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뿌리 공동체와 지역사회복지
2019년 2월 1일. 스마트복지관 사무실을 마을회관(제주시 노형동 정존마을회관)으로 이전했다. 시범사업을 시작한 지 3년여 만에 일이다. 그동안에는 스마트복지관 사무실을 상가건물에 임대해서 쓰고 있었다. 그래서 항간에는 건물 없는 복지관이 매월 비싼 임대료를 내면서 운영하는 것이 과연 사업취지에 맞느냐는 볼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시범사업을 운영하는 동안 나 스스로도 그 부분이 항상 마음에 짐이었다. 구태여 변명을 늘어놓자면 시범사업을 시작할 당시만 해도 전례 없는 사업에 대한 생경함과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좌초될 뻔한 위기도 여러 번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사업은 시작됐지만 당장 일을 할 수 있는 사무실이 문제였다. 스마트복지관은 청사건물을 짓지 않고 지역의 유휴시설을 활용해서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핵심인데 어느 날 뜬금없이 나타난 듣보잡(?) 복지관에게 주민들이 쉽사리 공간을 내어줄 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등에 떨어진 불은 꺼야했기에 급한 대로 임시로 사무실을 임대해서 쓰기로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어려운 상황에서도 끝까지 위탁기관을 믿고 행정의 유연함을 보여준 당시 제주도청 담당 공무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렇게 3년 가까이 셋방살이를 하면서 지역주민과 소통하며 신뢰를 쌓아온 덕분에 드디어 (정존)마을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마을회관에 들어올 수 있었다. 물론 무상임대다. 아니 ‘임대’라기보다는 ‘공유’라는 표현이 맞겠다. 이제는 마을주민들이 옛날부터 사용해 오던 공간을 젊은 사회복지사들과 공유하며 함께 살게 됐다.
마을로 간 사회복지사, 그리고 변화
비록 먼 길을 돌아서 온 듯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스마트복지관은 이제야 제자리를 찾은 듯하다. 단순히 물리적 공간만 이동했을 뿐인데 사회복지사가 복지관이 아닌 마을로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여러 변화 중에 가장 눈에 띠는 변화는 주민들이 사회복지사를 알아보게 됐다는 것이다. 이전에는 사회복지사가 마을을 돌아다녀도 알아보기는커녕 평소에 사회복지란 말도 생소해 하던 주민들이 사회복지사들이 마을에 상주하면서부터 점점 서로를 알아보고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인사를 하는 게 별거냐 싶지만, 모든 관계의 시작은 서로 인사를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제는 주민들이 사회복지사가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게 됐고, 또 스마트복지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마을주민과 사회복지사가 서로를 알아본 후로 이어진 변화는 주민들이 스스로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한 번은 마을주민이 복지관(마을회관)에 찾아와 층간소음에 대한 고민을 상담한 적이 있다. ‘이런 일까지 사회복지사가 해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생소한 문제였지만, 곧바로 그 주민과 함께 집으로 찾아가 상황을 알아보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 보기로 했다. 또 얼마 전에는 출근길에 만난 한 할머니가 나를 붙잡고 고장이 난 핸드폰을 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한번 봐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 분은 한 시간 전부터 그 곳에서 내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했다. 얼핏 사소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런 일들은 사회복지사로 살아오면서 예전에는 없었던 아주 신선한 경험이었다. 이 또한 사회복지사가 마을에 살다 보니 생긴 변화 중에 하나다.
바다목장과 공동체, 그리고 사회복지
새삼스러운 일이지만 사회복지사로 살아온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 동안 내가 해왔던 지역사회복지는 무엇인가?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것도 변화라면 변화라고 할 수 있겠다.) 복지관이 마을로 오고 나서 사소한 변화들을 겪으면서 가슴이 뜨거워지고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들이 스쳐간다. 10년 만에 찾아온 복지 사춘기(?)인가 싶다. 불연 듯 지금까지 내가 해 왔던 사회복지는 주민들을 상대로 낚시질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슬픈 자괴감이 든다. 나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한 번도 물속으로 들어가 본적이 없었다. 그 동안 나는 사회복지라는 낚싯대를 던져놓고 소식이 없으면 미끼(프로그램)를 갈아 끼워도 보고, 아니다 싶으면 포인트(지역사회)를 옮겨가며 물고기가 스스로 미끼를 물기만을 기다린 것은 아닐까. 그러다 사회가 변화하고 기술이 발달하면서 물고기를 잡는 데는 낚시보다 그물(네트워크)을 활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고 여럿이 모여 그물망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그물을 사용해도 어획량(?)이 늘지 않자 최근에는 아예 국가가 나서서 커다란 배에다가 그물을 걸어서 바닥까지 끌고 다니려 하는 모양새다. 이러다가는 나 같은 민간 낚시꾼들의 설 자리는 점점 사라지게 될까 걱정이다. 사회복지사로서 스스로 바라보는 현장의 모습이 씁쓸하다.
지난 10년 동안 내가 해왔던 사회복지가 갯바위 낚시였다면 스마트복지관에서 다시 시작한 사회복지는 바다목장*에 비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회복지사가 뭍에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직접 물속에 들어와 보니 비로소 자연 생태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사는 생태계를 우리는 공동체(community)라고 말한다. 전통적으로 공동체는 마을을 형성하면서 발전되었다. 우리가 거주하고 있는 마을을 영어로는 ‘village’ 또는 ‘town’이라고 하고, 한자(漢字)로는 ‘동리(洞里)’로 쓴다. ‘동리(洞里)’의 뜻은 ‘같은 우물물을 마시며 전답에서 농사를 지으며 함께 사는 마을’을 뜻한다. 우리만의 전통 지리학적 관점에서 마을은 큰길, 어귓길, 샛길, 안길, 골목길(제주도에서는 올레길) 등 길의 사용 여부에 따라 길의 의미를 구성하고, 그 길과 길이 연결된 하나의 공간으로 마을을 이해해 왔다. 마을을 하나의 소우주로 보고 마을과 사람 그리고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완결적 공동체로 이해해 왔다. 풍수지리의 관점에서 본 마을의 의미 또한 마을 구성원 간의 호혜적 관계가 형성된 사람 중심의 공동체, 공간과 공간이 연결된 관계의 공간공동체 그리고 자연에 순응하여 더불어 사는 생명지역공동체의 특징을 지닌다. 이렇듯 우리가 사는 마을은 물리적 환경보다 사람, 자연 그리고 공간이 상호 공존한다는 의미가 크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이러한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마을만들기’라는 새로운 지역사회 복지정책이 핵심 이슈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마을만들기와 관련된 지역공동체가 전통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는 잘 모르는 듯하다. [역사 속의 도시]에서 루이스 멈포드는 공간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랜 역사적 과정으로부터 공간을 이해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한 기계적 모방에 불과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어느 날 동네는 사라지고 어디에서 사느냐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은 대기업이 공급한 아파트 이름이 대신한 지 오래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공동체)의 가치를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 같은 사회복지사들은 이러한 공동체를 디자인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도 불과 몇 달 전 마을로 들어와 살게 되면서 새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지역사회에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아직까지도 전통적으로 전해 내려오는 자연마을이 존재하고 있었다. 우리가 지도상으로만 알고 있던 동네(행정동)는 실제 주민공동체와는 거리가 멀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러한 자연마을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직접 살아보지 않고서는 그 가치와 고유문화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진정한 지역사회 공동체의 가치는 정부의 제도와 정책에 의하여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전통과 일상을 통하여 나타나는 다양한 생활양식에 의해 각자의 공동체적 인식을 도모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규범과 조직이 구성되면서 형성되는 것이 풀뿌리 지역사회 공동체이며, 이것이 진정한 지역자치를 이끌어 가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닻은 올렸지만
출항하지 못하는 스마트복지호
최근 또다시 스마트복지관의 존립여부를 두고 온갖 추측과 주장들이 난무하고 있다. 스마트복지관 사업의 첫번째 논란은 사업명칭에 ‘복지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란)다. 사회복지관의 정체성은 사회복지사업법 제2조(정의)에 잘 나타나 있다. 법의 정의에서 ‘시설’만 제외하면 스마트복지관도 사회복지관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문제는 ‘시설’이라는 단어인데 이 때문에 스마트복지관의 명칭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이라면 뭐라고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올해부터는 스마트복지관도 ‘복지관’대신 ‘센터’라고 명칭을 바꿨다. 하지만 우려스러운 것은 ‘스마트커뮤니티센터’라는 이름을 달고 또 다른 전달체계가 등장했을 때 그동안 계속 되어온 사회복지관의 정체성 혼란을 가중시킬까 걱정이 될 뿐이다. 외모를 지킨다고 해서 정체성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외모를 바꾼다고 해서 정체성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복지관이면 어떻고, 센터면 어떻겠나. 이제 명칭에 대한 논란은 그만했으면 좋겠다. 사업명칭이 별로면 바꾸면 그만이다. 좀 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스마트복지관 사업이 사회복지관의 역할수행에 상호보완적으로 발전방향을 논의했으면 한다.
두번째 논란은 스마트복지관 설치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제주도는 지난 3년동안 아무런 근거도 없는 사업을 추진한 꼴이다. 그 동안 새로운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제도마련 노력이 미흡했다는 것은 공감한다. 그렇다고해서 전례가 없는 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미리 법부터 만드는 것도 어리석은 발상이다. 스마트복지관 사업도 법적인 제도마련에 앞서 시범적으로 추진해보자는 취지였다(아마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한다). 현재 정부도 ‘커뮤니티 케어’정책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지 않은가. 더군다나 올해 제주도는 아무런 근거도 없는 정책 선도사업에 양 행정시가 모두 선정되는 쾌거(?)를 이루었다. 스마트복지관과 달리 정부에서 직접 나서는 '스마트한 복지'는 얼마나 다를지 앞으로 2년이 기대가 된다. 스마트복지관 사업은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다. 3년도 채 되지 않은 사업의 성과를 가지고 법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도 우습다. 스마트복지관의 사업의 목적과 취지는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더 신중해야 한다.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부의 정책과 기존의 전달체계 안에서 이 사안이 논의되고 지속가능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복지관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별로 나아진 것은 없다. 새로운 정책에 대한 확신과 추진의지가 없이 논쟁만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또 제대로 알아보려는 노력도 없는 듯하다. 스마트복지관은 풍문으로 들어서는 절대 그 가치를 알 수 없다. 나도 제주도에 내려와 마을에 살면서 복지를 하기 전에는 몰랐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다. 탁상행정도 문제지만 탁상복지도 문제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복지관이, 그리고 사회복지사가 마을로 나와 보니 이제야 깨달았다. 사회복지의 최종 목적지는 결국 마을에 사는 이웃주민이란 것을.
...알쓸복잡
*바다목장: 바닷속에 물고기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물고기를 양식하는 어업을 말한다. 청정 해역에 인공 어초를 설치하고 먹이를 공급하여 물고기를 기른 후 자연스럽게 어획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방법
※ 내용의 일부는 "김성균, 이창언(2015), 『함께 만드는 마을, 함께 누리는 삶』"에서 발췌요약하였습니다.
※ 일러스트 : 날리야(http://naliy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