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는 화요일, 오늘은 특별한 행사가 있었단다.
학생들과 교외로 안마봉사 활동을 나간 거야.
‘천만 송이 국화 축제’
전국에 대대적으로 홍보되는 행사요, 21주년을 맞는 유서 깊은 축제라지만, 비가 내리는 데다 안마 천막 위치가 다소 외진 곳이어서인지 손님들은 그리 많지 않았어.
궂은 날씨에도 우리 학생들 성실하게 협조해 준 덕에 의미 있는 시간 만들고 왔구나.
코로나 전에는 교내외 활동으로 안마하러 다니기 바빴는데, 지금은 아무래도 분위기가 사뭇 달라.
한산한 천막 안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데, 글쎄 호랑이 담배 피우던 그 옛날 우리 학교를 스쳐간 대선배님이 후배들 간식을 한 봇다리 사들고 납셨네.
누나 초년병일 때 학교 다녔던 성인 학생.
그러니까 나보다 훨씬 나이도 경험도 많은 여자 사람.
캐릭터가 쩔어요.
완전 센 언니 포스 작렬.
“우리 선생님 얼굴은 그대로인데, 몸매는….
선생님은 안 변할 줄 알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 시절 함께 했던 인물들 소식을 들었어.
20년 전 기억 속에 머물고 있는, 아주 멀고 먼 사람들.
그들도 세월 속에 빛바랜 그림으로 날 기억할까?
퇴근 후에는 수필 창작 야간 수업이 있었어.
마음씨 고운 문우님이 카풀을 해주셔서 비오는 날인데도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었구나.
과제를 내야 하는데….
글감을 골몰하는 거야.
뭔가 참신한 것이 없을까?
맹인의 슬픔 말고, 가족 얘기 말고, 책·드라마·영화 얘기 말고.
‘낯설게 보기’
이 우물이 어떻게 낯설어질 수 있으랴.
이 개구리가 얼마나 낯설어질 수 있으랴.
그냥 지금 누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말이다.
강산아, 주말에 내가 엄청시리 좋아하는 멘토 언니를 만나고 왔잖아.
그날 언니랑 노는 것이 좋아서 밤늦도록 실컷 밍기적거렸는데.
이제 와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야.
‘아, 언니도 그 시간에 혼자 택시 타는 거 무서웠을 텐데.
내가 또 내 생각만 했구나.
언니는 나한테 도착하면 문자 하라고 당부하면서 역에서 집까지는 무엇을 탈건지, 탈 수 있는지 계속 마음 써줬는데, 난 그녀를 안심시킬 생각만 했을 뿐 언니도 혼자 밤길이 무서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왜 미처 못했을꼬.
오오, 답답한 지고.’
번번이 내 어머니는 다 큰 딸 늦게 귀가할 때마다 경비실 앞을 서성거리고.
앞으로는 기필코 일찍 파하리오.
아무리 재미져도 아쉬워도 먼저 일어서겠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