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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밀도 Oct 18. 2024

스마트폰 밖으로

강산아, 오늘로 누나 학교 2학기 1차 고사가 끝났어.

나 학교 다닐 때에는 시험 끝나는 날, 무조건 친구들과 노래방 가고, 떡볶이 먹고.

그것이 최상의 플렉스였는데….

안 보이는 눈으로도 삼삼오오 몰려다니며 잘도 다녔다.

여름 방학 때는 여의도 공원에 가서 자전거도 탔어.

저시력 친구들이 전맹을 태워 주기도 했고, 용감한 전맹들 그냥 혼자 타기도 했는데, 야 지금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현재 우리 학교는 주변에 떡볶이나 노래방 같은 것을 꿈꿀 환경이 아니기도 하지만, 학생들의 놀이 문화 자체가 가상 세계로 집중되다 보니 그때 그 시절의 자유, 해방감 뭐 그런 느낌은 별로 없는 것 같아.

아무래도 누나 같은 시각장애인들은 고정된 구조와 위치가 보장되는 ‘지하철’이 보행하기 편리하고 안전하잖아.

너무 까마득한 기억이네.

친구들과 어울려서 롯데월드도 서울랜드도 겁 없이 다녔었구나.

 우리 학생들은 학생 자치회 선거를 했단다.

민주 시민의 권리 참여를 직접 학습하고 체화하는 아주 유의미한 시간이지.

 누나는 2025학년도 신입생 면접을 봤어.

그야말로 날개가 꺾인 사람들.

응시자 1은 보험왕으로 바삐 살며 웬만한 스포츠 다 섭렵했었대.

“그런데 지금은 아무것도 못해요.”

응시자 2는 철공소에서 일하고 분식집도 했다가 공장에서 기술 배웠다 하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응시자 3은 사회복지를 전공했는데, 줄곧 집안에 칩거할 수밖에 없었대.

목회자도 있고, 가정주부도 있고.

모두가 목표는 하나.

‘안마사’로 취업하여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것.

‘실명’이라는 사건 앞에 인생 한 번 뿌리째 휘청하고 더듬더듬 조심스럽게 학교를 찾은 이들이구나.

 퇴근길에는 그 좋아하는 헬스도 못 가고 마트에 들렀단다.

소녀에게 필요한 물품을 오늘 꼭 사야 했거든.

활동선생님과 실로 오랜만에 대형 마트를 찾았으니, 두 여자 또 지름신이 강림하셨겠다.

변명을 하자면, 누나에게는 부득이 이런 사정이 있어요.

‘그래. 내가 올 수 있을 때 사야지. 또 언제 여기를 오겠어.

집에 사다 두면 언제 먹어도 먹지.

이거 너무 큰가?

암만 당장 안 필요해도 싼 것이 능사지.

우리 소녀 멜론 좋아하는데 이것도 좀 사고, 저것도 좀 사야겠구나.’

 위에 나열한 나의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 사정.

형아는 질색 팔색을 하는 거야.

발 빠르고 부지런한 남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마트에 갈 수 있잖아.

그 남자 철칙.

“그때 그때 조금씩 사서 신선한 것을 먹읍시다.

제발 쌓지 마라마라마라.”

카트에 물건을 담는데, 벌써부터 잔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오오오, 안 맞아.’

우리 딸 좋아하는 멜론을 들고 흥겹게 귀가.

“멜론 사 왔다.”

“헉, 아까 나도 사 왔는데.”

그 누가 부부는 로또라 했느뇨.

‘당신은 나의 로또가 맞소이다. 평생 한 번은 맞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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