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 레고 디자이너, 중세 대장간, IDEAS, 취미

220315의 기록

by 엉망

#1

나름대로 열심히 일한 하루였다. 지각했지만, 출근 이후부터 퇴근까지는 열심히 했다. '나름대로'.


#2

화이트데이를 그냥 지나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작은 꽃다발을 선물했다. 죄를 짓기는 쉽고, 또한 너무 많은 죄를 짓는다. 죄를 지은 후에 참회하고 만회하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라는 말로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물론 죄를 사해줄 수 있는 것은 스스로가 아니다. 죄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노력 뿐이다.


#3

주말부터 틈틈이 만들어 온 레고 중세 대장간(21325, MEDIEVAL BLACKSMITH)을 새벽에 완성했다. 천천히 천천히 만들다보니 거의 10시간은 걸린 것 같다. 특별히 빨리 만들 이유가 없으니 음미하면서 만들기도 했지만, 너무 빨리 조립하면 재정이 견뎌내질 못해서 속도조절을 한 것도 있다.

레고 IDEAS '중세 대장간(21325, MEDIEVAL BLACKSMITH)'

중세 대장간은 출시되자마자 고민 없이 바로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구입했다. 레고를 마트나 온라인 쇼핑몰이나 중고거래를 통해 사지 않고 공홈에서 샀다는 건 할인 한푼 없이 쌩돈을 그대로 주고 샀다는 의미다. 보통 출시와 동시에 품절이 예상되는 인기 제품을 구입하거나, 매력적인 프로모션(사은품 증정과 같은)이 진행될 때 공홈을 이용한다. 중세 대장간의 경우 전자였던 걸로 기억하지만, 생각보다 인기가 없었는지 아니면 물량이 많았는지 한동안 쉽게 구할수 있었고, 뒤에 할인도 많이 했고, 지금도 쉽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별로 아쉽지 않다. 만드는 동안 매우 만족스러웠기 때문이다. 진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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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오늘의 인물

그래서 오늘의 인물은 CLEMENS FIEDLER씨로 정했다. 중세 대장간의 제품 디자이너다. 독일 하노버에 살며, 하노버대학교에서 지리학을 공부하는 22살의 대학생이라고 한다. 중세 대장간은 'IDEAS' 시리즈라서 레고사가 아니라, 일반인이 디자인했다. IDEAS 시리즈는 전세계 누구나 제품을 디자인해 인터넷에 올리면, 일정 기간동안 레고 팬들이 투표를 하고, 1만표 이상 받은 제품 중 일부는 레고사에서 어느정도 수정을 거친 뒤, 실제 제품으로 만들어 전세계에 출시한다.

레고 홈페이지에 있는 이 대학생 디자이너의 인터뷰는 별로 읽을 만한 내용이 없다. 레고는 제품 말고는 거의 모든 부분에서 성의가 없다. 홈페이지가 그 정점이다. 제품 설명도, 리뷰도, 결제 시스템도, 환불이나 배송, 고객센터 등등 전부 엉망이다. 대장간이 있던 중세시대처럼 운영한다.

하지만 중세 대장간 자체는 예뻤고, 게다가 귀여운데다 우리 멍멍이를 닮은 강아지 피규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인물이다. 그냥 그렇다. 아, 인터뷰 내용 중 그나마 인상 깊었던 부분. 그는 취미가 참 많기도 했다. 여행, 하이킹, 사진, 비디오 편집, 테니스, 배드민턴, 스키, 그리고 레고 창작과 디자인까지.

내 경우엔, 물론 여행을 싫어하진 않지만 기회가 될때 그냥 가는 정도고 하이킹은 서울 둘레길이나 동네 뒷산을 몇번 맛만 본 정도, 사진은 뇌와 손을 쓰기 싫을 때 기록 대신으로만, 비디오 편집은 전혀 하지 못한다. 테니스는 두달 하다가 일이 바빠져 멈췄고, 배드민턴은 체육시간에만, 스키는 일본 여행가기 전과 가서 두어번, 레고는 돈주고 사서 설명서 보면서 만들기만 한다. 저 지리학을 전공하는 레고 디자이너보다 무려 10년도 넘게 더 살았으면서. 그가 하지 않은 일 중에 내가 하는 것도 많이 있기야 하겠지만. 항상 이력서든 뭐든 쓸때마다 '취미'란을 마주할 때면 몇초간 머뭇거리게 되는 내 처지를 생각하면, 뭔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능력이고 재능임을 부정할 수 없다.

이모티콘 같은 건 안쓰려 했지만, 'ㅠㅠ' 정도가 이 쓸데없이 긴 일기의 마무리로 딱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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