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일기 3
살구야, 엄마 뱃속은 어때. 잘지내니. 가끔 병원에 가야만 널 볼수 있으니 항상 궁금해. 너의 기분, 너의 감정, 너의 상황이. 물론 너의 모습도.
다만, 꼭 알려줄게 있어. 네가 다른 아이들만큼 컸는지, 다리는 길거나 혹은 짧은지, 손가락은 몇개인지 같은 건 앞으로 너를 건강하게 만나는데 있어서는 필요한 정보 일지 몰라도, 아빠 엄마가 널 아끼고 사랑하고 하는 그런 일들에 있어선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는 거. 기분 좋으라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란다.
물론 아빠는 고민도 많아. 네가 혹시나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는게 아니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남들과 다른 부분이 있다면 아빠는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열심히 고민하고 걱정하고 한단다. 다만, 그건 살구와 같이 더 행복하기 위한 걱정일 뿐, 널 아끼고 사랑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 살구도 분명 알게 될거야.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태어나느냐를 기준으로 가족을, 내 자식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는 걸. (물론 어디서나 예외는 있는 법이고, 그런 소수의 사람들이 뉴스에 나오기도 하지만, 벌써 그런 얘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단다...)
그러니 넌 손가락이 몇개인지, 지능이니 발달이니 뭐니가 어떤지 걱정할거 없이, 편안히 지내다 준비가 되면 나오면 돼.
#1. 심장소리를 듣고 몇주뒤가 되면 병원에선 기형아 검사에 대해 안내해준다. 주로 통합검사라고 하는, 2차례에 걸친 검사는 필수적으로 받고 더 정밀한 검사는 그 결과를 보고 결정한다고 한다. 검사의 목적이나,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오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선 일부러인지 입에 담지 않는다. 병원도, 우리도.
안내를 받고 1차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덤덤했다. '기형'이라는 단어가 썩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거부감이 강하다거나 불안함이 크거나 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검사를 마치고 돌아온 뒤에는 작은 가시가 목에 걸린듯 어딘가 모르게 불편했다.
#2. 돌이켜봐도 아이의 상태가 어떨지가 불안하다거나 그런 걱정이 불편의 이유는 아니었다. '살구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결하지? 힘들텐데'라거나 '살구가 건강하게 잘 태어나지 못하면, 나는 살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와 같은 문제는 차라리 답이 간단했다.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아이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하는 선택을 계산적으로 할수 있을리 없으니, 그냥 가장 나은 방법들을 찾으면 된다.
하지만 내 스스로에 대해서가 문제였다. 아이에게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나는 과연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을까. 아이가 아닌 나 자신을 과연 사랑할 수 있을까. 쉽게 답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누가 준 것도 아닌데, 나도 모르는 사이 아빠로서의 책임감, 무게감 같은 것이 생겨났나 보다. 불안과 불편은 거기에서 시작된 것 같다.
#3. 대체로 나는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살았다.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구분할 것 없이. 돈이나 시간이나 직장과 같은 제약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내 스스로 건강이니 자기관리니 하는 이유로 절제한 것은 거의 없었다. 내가 한 모든 행동과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내가 지면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술 담배를 해서 건강이 나빠진다? 살이 쩌서 매력이 없어진다? 불규칙하게 생활해서 다음날 컨디션이 나빠진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살구 문제는 조금 달랐다. 내가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아온 시간, 그 결과 일어난 일에 대해서 함께 책임져야 했다. 나 뿐만 아니라, 아이 엄마와 아이 모두. 태어나고 스스로 뭔가 결정할 수 있을만큼 자라기 전까지, 아이에겐 어떤 선택권도 주어지지 못한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도 없다. 조금 오버하자면, 살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근원은 모두 나, 부모가 아닐까. 실제론 살구가 마주하게 될 세계의 모습, 시대 상황, 사회 환경이 모두 살구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 없겠지만... 적어도 기형아 검사를 앞둔 아빠의 입장에선, 앞으로 아이에게 혹시 생길지도 모르는 모든 문제들은 그저 다 나의 잘못된 행동 때문에 일어나게 되는 것 아닐까하는, 그런 묘한 무게감이 마음 한켠을 짓눌렀다. 그 느낌이 나를 불편하고, 불안하게 했다.
#4. 기형아 검사를 하는 시기엔 병원을 자주 가지 않는다. 한달에 한번, 길게는 한달 반에 한번 가면 된다. 병원에 가야만 초음파를 통해 아이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기다림의 시간이 더 길어진다. 다른 나라는 우리보다 훨씬 더 적게 병원에 간다는데, 궁금해서 어떻게 견디는걸까. 게다가 아직 엄마의 배가 불러오지도 않는 시기라... 그냥 "아이가 생겼다"고 병원에서 말해줬으니 그런가보다 하는 시기인 거다. 눈으로 보여줘도 잘 믿지 않는 주제에,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데도 어느새, 하늘에서 떨어진 것 마냥 나름대로의 책임감이나 무게감 같은게 생겨나는 것보면 그만큼 부모가 된다는 건 특별한 일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