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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Oct 07. 2024

13000보 클리어

완연한 가을이었어.

어쩌면 날을 이리도 잘 잡았을꼬.

유주 어렸을 때도 여러 번 갔던 생태 공원 바다 생물관.

그때는 펭귄도 실물로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어느덧 유주는 중학생이 됐고, 나는 40대 후반을 바라보고 있구나.

근로지원샘 안내를 받아 송림 스카이 워크에 올라갔는데, 바람 시원하더라.

고등부 여학생들이 끼약 비명을 지르고, 무섭다며 내려올 때까지 울먹이는 양이 귀엽기도 하고.

유주는 여기 올라오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지더라고.

맹학생들 중에는 시력이 남아 있는 학생들도 있어서 사물을 식별하거나 일반 활자책을 읽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

스카이워크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이 멋지면서도 쭈뼛 머리카락이 곤두설 만큼 겁이 날만도 할 것 같더라고.

누나야 뭐 사실 아무 상관이 없지만 말이지.

고마운 근로지원샘 덕택에 오늘도 누나 양껏 걸었어라.

점심을 버거 세트로 먹었거든.

짬나는 대로 얼마나 열심히 걸어 다녔나 몰라.

 누나에게 산책의 묘미를 알려준 이가 바로 강산이 너였잖니.

덕분에 누나 그 힘든 시절 버틸 수 있었단다.

걸을 수 있었으니까.

강산이는 밤이고 낮이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묵묵히 누나랑 걸어줬으니까.

모델 같은 자태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워킹하던 우리 귀공자!

답답할 때마다, 걷고 싶을 때마다 누나 강산이가 얼마나 사무치는지 몰라.

그런데, 요즘은 말이지.

공원에 나가면 반려견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안내견 보행할 때 가장 큰 유혹이 멍멍이들이라서.

이 시대 안내견 사용자들은 어찌 안전 보행을 할까 내심 염려가 되기도 해.

강산이, 보고 싶네.

너는 누나가 보이니?

그때보다 많이 뚱뚱해졌다고?

노력 안 하는 건 아닌데, 야 쉽지가 않다.

우리 강산이는 하루 한 끼 밖에 못 먹었었는데….

누나 눈 노릇하느라 먹는 것도 싸는 것도 철저히 훈련받은 대로였잖아.

하루 한 끼만 먹고, 누나가 쉬, 응가하라고 할 때까지 참고….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안내견으로 선발되어 사느라고 중성화 수술받아 이쁜 여친 만나 데이트 한 번을 못했으니.

누나가 미안한 것투성이다.

하늘나라 가서 여친도 생겼어?

무조건 행복하기다.

누나도 열심히 걸어볼게.

강산이는 곁에 없지만, 누나에게 팔꿈치를 내어 주는 고운 사람들과 더불어 한 걸음씩 나아가 볼게.

우리 강산이가 그리워서 누나 안내견 나라를 만나봤잖아.

그런데, 나라는 강산이가 아니고, 강산이가 될 수 없고, 강산이를 더 생각나게 할 뿐.

그냥 강산이 니가 그리워!

안내견 말고 강산이가 이 밤 누나는 너무너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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