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역사, 국가의 폭력
220307의 기록
#1
아무 계획 없이 맞은 휴가 첫날.
과거의 나는 도대체 뭘하고 무슨 생각을 하며 하루하루를 낭비했길래 지금 이 모양 이 꼴이 됐을지를 궁금해하고 있을지도 모를 먼 미래의 나, 혹은 죽어 사라진 이후 조금이나마 나를 이해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를, 아주 드문 수의 몇몇 가족이나 자식 등을 위해 몇자씩이나마 꾸준히 그날그날의 일을 써나가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의욕과 시간이 허락하는 한... 언제든 빠져나갈 구멍은 필요한 법이며, 스스로를 위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2
나 자신도 믿기 어려울만큼 진지하게, 그리고 자주 역사와 국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학창시절, 도대체 왜 잘만 대화를 주고받던 이성들이 조금의 호감이라도 보일라치면 갑자기 바빠지는지, 정확히는 왜 갑자기 답장이 없어지는지 만큼이나 답을 내기 어려운 질문이 있었다. 물론 세상 일 대부분을 이해하지 못하던 시기였긴 하지만, 다른 문제들처럼 그냥 뭉게고 넘어가기가 꽤 힘들었던, 항상 마음 한켠을 무겁게 짓누르던 문제.
역사는 발전하는가, 혹은 진보하는가, 혹은 나아지는가 하는 따위의 것이었다. 뭐 그리 대단한 삶을 꿈꿨던 것도 아닌데, 항상 궁금했다. 내가 사는 세상은 그 전보다 나은 세상일까, 아픈 역사를 겪어온 이후의 인류는, 그리고 우리 사회는 그 전보다 더 나아졌을까. 아니, 한 인간의 짧은 삶으로는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서서히 변화하는 것이라할지라도, 적어도 그 방향 자체는 '나아지는 쪽'을 향하고 있을까. 인류가 등장하고 역사가 기록되고 국가가 형성된지 수천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너무 많은 모순과 고통을 안고 있는건 아닐까. 그러면 과연, 인간과 인간이 사는 세계는 더 나아지고 있는 것일까.
만약 드라마틱한 결과물을 아직 만나지 못한 것일 뿐, 방향만은 옳은 곳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물론 옳은 게 뭔지 조차 모른다는 것은 일단 넘어가자) 그래도 뭔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죽고 난뒤라도, 몇천년이 더 지난 뒤라도, 혹은 몇만년이 지난 뒤라도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고통과 부조리와 억울함은 점차 사라지고, 조금 더 완전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라면, 뭔가 내가 누리지 못해도 안심은 될 것 같았다.
왜인지 설명할수는 없다. 인류애나 박애 그런 것도 아니고, 정의나 뭐 그런 것도 아니고, 유토피아에 대한 간절한 어떤 것도 아니고, 종교적인 무엇도 아니고, 아무튼 이것도 저것도 뭣도 아니고, 그냥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았다.
결과적으로 답은 찾지 못했다. 이것저것 책도 읽어보고, 술을 마시고 쓸데없는 소리도 늘어놓고 해봤지만, 그냥 그러려니 믿기로 했고, 그렇게 넘어갔다. 역사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거라고. 인간이 그러리라고. 지금도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의심스럽다. 넓게 보나 좁게 보나, 안좋은 일은 계속되고, 내 기준에 정의롭지 못한 일도 계속 된다. 총량이 줄어드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일단은 믿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3
국가권력에 의해 자행된 폭력과 관련한 콘텐츠들을 여러개 봤다. 일부러 그런건 아니지만, 아무튼 자주 보게 되고 볼때마다 열은 받는다. 한국의 특수성 때문에 유독 그런 콘텐츠들이 많은건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외국 영화에서도 종종 있긴하지만. 본시리즈라든지... 한국 영화처럼 많은 것 같지는 않다. 체감상), 끊임없이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반복된다. 심지어 실화라는 수식을 달고. 그만큼 참 많은 고통을 겪었다. 이 나라는. 물론 유례없이 빨리 발전했고, 빨리 개선해 온 나라일수도 있다. 비교해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다. 민주화든, 경제발전이든, 이만큼 빠른 나라가 없긴할테니.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속도 속에 고통을 묻고 갈수는 없는 법이다. 하나하나 보듬어 줘야 한다. 누군가는.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어울리지 않는 고민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