쌩뚱맞은 임시 공휴일이야.
전에 없이 뉴스에는 대통령이 직접 목청 높여 ‘북한 정권의 종말’을 외치는구나.
‘오물 풍선’이다 ‘핵탄도 미사일’이다 이 나라가 뒤숭숭해.
강산이는 청명한 가을 휴일에 뭐 하고 놀았어?
누나?
경사스럽게 오늘도 만보를 찍었단다.
활동지원사 선생님 부지런히 새벽 댓바람부터 출근하신 덕택에 누린 호사.
누나 중1 때 『걸어서 하늘까지』라는 드라마가 인기였었거든.
“눈 내리는 밤은 언제나
참기 힘든 지난 추억이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둔
너를 생각하게 하는데.”
노래방 한 번 가야 쓰겄다.
이상하게 누나 걸어도 걸어도 허기가 져.
수시로 앞뒤 없이 화가 치미는데….
다행이라면 우리 유주, 민찬, 똑 시우 형제가 신묘한 진정제라는 것.
아, 활동지원사님 빼면 큰일 나지.
오늘 같은 휴일에도 이른 아침 출근하셔서 누나에게 무려 3시간 산책을 허락해 주시는 어른.
상냥한 이 계절을 내 손에 쥐어주시는 은인들이로세.
귀가하는 길, 맞춘 것처럼 비가 쏟아졌어.
잠깐이었지만 비 맞는 기분도 퍽 신선하더라고.
한바탕 걸었으니 오후에는 게으름을 부려도 용서가 될 것 같은.
드라마 『굿 파트너』를 정주행 하기로.
16부작인데, 글쎄 작가가 변호사시래.
실제 변론했던 에피소드를 토대로 극본을 쓰셨다는구나.
차은경, 한유리 두 변호사의 지극히 공적이고 또한 사적인 스토리.
달려라 달려.
왜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인물들은 남자고 여자고 이렇게나 완벽하다니.
극 중 김희라가 유리 작은 엄마를 사칭하며 로펌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는 장면에서 차은경의 통쾌한 한 마디.
“이판사판만 하시지요. 제가 공사판으로 만들어 드리기 전에.
꺼지시라고요.”
‘정우진’ ‘정우진’ ‘정우진’!
강산이가 봐도 멋지지 않든?
유주가 『선재 업고 튀어』 끝난 직후 왜 자신 주변에는 이런 남자가 없냐며 괴성을 질렀던 그 포인트를 백만 프로 이해했다니까.
휴일이 많은 금주인데, 내일은 심지어 가을 소풍.
서천 생태공원을 구경하고 스카이워크 걷는 일정이야.
솔직히 누나는 맹학생들 인솔이 어렵잖아.
오히려 안내가 필요한 입장이고 보니 낯선 장소에 우르르 함께 나가는 것이 마냥 신나지만은 않단다.
그래도 ‘가을 소풍’ 은 진리니까.
우리 강산이도 밖에 나가는 것 무턱대고 좋아했었는데….
누나가 강산이 옷만 만지면 그 덩치로 펄쩍펄쩍, 꼬리가 회오리바람을 일으켰었잖아.
누나도 강산이 닮아서 야외 나간다 하면 마음이 풍선처럼 부풀어.
정상 수업 아닌 소풍이라서 슬며시 마음이 느슨해지는 밤.
강산이도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