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관을 바라보는 사회복지사의 시선
2020년 4월 1일, 우리나라 소방관들이 전부 국가직 공무원으로 일괄 전환됐다. 코흘리개 시절에 누구나 한번쯤 장래희망으로 꿈꿔봤을 그 소방관이 다 같은 소방관은 아니었나 보다. 우리나라 소방관(소방공무원)들은 1973년 지방공무원법이 제정된이래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되어 있었다. 전체 소방관의 1.3%인 600여명 정도만 국가직이고 나머지 98.7%는 모두 지방직 소방관들이었다. 그동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소방관이 원래 국가직인 줄로만 알았지 알고보니 주변에서 자주 보는 소방관들은 전부 지방직 소방공무원이었던 것이다.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을 놓고 일각에서는 소방관이 불을 끄는데 국가직이냐 지방직이냐가 그렇게 중요한가에 대해 회의심을 갖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소방관들 사이에서는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중요한 무언가가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 글을 쓸려고 관련 자료를 찾다보니 우리나라 소방관들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한편으로는 나 같은 사회복지사들의 현실과 너무 많이 닮아 있어서 더 놀랐다. 최근에 때마침 사회서비스원의 설립을 두고 사회복지 내에서 공공성 논란과 사회복지사를 포함한 사회서비스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관한 논란이 한창인데, 지방직 공무원이던 소방관들이 어떻게 국가직으로 전환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살펴보면 사회복지 논란의 실마리를 어느정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남은 글을 써내려 간다.
소방관들의 릴레이 1인 시위
2014년 6월 서울 광화문 앞, 한여름 땡볕아래에서 가뜩이나 무더운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릴레이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그들의 요구사항은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 지난 50년 가까이 신분을 떠나 묵묵히 소임을 다해오던 소방관들이 뜬금없이 '국가직 전환'을 외치며 거리로 뛰쳐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동안에는 소소하게 문제제기에 그쳤던 것이 그해 4월,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면서 소방관들의 처우에 관한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르기 시작했다. 세월호 참사와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 무슨 상관이 있겠나 싶지만, 속절없이 가라앉는 세월호를 TV로만 지켜보면서 분노하고 안타까워 했던 것은 일반 국민들만이 아니었다. 사고 소식을 접하고 현장으로 곧장 출동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던 소방관들의 답답한 심정은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국가적인 재난이 발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소방관들이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아닌 우리나라 소방조직의 복잡한 지휘체계 때문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우리나라 소방관은 소방공무원법에 따라 국가직과 지방직 소방관으로 구분되는데, 국가직 소방관은 행정안전부 산하 소방청의 통제를 받고, 지방직 소방관은 각 지자체별 소방본부와 소방서의 통제를 받는다. 여기서 문제는 소방본부와 소방서는 국가 소방청의 소속기관이 아니라 직제상 지방자치단체 소속기관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재난이 발생했을 때 대응에 나서는 소방관들은 모두 지방직 소방관들인데, 이들은 시도지사는 물론 상황에 따라 소방청의 지휘를 동시에 받다보니 우왕좌왕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세월호 사건 이후 수색 지원 활동을 하다가 귀환 도중 헬기가 추락해 소방대원 5명이 순직한 사고를 계기로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여론이 더욱 거세지기도 했다.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과 여론을 감안하면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이 금방이라도 이루어졌을 법도 한데 그게 당시 분위기는 그리 녹록하진 않았다. 내가 소방관이 아니라서 복잡한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에도 분명 정치적인 이유가 작용했던 것 같다. 국민의 80%가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찬성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집권여당의 핵심 정책의 하나라는 이유로 야당에서는 "지방분권의 흐름에 역행한다"거나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말도 안되는 이유로 정쟁화시키거나 뭉쓰기 일쑤였다. 여당 일각에서도 "소방업무가 국민과 가장 밀접한 업무이기에 지방공무원으로 남아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황당한 지적을 하기도 해서 소방관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일도 있었다.
그렇게 본질은 외면하고 정치적으로 구설수로만 오르내리다 무산될 위기에 처한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슈가 7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왜 갑자기 진행될 수 것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2019년 4월에 있었던 강원도 산불 재난사고 때문이었다. 당시 대규모로 번저가는 산불진화를 위해 소방청은 제주도를 제외한 16개 시도에서 소방차 872대와 소방관 3251명을 동원해 신속하게 재난을 막을 수 있었다. 해남 땅끝마을의 소방차에서부터 전국의 소방차가 강원도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밤새 고속도로를 줄지어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국민들은 감동했다. 이윽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소방관 국가직 전환 청원이 다시 등장했고, 불과 4일 만에 20만 명이 동참했다. 불과 7년전만 해도 소방관련 국민청원 동참은 1만 명을 넘기기가 힘들었는데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국가가 응답했다. 거기에는 더이상 정치적인 이해관계가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소방관과 사회복지사의 닮은 꼴
소방관들이 지방직이 싫다거나 신분상승을 위해 국가직이 되고 싶어서 땡볕에 나가 1인 시위를 한 것이 아니다. 소방관들의 열악한 근무환경과 처우는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것보다 현실은 더 심각하다. 얼마전 한 조사에 따르면 불을 끄다 순직한 소방관보다 우울증이나 신변 비관 등으로 자살한 소방관이 더 많다고 한다. 이러한 결과만 보더라도 소방관들의 근무환경이 어느정도 일지 짐작이 간다. 소방관들은 인력부족(─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으로 주당 평균 근무시간(2016년 기준)은 3교대 기준으로 50시간을 넘긴다고 한다. 처우 역시 10년 거의 나아지지 않았고, 위험수당과 화재진화수당은 한 달에 1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소방장비는 열악하고 지역마다 천차만별인데 그마저도 보급이 제때 이루어지지 않아서 소방관들이 사비로 구입해서 현장으로 출동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타인의 안전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화염 속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에게 주는 대가치고는 너무 인색하다 못해 야박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소방관들의 상황이 많이 안타깝긴 하지만 나는 이 모든 사실이 그다지 놀랍지가 않다. 나 같은 처지에 있는 사회복지사들도 소방관들이 처한 현실과 별반 다를게 없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의 처우에 관한 문제도 사실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느때보다도 돌봄서비스(아동, 장애인, 노인 등)의 필요성이 증대되고 있는 요즘에는 사회복지사의 인력난이 더 심각해졌다. 일손이 부족해지면 당연히 개인이 해야 할 업무는 가중될 수밖에 없다. 2018년 통계에 따르면, 생활시설 사회복지사들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전체의 38%가 50시간 이상 근무를 하고, 60시간 이상 근무하는 사회복지사도 17.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복지사의 처우는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지자체마다 제각각이고 임금격차도 크다. 사회복지사가 공무원으로 오해를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공무원처럼 확실한 신분이 보장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공무원처럼 각종 근무수당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사회복지사도 소방관처럼 일을 하면서 신체적, 정서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거기다 직장내 갑질과 괴롭힘 등 인권침해도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소방관은 지방직이든 국가직이든 어쨋든 공무원이기 때문에 근무중에 발생하는 사고나 질병이 발생하면 국가로부터 공상 또는 순직으로 인정받으면(─물론 쉽지 않다고 하지만─) 배상이라도 받을 수 있는 희망이라도 있지만, 사회복지사는 일하다 사고라도 당하면 어디 하나 기댈 곳조차 없는 실정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 이유는?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대고, 생쥐도 구석에 몰리면 고양이를 물 수도 있다. 그래서 일까? 지금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를 하던 소방관, 그리고 사회복지사들이 오랜 시간 처우개선을 끈질기게 요구해왔다. 덕분에 최근에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씩 찾아가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것은 소방관과 사회복지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 또한 많이 닮아있다는 점이다. 소방관은 1973년 지방공무원법 제정이래 47년 만인 2020년에 전면적으로 국가직으로 일괄 전환됐다. 사회복지사도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70년 사회복지사업법 제정이래 40년 만인 2011년 「사회복지사 등의 처우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고, 그게 별로 시원찮았던지 2020년에 사회복지사들의 적정 인건비 등의 내용을 추가해서 대대적으로 다시 개정했다. 법이 개정된 것까지 치면 소방관들보다 사회복지사들의 처우개선이 더 오래 걸린 셈이다.
그렇다고 소방관이나 사회복지사들의 처우개선이 이걸로 끝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건 단지 시작에 불과했다. 중요한 것은 시작이 아니라 이러한 결과를 가져오기까지 과정이 참 험난했다는 점이다.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지난 2014년이었다. 그런데 그게 성사되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을까? 2011년 일명 사회복지사법이 제정되고 나서 사회복지사들이 시행령을 현실에 맞게 개정해달라고 요구한지 거의 10년만에 겨우겨우 받아들여졌다. 그 뿐만이 아니다. 최근 사회복지 공공성 확대와 돌봄관련 노동자(유아교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등)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일명 사회서비스원법은 2017년 법이 처음 발의됐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야당 국회의원들의 끈질긴 반대로 법의 취지를 무색하게 할 만큼 핵심은 다 떼내 버리고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겨우 통과됐다. 왜 그랬을까? 국민의 안전을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일하는 소방관들의 처우개선을 하는 게 무엇이 그리 못마땅했던 걸까? 사회적 약자를 돕고 국민의 복지증진을 위해 일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일자리 안정과 처우를 개선하는게 도대체 무엇이 문제란 말인가? 반대하는 이유를 글로 쓰기에는 책을 한권 펴낼 수 있을 정도로 많지만 심증만 있고 물증은 없는 터라 마냥 씁쓸하기만 하다. 핵심은 두 건 모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했다는 점이다. 정작 국민의 안전과 복지는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반대,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반대의 중심에는 역시 정치가 있었다.
사회적 가치와 정치, 그리고 사회복지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David Easton, 1917~2014)은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귄위적 분배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가치란 공익과 사익, 경제적 이익, 자유, 생존권 등 다양한 형태의 이익 혹은 권리를 의미한다. 그리고 권위란, 권력에 다수의 지지가 더해져 정당화된 권력 즉, 정치인들의 권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서 다수의 지지를 얻은 개인(정치인) 또는 집단(단체, 정당 등 이익집단)이 최대한 많은 판돈(사회적 가치 또는 이익)을 얻는 카드게임이 바로 정치란 말이다.(*출처: 네이버 나무위키)
공익이 아닌 개인의 이익과 자유, 생존권을 사회적인 가치로 볼 수 있을지 언뜻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건 사회의 개념(범위)을 어디까지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혼자만으로는 사회가 될 수는 없지만, 개인이 속한 집단은 하나의 사회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러한 개인의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얼핏 보면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도 사회적 가치 중에 하나라고 주장할 수는 있겠다. 물론 그러한 이유로 집단에 속한 개인들의 지지을 얻어 정치를 시작한 이들도 꽤 많을테니 말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특정 집단을 위한 정치는 공익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는 그게 잘 안되는 모양이다. 겉으로는 국민(개인)의 안전과 복지 증진을 주장하면서 속으로는 자신 또는 자신을 지지해 준 개인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정치인들은 항상 그걸 공익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건 정말 낯뜨거울 정도로 새빨간 거짓말이다. 공익을 위한 정치를 하는데 일선에서 일하는 소방관이나 사회복지사의 처우개선을 반대할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소방관이나 사회복지사 등 공공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아무리 큰 혜택을 준다고 해도 국민들의 공익을 해칠 일은 없다.
최근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에 관해 논란이 참 많다. 내가 일전에 「사회복지 공공성 논란-(1)편(https://brunch.co.kr/@songjanghee/73)」에서 사회서비스를 사회복지서비스에 한정해서 설명했던 것 같은데, 좀 더 넓게 보면 안전(소방)과 치안(경찰)서비스도 사회서비스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 모두가 공공의 서비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들은 소방관이나 경찰관이 하는 일은 공공의 서비스라고 생각하지만 사회복지사의 일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게 현실이다. 아마 소방관과 경찰관은 공무원 신분인데 사회복지사는 아니라서 그런 모양이다. 그런데 내가 20년 가까이 사회복지사의 일을 하고 있지만, 나를 공무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사회복지관이나 요양원도 공공기관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우리나라 사회복지는 민간의 서비스로 인식되어 왔다. 사회복지는 원래 공공의 서비스이고, 그걸 민간에 위탁해서 제공한다고 민간의 서비스가 되는 것이 아닌데 그게 지금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사회서비스가 공공성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포장돼 보이지만 속을 뒤집어 보면 조직적인 집단의 이익계산이 깔려있다. 사회복지사가 보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다. 아마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을 두고 국회에서 티격태격 할 때도 이를 보는 소방관들의 심정도 비슷했을 것 같다. 자연재해나 사건사고만이 재난이 아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저출생과 고령화의 문제도 거의 재난 수준이다. 그것은 어느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야 말로 그게 바로 공익을 위한 일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한 정치를 두고 공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아무리 표를 먹고사는 정치라고 할 지라도 덮어 놓고 반대하기보다 무엇이 공익에 더 가까운 선택일지 한번쯤 고민하는 정치가 되길 기대해 본다.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나... 알쓸복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