기업들이 농촌지역에 위성사무실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스마트워크를 실현하고 있는 사례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무언가 사회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해결책으로 건물을 자꾸 짓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대조적이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농촌재생정책에도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 ‘제주도 한 달 살이’가 유행인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제주도에 명문대나 기업의 일자리가 있어서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소확행’이 삶의 목표인 요즘 젊은이들에게 제주도는 분명 매력이 있는 곳임에 틀림없다. 농촌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도시보다 부족한 약간의 정주여건만 개선한다면 농촌은 언제든 다시 찾고 싶은 곳이 된다.
인류의 시작은 농촌에서 비롯되었다. 과학이 발전하고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불변의 진리다. 더 늦기 전에 우리의 농촌을 살리자.
... 사라져버린 고향집이 그리운... 알쓸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