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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Oct 21. 2024

책독에 빠져서 그만

모처럼 도서관에 왔어.

햇살도 바람도 더할 나위 없이 상쾌한 일요일이구나.

예배 마치자마자 유주는 ‘청소년 문화의 집’으로 호로록.

누나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열람실에서 내일 있을 독서토론 도서 읽는 중이야.

이름하여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돌베개에서 나왔고, 저자는 강지나.

10년 동안 8명의 청소년의 가정환경과 성장 과정을 심층 인터뷰하여 연구한 책.

실제 사례 중심으로 저술하여 가독성 좋고요.

이 나라에서 이른바 사회적 약자로 태어나 굴곡진 청소년기를 통과하는 친구들의 아프고도 대견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구나.

각자 성격과 방법은 다르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

누구라고 인생 녹록한 사람 있겠냐만, 나의 가난을 만천하에 증명해야 비로소 받을 수 있는 어떤 지원 앞에 위축되지 않으며 밝을 수 있는 사람 흔하지는 않잖아.

성찰의 힘으로 내면을 단단히 하고 생존의 차원을 너머 욕망하는 나를 관철시킨다는 것.

용기도 끈기도 벳장도 필요하니까.

 강산아, 어제 누나 목이 쉬도록 말하고 웃고 또 말하는 모습 구경 잘했어?

책을 사랑하는 두 여자가 오랜만에 마주 앉았으니 황홀한 그 공감과 수다는 가히 영혼의 축제로다.

30년 세월 속에 녹아 있는 우리의 추억, 무궁무진할 밖에.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언니 목소리로 공부했어.

강산이도 언니 신혼집, 같이 놀러 갔었잖아.

그때 강산이가 언니집에 앉아 있던 커다란 곰인형 품에 폭 안겨 있었던 것 기억난다.

너 하늘나라에서도 그렇게 빨랫감 위에 올라가 있고 그래?

아직도 폭신한 것 좋아하고?

암만 그 취향 어디 가겠니.

 혜영 언니 만난 거냐고?

빙고.

“만약 화재가 나면 무조건 앞만 보고 도망가.

오빠도 엄마도 아빠도 다 그렇게 피할 거니까 모두 무사하다고 믿고, 절대 뒤돌아 보지 마.”

 언니가 딸아이와 재난 영화를 본 다음 이렇게 당부했대.

‘아, 나도 유주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줘야겠구나.

절대 뒤돌아보지 말 것.’

“언니, 정유정 선생님 신작 나왔잖아요.

워낙 핫한 작가시라 시각장애인 도서관에도 초고속으로 공개됐어요.

영원한 천국.

이번에는 무서운 언니 아니고 다정한 그녀 정유정이 쓴 소설.”

“내가 아까 얘기한 세 쌍둥이 다큐, 그거 모티브로 진짜 정유정 선생님이 소설 쓰시면 대박일 거 같지 않니?”

“정유정 작가님 천착하는 가치가 인간의 자유의지잖아요.”

“난 요즘 환경과 유전에 대해 생각해. 과연 어느 쪽이 인간 본성에 더 영향력이 클지…?

너 『양심고백』이란 책 읽어봤어?”

“아니요. 누가 쓴 책이에요?”

“그 회색인간 쓴 작가가 썼다던데.”

“오오, 김동식 작가요. 회색인간 당근 읽었지요. 신간 나왔나 보네. 

그 작가 초단편을 무려 1000편 넘게 썼대요.

이야기가 짤막짤막해서 유주랑 우리 학생들 한 편씩 읽히며 질문도 해보고 그러는데, 아이들 제법 재미있어라 해요.

김동식 작가 에세이도 썼거든요.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이란 제목인데, 소탈하기도 하고, 젊은 작가님 살짝 귀엽기도 하고.

떡볶이 엔솔로지도 재미있고, 초단편 작법서도 나와 있어 야금야금 공부하는 중이에요.

소설 쓰기에 입문하고 싶어서 저 온라인 강의도 등록했답니다.”

 “내가 전에 녹음해서 너 보내준 그 책 있잖아.”

“고슴도치의 우아함!”

“나는 그 대목이 몇 번을 읽어도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우리 딸이 그 책 또 보냐고 매번 놀란다니까.

어느 페이지를 펼쳐 읽어도 그냥 좋은 거야.”

“언니가 추천해 준 책은 문장이 너무 아름답고 어휘가 현란해서 한 번에 읽어 치우기가 너무 아까워요.

막 필사하고 싶어지고. 쭉 쭉 나가지지 않아.

고슴도치 작가 국적이 어디였지요?”

“프랑스, 딱 봐도 느낌 오지 않든?”

‘아 그런 것까지는 미처….’

 책얘기 하는데, 누나 정말 시간 가는 줄을 모르겠더라.

그녀가 내 개인 정보며 흑역사를 샅샅이 다 알고 있는 멘토이신지라 나 할 말이 너무 많았던 거지.

언니 워딩은 말이야.

 깊은데 차갑고, 가차 없는데 따뜻해요.

거 참 희한하다니까.

한 시간만 더, 딱 한 시간만 그러다가 기어이 밤 10시가 넘어서야 기차를 탔단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속이 꽉 찬 만두 같이 오진 나의 날들이여라.

울 아빠 좋아하시는 잡탕밥으로 한 끼 해결.

강산이, 프리랜서 생활은 어떻게 적성에 맞는 거 같아?

월요일이라고 굳이 출근할 일 없고, 소속이나 조직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로우실 듯.

누나는 유독 공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서인지 출근하면 그 긴장감이 또 퍽이나 마음에 들어요.

뭔가 깨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긴박감이 이 몸에 도파민을….

강산이는 뭐 하고 놀 때 가장 행복해?

그 동네도 껌 있나?

요즘도 프리런 관심 없니?

누나도 열심히 운동해 볼라니까 강산이도 살살 뛰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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