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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Jul 19. 2024

침입자

내가 한동안 시립도서관에 뜸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장애인 열람실을 직원 업무 공간으로 쓰고 있을 줄이야.

전화기까지 설치하여 벨은 수시로 울려대고.

오히려 내가 방해자인 것처럼 이어폰을 청했네.

몇몇 직원들이 업무 얘기를 나누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구나.

처음에는 황당했고, 이 상황이 일시적이지 않다는 사실에 당황하는데, 이번에도 도서관 측은 전후 사정을 설명해 주지 않았어.

어떻게 찾은 나의 19호실인데….

내가 가져다 놓고 쓰던 키보드도 행방이 묘연하다.

친절한 직원 한 분이 찾아 놓겠다고 말씀해 주시더라.

뜨거운 태양을 피할 수 있는 나만의 비밀 벙커 같은 공간이었는데….

요란하게 키보드를 두드리며, 업무를 논하는 그대들은 명백한 침입자올시다.

 꾸역꾸역 독서를 시작했어.

집중해 보려고 해도 쉽지 않나니.

‘2024년 젊은 작가상’에 빛나는 성해나 소설에 반했어.

『빛을 걷으면 빛』이라는 도서야.

일단 「언두」와 「화양극장」 두 편을 들었는데, ‘오오오오!’     

“근데 아까 무슨 얘기한 거야?

묻자 도호는 저 부부 금실 참 좋다 했다고 얼버무리고 말았다. 분명 그런 뜻이 아닌 것 같은데 그렇게만 설명했다. 그게 아닌 것 같다고, 혹시 내 얘기한 것 아니냐고 따지자 도호는 아니라고, 오해하지 말라고 손을 내저었다.

우리가 왜 네 얘길 하겠어.

그럼 무슨 말 한 건데? 왜 나한텐 말 안 해줘?

도호가 숨기는 것들의 내막을 나는 늘 확인할 방도가 없었다. 도호 말이 맞겠지, 내가 오해하는 거겠지, 생각하고 마는 게 차라리 속 편할 때도 있었다.” [언두 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 본능적으로 감지되는 어떤 소통의 부재.

그것에 대한 미진한 찜찜함에 대하여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으므로.     

“기차에서 뛰어내리거나, 라면 박스 몇 개를 쌓아두고 낙하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그녀나 동료들에겐 당연한 일이었다.

남들의 곱절은 고투했어요. 찢어지고 긁히고 부러지고, 핀잔 듣고…… 물에 빠져 기절한 적도 있었는데, 그때 일어나서 내가 가장 먼저 한 말이 뭔지 알아요?

그때를 떠올리듯 가볍게 숨을 고르며 이목씨는 말을 이었다.

괜찮습니다, 였어요. 괜찮습니다. 한번 더 가요.

피가 마르지 않는 순간 촬영이 지연되고, 아프다는 걸 티 내는 순간 커리어가 끊긴다는 걸 이목씨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시절 그녀는 입버릇처럼 괜찮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피부가 찢어져도 괜찮습니다, 이가 부러져도 괜찮습니다, 죽다 가까스로 살아난 순간에도 괜찮습니다.” [화양극장 중에서]     

 누나가 살아 보니까 사회에서 힘 있는 사람들은 아예 판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짜더라.

적어도 자기중심적인 사람으로 남들 눈에 비치지 않도록, 겉으로는 충분히 양보한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예술적인 상황을 만드는 거야.

이때 중요한 것은 끝까지 절대 민낯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

책임 소지를 분명히 해야 해.

‘법꾸라지’라는 말이 왜 나왔겠니?

 힘 있는 자들이 이런 데에 심혈을 기울일 때, 힘없는 자들은 이목씨처럼 “괜찮습니다.”를 복창하는 거야.     

서평이 이래.

“단정하고 진중한 언어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일구어나가는 신예 작가 성해나의 첫 소설집.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 삼 년 동안 활발하게 써온 작품 가운데 여덟 편을 선별해 실었다. 

성해나의 소설에는 편견과 오해를 넘어 서로를 올곧게 바라보려 노력하는 인물들이 있다. 

서로 다른 세대와 소속, 신체적·정신적 차이, 나아가 자신과 타인이라는 근본적인 경계에도 불구하고 저 너머의 상대에게 가닿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이들은 그 등불 같은 믿음을 품고 길을 나선다.”     

강산아, 누나도 이런 글 쓰고 싶어.

묵직한 사유가 뇌를 깨우고, 잔잔한 감동이 심장을 데우는 글.

어! 그러고 보니까 어느새 침입자들이 사라지셨네.

누나 표정에서 강렬한 거부의 뜻을 읽었을까?

여기 ‘장애인실’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맹인 귀 활짝 열고 독서할 수 있는 공간이로소이다.

부디 빼앗지 말아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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